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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드는 정말 자유로울까

독일 사무직 직장인

by 가을밤

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일을 하는 독일기업의 직장인이다.


업무장소가 사무실로 한정되어있지 않으니 요즘 흔히들 말하는 '디지털 노마드'에 해당한다. 정기회의, 출장이나 사내 이벤트를 제외하고 사무실에 가지 않아도 된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이렇게 일한다.


이러한 근무형태는 많은 직장인들의 삶의 모습을 바꿔놓았고 그중에서도 특히 거주지의 제약을 없앴다. 월세 비싸고 밀도 높은 시내에 치여 살 필요가 없어진 사람들은 모두 교외지역이나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시골에 주택을 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나 역시 사무실과 약 5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고 있고, 타국에 집을 하나 더 놓고 종종 그 집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야말로 '국경 없는 직장'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출퇴근하는 직장인에 비해 자유롭다. 하지만 업무를 덜 하거나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집이나 사무실 밖에 있으면서 쉬는 시간을 놓칠 때도 많고, 시간의 대중없이 새벽이나 아침 일찍 업무를 시작할 때도 있다. 협업하는 기업이 해외에 있으면 그쪽 시간에 맞춰 회의를 한다.


세계 어디든 발이 닿는 곳이 사무실일 거라 생각한다면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회사는 봉사단체가 아니므로, 이러한 업무형태를 허가한다면 그에 따른 조건과 책임은 직원의 몫이다. 먼저, 본인이 알아서 업무에 지장 없는 인터넷 환경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는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없기에 이게 무슨 조건이냐 싶지만 유럽은 여전히 인터넷이 열악한 곳이 매우 많다. 유럽의 한적한 시골 어딘가에서 일하고 싶어도 인터넷이 안되니 인프라가 적은 곳은 갈 엄두를 못 낸다.


또한 계약서에 업무가 가능한 장소범위를 지정해 놓기도 한다. 이전회사는 이 제약이 없어서 직원들이 그리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에서 일했고, 나는 한국에서도 일 한 적이 있다(시간은 독일 시간에 맞춰 근무). 그러나 현재 회사는 제약이 있어서 '유럽 밖'을 벗어나면 안 된다. 직원이 어디 있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고지하는 것을 사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타국에서 일할 예정이라면 미리 알려야 한다. 이는 회사 보안정책과도 연관되고 IP추적을 하면 금세 알 수 있으므로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업무시간에 항상 연락이 가능하도록 '대기상태'여야 한다. 이를 위해 회사는 책상 전화를 모두 없애고 직원들에게 업무용 폰을 일괄 지급했다. 직원을 감시하는 분위기는 없지만 필요시 연락이 되는 건 필수다. 더불어 구내식당 사용 빈도가 줄었으므로 회사는 식당을 없애고, 점심식대 지원도 대폭 감축했다. 이 때문에 사무실에 자주 나가는 직원들은 점심식사를 사비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즉, 디지털 노마드라 하더라도 인터넷을 비롯하여 업무에 지장이 전혀 없는 환경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결국 어딘가에는 사무실과 비슷한 홈오피스가 필요하다. 여기저기 오피스를 만들 순 없으니 아무리 노마드 생활을 하더라도 언젠가는 한 곳으로 정착하게 되어있다.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의견은 개인마다 다르다. 이 형태가 좋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집을 온전히 휴식공간으로 쓰지 못하고 통신이나 전기 인프라 구축도 개인이 해결해야 하다 보니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원들이 모두 흩어져 있어서 협업을 위한 준비시간이 불필요하게 긴 것도 단점이다.


나의 성향은 전자이다. 휴식시간이 마구잡이이고 여러 기물을 집안에 들여야 하는 건 불편하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 '스트레스와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이다. 시간은 곧 돈이며 에너지다. 나는 출퇴근하던 시절 출퇴근 시간에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뭘 배우거나 읽으며 보내려고 해도 같은 활동을 집에서 하는 것보다 효율이 굉장히 떨어졌고 일상 스트레스의 주범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한계치가 명확하고, 선을 넘으면 회복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내 삶을 모두 회사에 갈아 넣는 느낌이었다. 너무 지쳐서 아무 잘못 없는 가족에게 화를 내는 날도 있었다. 디지털 노마드는 업무의 집중도를 높여주고 일상과 일의 밸런스를 맞추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주변인들에게 화를 내는 일도 적어지고, 삶을 대하는 긍정도도 올라갔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업무평가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나는 디지털 노마드를 게으르고 이기적인 직장인으로 보는 시선이 정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 없이 책임만 과중되는 건 부담이지만, 자유와 책임을 적절히 섞어주면 오히려 '진짜 책임 있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제목 사진출처: Photo by Dave Weatheral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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