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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Nov 24. 2023

사수도 신입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좋았던 것 같기도

우리 부서에 신입 Werkstudent(워킹스튜던트: 학업과 일을 함께 하는 직원)가 들어왔다. 독어로 '베어크 스튜덴트'라고 부르는 이 직원들은 본업은 학생이지만 매주 10-20시간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직원들이다(보통 관심 있는 여러 부서들을 로테이션한다). 벌써 올해만 두 명째다. 이번 워킹 스튜던트의 사수는 내가 되었다.


매니저가 따로 'ㅇㅇ씨가 전담해'라고 얘기하진 않았지만 내 업무를 서포트하라고 배정해주었으니 내가 책임지고 일을 알려주란 소리나 마찬가지다. 일을 잘 가르쳐서 최종적으로 내 업무를 분산시키는 게 목표다.




이번에 들어온 친구는 독일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시리아 출신 대학원생이다. 대부분의 시리아 사람들이 난민 자격으로 독일에 오는 것과 달리, 이 친구는 아버지가 베를린 소재 대학의 초청교수로 오면서 독일과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재직 기간이 길어지며 엄마, 동생, 본인까지 독일로 이사 및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독일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의 배경을 들을 때마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너무나 달라서 참 흥미롭다.


아무튼 이 친구에게 일을 알려주기 시작한 지 며칠 째, 답답함이 몰려왔다. 엑셀의 기본적인 기능을 모르거나 빤히 눈앞에 보이는 데이터도 빼먹었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너는 뭐 처음부터 잘했어?


답답함의 끝에 내면의 소리가 울렸다. 그래, 나도 저렇게 몰랐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뭐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에게 일을 알려주는 위치가 되어 있다. 과거 내가 다녔던 직장의 대리도 나를 보며 이런 느낌이었을까? 내 앞에 있는 친구보다는 많이 알고 경력도 있어서 마치 '다 아는 척'을 하지만 사실은 다 알긴커녕 내 앞가림도 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 현실.


이젠 더 이상 아무도 나에게 신입처럼 일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할까? 아니면 나는 이대로 고인 물이 되는 걸까? 사수의 위치는 나의 지난날을 반성하게 했다.



Mach dir keinen Stress.
Melde dich jederzeit bei mir, wenn du Fragen hast.
스트레스받지 마. 질문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나는 그 친구에게 처음 온 날부터 지금까지 이 말을 해주는데,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걸 보니 다행히 내 의도를 이해한 것 같았다. 내 직장생활 중 가장 마음이 편하고 많이 성장했던 시기는, 무엇이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질문하라고 하는 사수와 매니저 밑에서 일했을 때였다.


그들의 입장이 되어보니 새삼 신입만큼이나 사수의 위치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할 일은 산더미이고, 나도 몰라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데 옆을 보면 병아리처럼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듣고있는 직원을 보니 '좋은 직원'의 표본을 보여줘야 할 것만 같다. 신입 때 겪은 첫 회사와 첫 사수는 정말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첫 회사는 기억을 포맷하고 싶을 정도로 별로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인상을 주고 싶진 않다. 안 좋은 것은 최대한 이른 시기에 끊어내야 한다.  


작은 업무와 씨름하는 귀여운 신입을 보며 오늘은 모처럼 나도 마음가짐과 자세를 고쳐본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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