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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Feb 27. 2024

독일에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들

이전 여러 스토리에 걸쳐 소개했듯 독일생활은 전반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국내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데 해외생활이 편할거라고 생각하면 매우 크나큰 착각이다. 어쩔 때는 거의 '전투'에 가까운 결의와 대항력(?)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오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사회 정책이나 복지 등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내 몸이 독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지는 것들.




첫째는 아침의 소리다.

독자님들은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어떤 소리를 들으시는가? 아니, 너무 바빠서 소리 따위에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으실지 모른다. 독일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바쁜 기간이든 아니든 '아침이 주는 고요함'과 ‘아침만의 소리’가 있다. 어느 날엔 교회 종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수 십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빗소리, 아침 일찍부터 밖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 자연과 사람이 내는 소리가 그대로 창문 너머 귀에 들어온다. 이 소리가 없는 독일의 아침은 가끔 정적이 흐를 정도로 고요하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이런 소리에 귀기울이면 이유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둘째는 적절한 공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이 있고, 이 공간이 좁아지거나 너무 넓어지면 불편함을 느낀다. 아늑한 카페라도 만석이고 대기줄까지 있으면 피곤하다. 반대로 손님이 없는 텅 빈 식당에 들어가려면 망설여진다.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 사람과 사물 간의 적절한 공간이 독일은 비교적 잘 배치되어 있다.


물론 대도시는 인구밀도가 높아 공간이 좁은 장소가 다수지만,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넓은 공간과 낯선 사람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줄도 바짝 서지 않고, 카페 테이블도 바짝 놓지 않는다. 같은 업종의 가게는 연달아 오픈할 수 없다. Abstand halten(거리유지)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한 기본이다.


셋째는 약자보호다.

독일생활을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생각보다 이들이 꽤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에 가면 가장 상석에 가장 넓은 주차자리는 언제나 장애인용 주차장이고, 버스에 휠체어 탄 승객이 탑승하면 몇 분이 걸리든 기사가 내려서 탑승을 도와주며(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각종 관청 줄 서기부터 여행 과정에서까지 배려를 받는다. 오죽하면 '애 있는 게 무기'라고 할 정도로 독일인들을 보면 거의 병적이자 본능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 같다.


이는 독일인들 자체가 선하다기보다는 생활 곳곳에 약자 배려장치 즉, 그동안 관심이 없었더라도 약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장치들이 많아서인 것 같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늙고 누구나 언제든 얘기치 못하게 약자가 될 수 있으므로 내가 배려하는 게 '나중에 내가 받아야 될지도 모르는 배려'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내가 독일에 평생을 살아야만 할 결정적인 이유는 못될 테지만, 적어도 생활하는 동안에는 분명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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