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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거저 얻을 수 있는 것들

by 가을밤

이전 여러 스토리에 걸쳐 소개했듯 독일생활은 전반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 국내에서 타지생활을 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데 해외생활이 편할거라고 생각하면 매우 크나큰 착각이다. 어쩔 때는 거의 '전투'에 가까운 결의와 대항력(?)을 필요로 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오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사회 정책이나 복지 등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내 몸이 독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얻어지는 것들.




첫째는 아침의 소리다.

독자님들은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어떤 소리를 들으시는가? 아니, 너무 바빠서 소리 따위에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으실지 모른다. 독일에서 아침을 맞이하면 바쁜 기간이든 아니든 '아침이 주는 고요함'과 ‘아침만의 소리’가 있다. 어느 날엔 교회 종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 수 십 마리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빗소리, 아침 일찍부터 밖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의 소리. 자연과 사람이 내는 소리가 그대로 창문 너머 귀에 들어온다. 이 소리가 없는 독일의 아침은 가끔 정적이 흐를 정도로 고요하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잠시 눈을 감고 이런 소리에 귀기울이면 이유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둘째는 적절한 공간이다.

사람은 누구나 최소한으로 필요한 공간이 있고, 이 공간이 좁아지거나 너무 넓어지면 불편함을 느낀다. 아늑한 카페라도 만석이고 대기줄까지 있으면 피곤하다. 반대로 손님이 없는 텅 빈 식당에 들어가려면 망설여진다.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 사람과 사물 간의 적절한 공간이 독일은 비교적 잘 배치되어 있다.


물론 대도시는 인구밀도가 높아 공간이 좁은 장소가 다수지만, 중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넓은 공간과 낯선 사람 사이에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줄도 바짝 서지 않고, 카페 테이블도 바짝 놓지 않는다. 같은 업종의 가게는 연달아 오픈할 수 없다. Abstand halten(거리유지)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기 위한 기본이다.


셋째는 약자보호다.

독일생활을 '약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생각보다 이들이 꽤 섬세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트에 가면 가장 상석에 가장 넓은 주차자리는 언제나 장애인용 주차장이고, 버스에 휠체어 탄 승객이 탑승하면 몇 분이 걸리든 기사가 내려서 탑승을 도와주며(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기다린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각종 관청 줄 서기부터 여행 과정에서까지 배려를 받는다. 오죽하면 '애 있는 게 무기'라고 할 정도로 독일인들을 보면 거의 병적이자 본능적으로 약자를 보호하는 것 같다.


이는 독일인들 자체가 선하다기보다는 생활 곳곳에 약자 배려장치 즉, 그동안 관심이 없었더라도 약자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하는 장치들이 많아서인 것 같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늙고 누구나 언제든 얘기치 못하게 약자가 될 수 있으므로 내가 배려하는 게 '나중에 내가 받아야 될지도 모르는 배려'이기도 하다.



이것들이 내가 독일에 평생을 살아야만 할 결정적인 이유는 못될 테지만, 적어도 생활하는 동안에는 분명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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