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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을하 Mar 06. 2024

독일에서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언제일까

독일에 살며 가장 기분 좋은 날은 언제일까. 

뭐든 상대적이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계획한 일을 계획한 대로 처리한 날'이다. 파워 J인 나는 많은 생각을 하고 일정을 짜는데, 생각해 둔 1안, 2안, 3안까지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편두통이 온다. 


거창한 계획뿐 아니라, 일상에서 일어나는 단순한 계획에도 해당된다. 

예를 들어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 은행 일을 보고 -> 샴푸를 사러 dm(드로게리샵)에 가야 한다고 해보자. 한국 같으면 세 가지 일 모두 1-2시간 안에 끝날테지만 독일은 적어도 반나절은 잡아야 한다. 


그나마 '반나절 안'에 끝나면 그날은 아주 기분 좋고 운수 좋은 날이다. 대부분은 '반나절' 마저 부족하다. 




이렇게 단순한 일을 처리하는데 어째서 반나절이 부족한지 의아하신 독자분들은 '독일'의 특징과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일단 독일은 매우 느리다. 통장 개설만 열흘이 넘으니 우리의 최소 5배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또한 아주 작은 변수라도 상당히 자주 일어나며, 언제 어디서 생각지 못한 다른 복병이 있을 수 있다. (갑자기 시작된 공사나 파업으로 길을 돌아가야 하는 등).


첫째, 병원에서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예약을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 2시간 이상 대기할 수 있다. 예약을 왜 한 건지 무색할 정도로 아무 말도 없이 환자를 기다리게 하는 병원이 많다. 혹은 하필 그날 내 담당의가 병가일 수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약국에 내가 찾는 약이 없을 것이다. 


둘째, 은행이 문을 닫거나 기계가 고장이다.

은행의 근무시간은 매우 짧다. 게다가 창구를 가거나 상담을 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단순히 ATM 기계에서 돈을 입금하려고 했다면, 아뿔싸. 기계가 고장이다. 안타깝게도 입금이 가능한 기계는 딱 한 대뿐이라 다른 지점을 가거나 입금을 포기해야 한다. 다른 지점을 가려고 찾아보니 차로 10분 넘는 거리에 있다. 이러면 그날의 은행 일은 포기하는 것이다. 


셋째, 내가 찾는 샴푸가 품절이거나 없다. 

대부분의 드로게리샵은 비슷한 상품을 취급하나, 샵의 규모나 위치에 따라 물건이 적거나 빨리 빠질 수 있다. 내가 찾는 '그 물건'이 샵에 있다는 보장이 없으며, 없을 시 대체품을 구매하거나 다음에 다시 와야 한다. 




이렇게 어이없게도 작은 부분들로 인해 독일에서 두세 가지의 일을 하루에 모두 처리하기가 쉽지 않으며, 반드시 한 두번 더 발걸음을 하게 만든다. 만약 연달아 일처리가 순조로운 운 좋은 날이 지속된다면 꼭 로또를 사시기 바란다.


맛있는 거 먹은 날도 기분이 좋다. (출처=직접촬영)



제목 사진출처: 직접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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