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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6. 2023

이건 긴 이야기예요

내가 독일로 온 이유

나의 출신을 묻는 질문 Woher kommst du? (너 어디서 왔어?) 다음으로 많이 들은 질문은 이거다. 


"Was bringt dich nach Deutschland?"

"Was hat dich nach Deutschland verschlagen?"


단어는 다르나 같은 의미다. "무엇이 너를 독일로 오게 만들었어?" 즉, 내가 독일로 온 이유.

처음 만난 이웃부터 구직 인터뷰에서까지, 장소를 불문하고 그들은 왜 내가 여기 있는지 궁금해했다.  

 



내 이야기를 굳이 공개하고 싶지 않은 상대에겐 그냥 앞 뒤 다 잘라먹고 어쩌다 보니 왔다고 한다. 반면 나를 좀 더 알아줬으면 하는 상대에겐 이렇게 운을 띄운다. 


"Das ist eine lange Geschichte." (이건 긴 이야기예요).


그렇다. 내가 독일로 온 건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고등학교 의무야자 세대였다. 그래서 3년 간 8 to 22 (학교에서 있는 시간)으로 학교를 다녔고, 첫 수능에서 만족하지 못해 재수를 할 땐 7 to 23으로 365일을 꼬박 보냈다. 자리를 맡으려고 새벽 3시에 재수학원 앞 길바닥에서 꾸벅꾸벅 존 적도 있었으니, 지금은 두 번 다시 못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참 독했다. 




두 번째 수능 후 원서를 쓰는데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20년 짧은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시기인 것 같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이 고3 담임이셨는데, 나에게 갑자기 독일유학을 강력추천 하셨다. 아니, 입시원서를 써야 되는데 뜬금없이 독일 유학이라니. 독일은 공부하기에 좋고 특히 자동차 분야가 상당히 좋다고 하셨다. 근데 저 문과인데요.. ㅎㅎ 


조언은 정말 감사하나, 나는 도피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좋든 싫든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이상 우리나라에서 당당히 대학생활을 하고 싶었다. 게다가 나는 독일의 ㄷ자도 몰랐다. 태어나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으니까. 단, 그분의 말씀을 듣고 독일이라는 나라가 꽤 매력적일 거라고 예상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영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전공하고 싶었다. 영어는 어차피 평생 해야 될 테니까 굳이 전공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때 제2외국어는 일어였으며, 고등학교 때 한문 전교 1등을 해서 수능도 한문을 봤다).


그래서 뭐에 홀린 듯 독문과에 지원을 하고, 합격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그때 시작된 것 같다. 



 

독문과에 들어가서 독일어를 배우는데, 정말 마성의 매력을 가진 언어였다. 발음은 좀 무식하게 들리지만 문법이 퍼즐같이 맞춰지고 논리가 안 통하는 법칙들이 존재하는데, 나는 가보지도 않은 나라인 독일과 독일어에 푹 빠져버렸다. 정확히는 완전히 '몰입' 해버렸다. 


전공을 공부하느라 식사도 자주 걸렀고, 리포트 쓰는 게 행복했고, 모든 조발표의 조장과 발표를 도맡아 했다. 시험 기간에는 최소 5번은 봐줘야 내 것이 된 느낌이었다. 배움의 즐거움에 취해 대학 첫 2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이 나는 인문대 수석이 되어 4학기 전액 장학생이 되었고, 학과장 교수님은 과대표를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3학년 때 학교 지원으로 뮌헨 한 달 살기를 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방문한 해외가 독일이었다. 

짧은 한 달 동안 나는 일부러 어학코스 반을 하나 낮춰 들어갔다. 숙제를 빨리 해놓고 이 나라를 최대한 많이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주중 오후와 주말에 이곳저곳을 돌며 독일을 탐구했다. 


그리고,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4학년 때 교환학생을 왔다. 독어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아무도 안 가는 영어가 안 통하는 소도시로 갔다. 구동독 소도시에 온 한국 여학생은 시내만 나가도 관심의 대상 그 자체였다. 아무튼 그렇게 서바이벌로 부딪히니 따로 수업을 듣지 않고 독학으로 대입용 독어시험(DSH, Test DaF)에 합격할 수 있었다. 


여기 까지오니, 이 나라 언어로 공부하고 싶다는 도전의식이 생겼지만, 졸업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갔다. 




바로 독일로 갈 것 같던 나는 졸업 후, 한국에서 동대학원에 진학했다. 유학은 박사 때 가도 늦지 않다는 생각과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수록 자꾸 마음속에서 '이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수업 방식과 방향이 아니었다. 독일에 간다고 하니 부모님과 교수님께서 반대하셨다. 


반대를 꺾는 방법은 그보다 더 강한 근거를 가져오는 것뿐이었다. 나는 몰래 독일 대학원에 시험 삼아 지원해서 합격증을 받아서 '독일대학원 진학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 그리고 그다음 학기에 5개에 학교에 지원하여 5개 대학 모두 모두 합격증을 받았다. 이쯤 하니 부모님도, 교수님도 두 손 두 발을 다 드셨다. 오히려 교수님께서는 내가 독일 갈 걸 예상하셨다고 한다. 정말이지 내 인생 30% 정도의 열정을 20대 초중반에 다 쏟아부은 것 같다.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고 나는 독일로 향했다. 두바이로 향하던 밤비행기 안에서 나는 몸살에 끙끙 앓았다. 


아마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나 보다. 그저 원하는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싶어 떠나는 길이지만, 내 생각보다 앞으로 훨씬 더 길어지고, 예상치도 못한 다양한 어려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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