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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밤 Oct 17. 2023

한국의 세 배

한국에 사는 친구들과 가끔 수다를 떤다.

보이스톡 너머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금방이라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그들이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섞인다.


나는 독일에 있으면서 유난히 여행과 이사를 많이 했다.

여행은 그렇다 쳐도, 이사는 독일 내에서 9번 한 것 같은데 솔직히 다 세질 못했다. 한국에서도 어릴 때부터 10번 이상 했으니 내 인생에서 이사만 20번이 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동네친구'라는 것과 '고향'이라는 개념이 약하다. 게다가 국경까지 넘었으니 동네친구가 아니라 세계친구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이사를 했다고 하면 친구는 십중팔구 또?라고 한다. ㅎㅎ 그래, 또 이사했어. 이번엔 어디로 갔어?


9번의 이사 중 가장 먼 거리는 독일의 북부 함부르크에서 스위스 바젤 근교까지 갔던 이사였다. 함부르크는 거의 최북단이고 바젤은 독일의 최남단을 지나야 하니 약 830km였다. 차에 짐을 가득 싣고 남편이랑 운전대를 바꿔가며 끝도 없이 달렸던 이사다.



내 머릿속에는 한국지도보다 독일지도가 더 선명하다. 머리가 굵어지고 여행에 재미가 붙을 때 독일에 오기도 했고, 타지이다 보니 항상 지도를 끼고 다닌 결과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독일인 두 분이 주(Bundesland 분데스란트) 이름 기억을 못 하셔서 내가 알려드렸더니 멋쩍은 웃음을 지으셨다. 한국인인 나는 막상 한국 지역 위치가 잘 안 떠오르니, 그분들이 독일 지역을 기억 못 하시는 것도 이해가 된다.


친구에게 "함부르크에서 스위스로 가"라고 하니, "많이 멀어? 한 3시간 걸려?"라고 한다. 아니, 9시간 걸려.라고 하니 "독일이 그렇게 커?"라는 귀여운 대답이 돌아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사는 배경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독일에서 은행송금이 이틀이나 걸리는 게 한국인에게는 속 터지는 것처럼. 무엇이든 내가 많이 오래 겪었던 환경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그리고 실제로 독일은 크다.


독일의 면적은 357,596 제곱킬로미터다 (독일 위키피디아). 인구는 약 8360만 명으로, 유럽회원국 중 인구가 가장 많다. 반면 대한민국의 면적은 100,329 제곱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5100만 명이다. 독일은 면적으로만 봤을 때 대한민국의 약 3.5배다.


그래서 독일에서 어디를 가려고 하면 '참 멀고 크다'라는 생각이 든다. 반면 그보다 몇 배는 더 큰 땅덩이에 있는 시댁을 갈 때면 독일이 귀엽게 느껴진다. 뭐든 상대적인 거다. 우리나라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체감하는 정도도 달랐겠지.



본문 사진출처: 구글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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