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물은 선물 목록 중 웬만해선 호불호가 적은 품목 중 하나다.
좋은 글귀 모음집이나 일상의 활력을 주는 책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활력이 원치 않는 방향을 향할 땐 참으로 난감하다.
며칠 전, 직장 동료로부터 소포 하나를 받았다. 업무 외엔 자기 얘기를 거의 안 하는 직원이고 소포를 보낸다고 예고도 안 했기 때문에 도대체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했다.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지만 팀원이나 팀어시에게 물어보면 금세 알 수 있기에 문제는 아니었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소포를 열자마자 아뿔싸. 독일어 책 한 권과 아랍어가 쓰인 간식이 들어 있었다.
아랍권 음식은 독일서 워낙 흔하게 접하는지라 낯설지 않았지만 문제는 책이었다.
책 제목은 <Ein kurzer illustrierter Wegweiser um den Islam zu verstehen>, 한국어로 번역하면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한 짧은 일러스트레이트(그림이 첨부된) 가이드>였다. 책을 빠르게 넘겨보니 사진자료까지 첨부된 올 컬러의 이슬람 입문서다.
이 친구가 이슬람에 대한 책을 보낸 건 사실 우연이 아니다.
나와 가장 많은 업무를 함께하는 그는 우리 팀의 유일한 독일인 무슬림이다. 부모도 독일인, 외모도 서양인인데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무슬림이 된 독특한 케이스다.
독일에 살다 보면 이슬람을 종교로 가진 사람들을 만날 일이 아주 흔하기 때문에 종교에 대해 궁금하진 않았지만 자발적 개종을 한 케이스가 신기하여, 동료에게 조심스럽게 '무슬림이 된 계기'를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어떤 의도도 없는 순도 100% 호기심에서 온 질문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동료는 내 질문이 끝나자마자 매우 친절하고 자세하게 한 시간 동안 자신의 이야기와 이슬람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말미에 "바로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쉽게 쓰인 책을 보내주겠다"라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소포에 들어있던 책이었다. 거의 일 년도 더 지난 일이라 잊은 줄 알았는데, 나만 잊었지 그는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건 좀 덜 꼼꼼해도 되는데 정말이지 섬세한 친구다.
그리하여 내 의지와 상관없이 손에 들어온 책.
선물을 받으면 응당 그에 대한 감상을 덧붙여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어떤 감상을 덧붙여야 할지 몰라 여태 입을 떼지 못했다.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위해 언젠가 책을 펼칠 날이 올지, 아직은 모르겠다.
아, 그래도 간식은 참 맛있었다고 전해줘야겠다.
제목 사진출처: copilo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