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비롯한 서양권에서 큰 장점으로 여겨지는 문화중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점'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집단주의와 경쟁문화 속에서 남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나은 차별화를 갖고자 생겨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가 오랜 기간 과열되고 SNS와 합쳐지며 외모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일종의 부작용도 생겼다.
한국의 외모중심 문화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독일에 살면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한여름에 목도리를 한 사람, 한겨울에 반팔을 입은 사람, 얼굴에 큰 점이 있는 사람, 머리가 없는 사람 등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기에, 서로 비교하거나 같음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게 느껴지며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연스레 '사람 자체'로 옮겨간다. 덧붙여, 개인주의로 인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대부분의 수단을 제지하지 않는 편이다. 간혹 도가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서양)의 장점에 취해서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들도 사람이라는 점. 그들은 서양인이고, 우리는 아시아인이라는 점"이다.
서양인들도 사람이기에 분명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으며, 각자의 선입견으로 상대를 판단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보다 학구열과 대학 진학률도 낮으니 평생 선입견을 갖고 살면서도 그걸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정정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내가 독일에 거주하므로 독일 얘기만 하자면, 이곳에서는 코가 어떻니, 얼굴형이 어떻니 하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진 않는다. 다만, (은근히)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가 외국인이면 그 잣대는 좀 더 엄격하게 올라간다. 학생 때부터 줄곧 통역일을 하면서 암트(관청)에 갈 일이 굉장히 많았는데, 이때 민원인이 바람막이를 입고 갔을 때랑 코트를 입고 갔을 때 직원의 말투나 표정부터 달라지는 걸 보았다. 관청뿐 아니라 카페나 쇼핑몰 같은 일반 매장에서도 알게 모르게 은근히 대우가 달라진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 많은 서양인들이 '아시아인들은 ㅇㅇ하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어려 보인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론 동안이라는 칭찬 같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미성숙하고 애 같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어려 보이면 직장 등 사회에서 은근한 무시를 받는 경우가 꽤 있다. 세 보이는 일명 '교포화장'이 유행하는 것도 아시아인들이 서양사회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지혜에서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여러 보이는 것에 덧붙여 아시아인들은 남녀불문 서양인들에 비해 체구가 왜소하기 때문에 여성스럽고 순종적이란 편견도 있다. 그래서 외향적이고 의견개진이 강한 아시아인을 보면 "의외다"라는 말을 한다. 짧지만 아시아인의 외모에 대한 편견과 판단이 함축된 말이다.
따라서 독일에 살면 피상적인 외모주의에서는 벗어나지만, 다른 측면으로 "나는 이 사회에 당당하고 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외모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한국에서도 너무 후줄근하게 하고 다니면 지적당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에선 단순 지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차별이나 사회적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국, 독일도 외모를 보지 않는 사회는 아니다. 단지 그 기준과 방식이 한국과 다를 뿐이며, 외모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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