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고 불안하기 vs 모르고 행복하기

by 가을밤

내 글을 봐오신 독자분들은 아시겠지만 나는 한국이 싫어서 또는 이민을 목적으로 해외로 온 사람이 아니다. 유학을 필두로 어쩌다 보니 인생의 약 1/3 가까이 여기 살고 있는데, 과거에 종종 들었던 생각이 있다 (지금은 일부 바뀌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가족 친구가 있어서 좋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고

독일에서의 삶은 남편을 제외하고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편안한 부분이 있다.


왜 그럴까? 어디 있더라도 나란 사람은 그대로인데. 그리고 이 말은 정말 사실일까?


나는 그 이유를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찾았다. 평생 먹고 놀아도 되는 최상위층과, 매 끼니 밥 먹을 돈도 없는 최하위층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위 '중산층'에 속해있고, 나역시 그중 한명이다. 현대 사회에서 계급 얘기를 하는 게 시대착오적이지만, 모두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수저론과 같은 해괴망측한 급나누기가 탄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한국에서의 삶이 불안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상류층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와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봐도 사교육 2개 이하로 시키는 가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온갖 종류의 학원과 과외를 시키고 있다. 이는 사교육 자체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선택지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비교와 시기질투할 기회도 많아지고 행복에서 멀어진다. 하지만 이만한 교육기회와 가능성은 웬만한 독일 중산층 가정에서는 엄두도 내기 어렵다. 만약 여기서 한국만큼 3-4개씩 사교육 시키고 엄마가 하루종일 라이딩 해주는 가정이 있다면 그 집은 최소 상위층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처럼 접근성이 떨어지고 가격도 거의 고정적이기 때문에 독일 중산층 부모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비교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고, 비교를 덜하다 보니 자연적으로 행복할 확률도 높아진다. 즉, 모르고 안하니까 행복한 거다.




한국에서 만약 10년 뒤 집값을 고려하지 않고 집을 샀다고 해보자. 아마 가는 곳마다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대표적인 투자대상이며, 정말 다양한 투자정보와 방법이 넘쳐나다 못해 법을 피해 가는 꼼수까지 공유된다. 그래서 정보 없이 덜컥 샀다면 돈이 아주아주 많거나 바보 둘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그 집에 사는 동안 진정으로 집이 주는 가치와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독일은 유럽에서 자가소유비율이 가장 낮은 3개국에 속하며, 자가비율이 높아진 지금도 여전히 50%를 넘지 않는다. 또한, 부동산을 구매하면 보통 그 집에 20년 이상 사는 경우가 굉장히 흔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명확한 나만의 거주지가 필요할 때" 부동산을 구매하는 편이다. 물론 독일 부동산도 투자대상에 속하며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세금과 비용이 굉장히 높고, 부동산 가격 컨트롤도 엄격하며,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무분별한 투자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법을 피해 가는 꼼수 따위는 혹시 있더라도 쫓겨나기 싫으면 우리같은 외국인은 쳐다도 보지 말아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이처럼 방법이 적고, 불편하고, 잘 안되니까 사람들은 자연스레 집의 근본적인 목적에 집중하게 되고 집을 산 뒤에는 직접 살고, 꾸미고 가꾸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독일식 행복이 결코 정답은 아니다. 독일처럼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와 방법이 매우 적은 사회는 폐쇄적이다. 계층이동을 꿈꾸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어차피 해도 안된다는 좌절감을 평생, 가스라이팅하듯 심어주는 장치가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 즉, 날 때부터 소위 근본있는 귀족이나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평생 쳐다도 못 보게 되는 것이다. 농담으로 "똑똑하고 돈 있는 독일인들은 이미 독일을 다 떠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본인의 가치관에 더 맞는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그 가치관은 사람에 따라, 인생의 시기에 따라 변할 수 있다. 10년 넘게 독일을 겪은 현재의 나는 아래 관점에 더 가까워졌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지만, 내 모국인건 평생 변하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가 있고 내가 노력만 하면 올라갈 수 있어서 스스로 중심만 잘 잡으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독일에서의 삶은 일부 편안할지 몰라도, 투자나 노력대비 아웃풋이 매우 형편없어서 계층이동이 거의 불가하며, 소박한 생활속에서 행주짜듯 행복을 쥐어짜내야 한다. 게다가 진정으로 마음나눌 사람이 없으니 내가 중심을 잡고 말고와 상관없이 심리적으로 무너지기 쉽다.


어떤 가치를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제목 사진출처: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해외이주 고려 시 가장 경계해야 할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