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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영 Aug 30. 2019

야만인들의 세계

원문 서지사항: Toscano, Alberto. 2019. “‘By Contraries execute all things’: Figures of the savages in European philosophy”, Radical Philosophy, 2.04(Spring), pp. 9-22. 
원문 웹사이트: https://www.radicalphilosophy.com/article/by-contraries-execute-all-things 


모든 것을 반대로 시행하다

유럽 철학에서 야만인의 형상들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

 

         


“‘야만인’은 구세계에서 발명되었으나, 신세계에 들어 우리와 조우했다.”     

 -포콕(J.G.A. Pocock), 『야만과 종교』(Barbarism and Religion)

      

“부정이 무를 함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시 말해 거울이 우리 자신의 유사성을 반영하지 않을 때, 지각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증명되지는 않는다.”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들」(Copernicus and the Savages)          


야만적 타자

철학을 탈식민화하라는 요청은 다른 무엇보다 훈육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식민지적 관계의 형성권력(shaping power)에 대한 예비적 추정이 요구된다. 그와 같은 탐구는 유럽인들이 인류학적 차이의 문제에 따라 취급되는 상이한 형식들에 의해 조건지워진 다른 민중들을 만나는 방식, 즉 그들을 착취하는 방식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포함한다.[1] 이 논문에서 나의 관심사는 철학자들이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야만인의 형상을 – 어떤 발명된 의미에서 – 어떻게 채택, 적응시켰는지 살피는 것이다. 특히 나는 다양하고 때로는 모순적인 방식을 음미할 것인데, 여기서 야만인은 살아 있는 부정 또는 문명화된 서구 인간성의 역전된 이미지로 출현한다. 나는 이러한 탐구작업 안에서 아주 커다란 영감을 얻었는데, - 이 논문이 비록 예비적인 개요에 불과할지라도 – 주로 아직 번역되지 않은 두 개의 기념비적인 철학적 역사문헌으로부터 그러했다. 그것은 이탈리아 학자인 세르지오 란두치(Sergio Landucci)의 『철학자와 야만인들』(Philosophers and Savages) 그리고 기울리아노 글리오치(Giuliano Gliozzi)의 『아담과 신세계』(Adam and the New World)다.[2]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에서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와 아도르노(Adorno)의 반유대주의적 입장으로부터 사이드(Said)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Beauvoir)의 『제2의 성』(The Second Sex)에서부터 세드릭 로빈슨(Cedric Robinson)의 『블랙 맑시즘』(Black Marxism)에 이르기까지, 서구 철학과 합리성에 대한 비판적 역사는, 만약 타자성이라는 사변적 주체화[종속, subjection]와 그것의 사회적, 물질적 대응요소들 사이의 결속이 불분명하다면 그 유사성에 대한 탐구작업으로 넘쳐나게 될 것이다. 식민지 기획에서 야만인에 관한 생각에 속해 있는 도구성은, 스페인의 정복사업에서부터 전지구적으로 계속되는 원주민들의 강탈에 이르기까지 어떤 지속적이고 섬세한 탐색에 반하여 활동하고 출현할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무관심한 인종주의자와 합법적인 전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것은 아카데믹하게 성찰하기 보다 정치적으로 투쟁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어서 나는 이러한 정당화 가능하지만 환원적인 반성에 반대하여 그러한 [개념]사용들에 대한 탐구작업으로부터 얻을 것이 많다고 제안한다. 야만인에 관한 생각은 유럽 사상가들에 의해 식민지적 근대성의 시련 안에 놓여진다. 아마도 이것은 주로 철학 자체의 정치학에 관한 역사적 이해로 인한 것이지만, 마찬가지로 현재 식민지적 상상물들의 모순적인 지속 안으로 몇몇 통찰력을 부여한다.      


야만인에 대한 사유는 근대 정치 철학의 출현에 관건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어서 진보 이데올로기와 발전에 관한 사회과학의 전개에도 기여했다. 즉 고전 정치경제학, 인류학, 사회학이 그것이다. 이 지적 격동의 시기에, 내면적 분투와 외적인 정복에 의해 난파된 유럽 – 기독교 관료주의의 매트릭스로부터 자본주의 세계의 식민지적 출현이라는 진통의 한가운데 – 에서는, 북아메리카의 원주민과 조우하는 와중에 야만성이 광범위하게 형상화되었다. 그것은  개념에 대한 어원론적인 암시에 따르는 바, 비록 대략적인 형상이었지만, 호모 실바티쿠스(homo-sylvaticus)에, 즉 숲의 인간에 관한 유럽적 상상력에 따른 것이었다.[3] 캐러비안과 브라질(우리가 아래에서 몽테뉴에게서 살펴볼 것인 바)에서의 조우와 정복의 이야기들에 따라 그려진 타자성(Otherness)의 이미지들이 선행되었다 해도, 근대 철학은 야만적인 차이로 출현하는 그러한 것들로부터 사변적이고 규범적인 학습을 이끌어 내고자 했는데, 이것은 특별히 ‘카나디안’(Canadians, [북미인디언 원주민들])이라고 불리워지는 야만성과 연관되었다. 포콕이 관찰했던 바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의 호기심 어린 실험자들이 인간 정신에 관한 그들의 가설을 [실험했던] 광대한 실험실”이 되었다.           


유럽 철학 ‘카나디안’의 첫 번째 철학적 출현은 신 무한성 관념의 본유성에 관한 데카르트적 사유에 대한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사이에서 발생했던 논쟁에서였다. 기술자이자 물리학자인 피에르 프티(Pierre Petit)는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과 만났던 원주민들 사이에 그와 같은 생각[본유관념]의 부재가 데카르트적 연역의 오류성에 관한 경험적 증명을 제공한다고 논증했다. 이러한 관점은 1641년 『성찰』에 대한 ‘두 번째 논박’에 등장한다. 어떤 관용어로서의 ‘카나디안 철학’은 실재적으로 1707년, 독일 교수인 요나스 콘라드 쉬람(Jonas Conrad Schramm)의 강의에서 바론 드 라혼탄(Baron de Lahontan, 이 사람에 대해 우리는 결론부에서 다시 논할 것인데, 그는 원주민들을 카나디안이라고 부르는 대신 ‘아메리칸’[Americans]이라고 지칭했다)의 저술들에 대해 답변하는 와중에 등장한다. 그가 지목하는 부분은 그리스 철학의 기원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져오는 대목이다. 거기서 그는 소위 ‘뉴프랑스’((New France[1763년까지 있었던 북미의 프랑스 식민지])라고 불리는 원래의 주민들의 ‘말더듬는’ 철학(‘stammering’ philosophy)에 대해 말한다. 야콥 부르커(Jacob Brucker)의 다섯 권짜리 비판적인 철학사(1742-44)도 마찬가지로 ‘카나디안들의 철학’(Philosophy of the Canadians)에 대한 긴 목록을 포함한다. 이것은 디드로의 『백과사전』(Encyclopaedia)을 따라 그들의 ‘자연 종교’를 일종의 자생적인 이신론(spontaneous deism)이라고 밝힌다.[5]       


야만인은 어떤 종류의 ‘타자’(Other)란 말인가? 최초에 그리고 아마도 두 번째와 세 번째에도, 야만인들은, 20세기 비판적 사유를 그토록 매료시켰던 그러한 ‘타자성’(the Others)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이성이 이질성(alterity)을 대면할 때 발생하는 불안하고 전복적인 성질을 결여하고 있다. 미셸 푸코는 그의 1961년 『광기의 역사』 서문에서 한계들의 역사(history of limits)에 착목한다. 이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의미에서) 문화의 외부, 텅 빈 진공으로부터 그것을 추궁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것의 가치들 만큼이나 분명하게 스스로를 드러냄으로써”[6] 그것을 헤집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의 역사성의 숨겨진 기반을 구성할 수 있다. 푸코는 여기서 비극적 경험으로 잊혀진 유럽 형이상학의 기원에 관한 니체의 규정에서 이것을 이끌어낸다. 그는 비극의 선행하는 폐쇄(foreclosure)라는 측면에서 광기(또는 비이성)만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꿈(또는 무의식)과 동양(the Orient)도 드러낸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서구 세계의 한계-경험’이었으며, 그것들 각각은 “우리 문화의 첨단에서, 한계를 밟아 가고, 동시에 어떤 원초적인 분리를 이룬다.”[7] 최근 차이, 타자성 그리고 인종주의 현상 안에서 타자성과 배제의 선언을 성찰할 때, 에티엔 발리바르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과의 대화에서  어떤 ‘본질적인’ 타자성(Otherness), 즉 ‘이상한 이중체’(uncanny double)를 드러낸다. “이들은 적대적 존재일 뿐 아니라 우리의 도덕적이며, 미적이고, 지성적인 가치들의 부정을 체현하는 존재이다. 타자란 동시에 가장 모순적인 방식으로 재현, 학습, 분류, 해부에 있어서의 어떤 수동적인 ‘대상’으로, 또한 실재하는 위협적 ‘주체’ 또는 문명과 구원으로 통하는 대안적 경로의 단순함으로 구축되어야 한다.”[8] 이것은 내재적이고 구성적인 이질성(alterity, 타자성)이다.                     


야만인은 그와 같은 이질성[타자성]을 재현하는 것 그것 자체인가? 발리바르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타자성(the Other)의 구축은 소외된 자기성(alienated Self)의 구축이기도 하다. 여기서 타자성에 귀속된 모든 특성들은 스스로 정당화된 것들의 전복이면서 왜곡이다. 또한 실재로 자기성(the Self)은 타자성의 타자(the Other’s Other)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자기성의 동일성과 안정성은 본질적 타자 또는 어떤 본질화하는 타자의 재현을 통해, 항구적으로 (상상 안에서) 표명되고 보증된다. 이런 측면에서 자기성의 정체성은 전복된 형상으로 타자성에 도달하는가?[9]     


대답은 복합적이다. 한편으로 내가 아래에서 탐구한 바로는 야만인은 어떤 의미에서 ‘완벽한 타자’이며, 부정성의 매트릭스 또는 축적을 생산한다. 그는 정확히 우리가 아닌 바, 그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부정성의 단순화된 형식주의라는 폭넓은 이유 때문에, 야만인은, 만약 어떤 한계-경험이나 낯선 조우에 따른 모든 경우에, ‘문명화된’ 인간들의 과시적 미덕들에 대한 회의주의와 역설적인 전복의 위치에서 최상의 의미를 제공한다면, 마찬가지로 선교사 문학(missionary literature)에 대한 이러한 철학적 텍스트들의 의존관계 효과로서, 캐나다 원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조우라기보다는, 의심할 바 없이 타자성에 관한 고전적이고 기독교적인 이미지 안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10] 세르지오 란두치가 관찰했던 바대로, 아마도 야만인은 정말 서양 정치철학의 잉여(caput mortuum)이다.[11] 이것은 - 문자 그대로 보면 ‘죽은 머리’(the dead head)인데 – 연금술사들이 그들의 실험에서 쓰고 남은 잔여물을 기술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다. 유비적으로 보면, 야만성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서양의 정치적 인류학의 구별하고 항목화하는 특성을 부정하는 불모의 생산물로 간주될 수 있다.      



반유형들(Antitypes)

란두치가 어마어마한 박식함을 가지고 탐색하고, 테르 엘링슨(Ter Ellingson)이 인류학의 인종적 유산에 대한 그의 과격한 비판서인 『고귀한 야만인에 관한 신화』(The Myth of the Noble Savage, 2001[12])에서 광범위하게 확증했다시피, 야만인의 형상은, 엘링슨의 유용한 공식을 빌리자면, ‘비교 부정’(comparative negation))의 생산물이다. 란두치는 몽테뉴의 유명한 에세이인 「식인종에 관하여」(Of the Cannibals)로 야만인의 철학적 발명사에 관한 시대구분을 시작한다. 이 논문은 존 플로리오(John Florio)의 17세기 초의 번역으로 알려졌는데, 브라질에서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들, 선교사들과 마주친 원주민들을 설명하는 아래의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플라톤에 답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국가이다. 이 국가는 어떤 종류의 교통수단도 증오하며, 문제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수에 대한 앎도 없다. 또한 치안판사도 정치적 탁월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봉사나 부유함 또는 빈곤이라는 말의 사용도 없다. 계약도, 전승도, 단절도 직업도 없고, 단지 멍청함만이 있다. 친족 관계가 없지만, 공통의 소유는 있다. 어떤 기계도 없지만 자연은 있으며, 토지 부양도 없고, 와인도, 옥수수도 또는 어떤 금속도 사용하지 않는다.[13]     

 

몽테뉴에게, 이러한 부정의 논리 또는 결핍의 논리는 근원적인 다양성을 틀짓도록 하면서, 인간성을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했다. 또한 문명인의 우월한 자부심에 의심스러운 파열구를 만들었는데, 이는 ‘야만주의’(barbarism)의 바로 그 범주를 상대화함으로써 그리고 야만인의 자연에의 커다란 근접성이 우리의 인위적 관습들의 ‘조악화’를 비난에 처하게 만든다고 제시함으로써 그렇게 한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에 대한 푸코의 연구를 인용하면, 이것은 서구 정체(政體)와 합리성에 대한 비극적 비판이라기보다 어떤 비판적-역설적인 것이었다.[14] 그의 말에 의하면, 소박한 따라서 보다 믿을만한 증인에 기대어, 몽테뉴는 그때 타자성 또는 부정에 의한 차이(difference-by-negation)라는 틀을 삶의 형식들(forms-of-life)에 관한 기술 – 특히 인류학 – 로 채워 넣은 것이다. 이 삶의 형식들이란 중세의 보편화하는 정치적 인류학과 같은 어떤 것을 정의했던 지배적 교설들을 침식하려는 우리 자신의 형식들과는 비교불가능할 정도로 충분했다. 즉 기독교적인 민족 일치(consensum gentium, 인종일치)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서의 인간이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몽테뉴의 야만인이라는 개념의 용도와 효과들의 독자적인 특성(sui generis)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부정성과 차이가, 스스로의 탁월성에 있어서 유럽의 결정적인 신뢰에 관한 어떤 의심스럽고 역설적인 미결정을 드러냈으며, 삶의 원초적인 형식들에 관한 공평무사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비교 부정의 논리는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로부터 온 첫 번째 여행 이야기중, 후원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에게 보내는 어떤 유명한 편지가 있는데, 거기서 피렌체의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그들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 그런 것 따위는 그들에게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물품들은 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은 공동으로 소유했다. 그들은 왕도, 정부도 없이 함께 살며, 각자가 그 자신의 주인이다. 그들은 그들이 즐길 만큼 많은 아내를 두었으며, 아들은 어머니와, 남자 형제는 여자 형제와, 남자 사촌은 여자 사촌과 그리고 그가 만난 첫 번째 여성과 함께 산다. 그들은 그들이 즐기는 만큼 자주 결혼을 파기하며, 교회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 종교도 없으며, 심지어 우상숭배조차 없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자연에 따라[secundum naturae] 살고 있으며, 스토아주의자라기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산술에는 상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물물교환도 없다. 종족들은 서로 간에 어떤 기술이나 질서 없이 전쟁을 수행한다.[15]     


1505년, 베스푸치의 개인적인 기록은 유럽에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첫 번째 시각적 재현물 중 하나로 등재될 수 있을 것이다.[16]     


콜럼버스 자신의 1493년 편지는, 그의 위대한 ‘발견’을 천명하는 바, ‘히스파니올라’(Hispaniola)의 원주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들은 “철이나 금속도 없고, 무기도 없으며, 그러한 것에 적합하지 않다.” 1511년, 페트르 마티르 드 앙게리아(Peter Martyr d’Angheria)는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유럽인의 지각을 드러내는 또 다른 기념비적인 텍스트에서, 유사한 말을 쓰게 되었다.      


땅은 태양과 마찬가지로 공동의 것이며, 물도 그러하다. 내 것과 네 것(모든 고통의 씨앗)은 그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 소수의 물건들로 그들은 만족하며, 어떤 사치나 과잉도 그들을 즐겁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소유란 무한한 고통을 야기하며, 내 것을 취한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러한 단순무구한 영혼들 가운데, 약간의 의복만이 벗은 자들에게 제공된다. 이들에게는 무게를 재거나 측정하는 것이 전쟁 기술을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필요치 않은 것이며, 수많은 분열의 씨앗인 사악한 화폐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진실을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옛저자들이 그토록 많이 이야기했던 황금시대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법의 강화 없이, 즉 분쟁, 판결 그리고 반란 없이, 단순하고 순진무구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자연에 만족하면서, 다가올 일에 대한 지식에 갈급해 하지 않으며 말이다. (...) 그들은 너무나 작은 것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넓은 땅에서 두려움보다는 풍요로움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전에 말했던 바와 같이) 그들은 열려진 정원에서 분열을 만들지 않고, 영토를 나누거나 담으로 둘러치지 않으면서, 노역 없는 황금시대를 사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법률도 없이, 책도 없이, 그리고 판사들도 없이 서로 간에 이 일을 잘 해 낸다.[17]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는 그의 『이탈리아사』(1537-1540)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해 말하길, “그들은 어떤 지식(scientia)도 알지 못하며, 사물에 대한 그 어떤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다”고 했다.     


마가렛 호젠(Margaret T. Hodgen)이 보여준 바에 따르면, 16세기 초에 등장한 이러한 말들과 다른 예들을 학자들이 인용하면서, 그와 같은 묘사들이 ‘보수화된 진술들’[18]을 구성했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에게서도 특이한 것이 아니었으며, 마찬가지로 특별히 철학적인 저자들이라고 그 방향성에서 다르지도 않았다. 이국적이거나 야만적인 타자는 유럽적인 문명화의 손꼽히는 요소들, 즉 법, 소유, 주권 권력, 기계 기술들, 농업, 수학, 문필 등등의 결여로 정의되었다. 스테판 그린블라트는 그의 언어적 식민주의의 지각 연구에서 “인디안들의 헐벗음에 대한 언급은 전형적인 것이다. 의복의 상징성으로 고심하던 지배 계급에게, 인디언들의 신체적 노출은 어떤 문화적 공동상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유럽인들의 눈에인디언들은 문화적으로 헐벗은 것이다. 신세계의 거주자들이 본질적으로 그들 자신의 문화를 결여하고 있다는 이러한 환상은 일찍이 그리고 분명하게 견지되었으며, 심지어 그러한 의견과 모순되는 증거들을 마주하고도 마찬가지였다.”[19] 아감벤의 『호모사케르』에서 규정된 바, 삶(zoe)과 생명(bios), 정치적 삶과 ‘헐벗은’ 생명 사이의 분할을 공고히 하는 것은 여기서 날 것 그대로의 문자로 표명되었다(우리가 아래에서 더 상세하게 기술하듯이, 비록 인디언들의 문화적, 정치적 불모성이 모든 유럽 철학자들에 의해 공유되었던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이제 이러한 특유한 규칙, 즉 차이의 부정적 명세화(itemising)는 16세기 이래 친근한 것이 된다. 그리고 또한 여행자의 연대기들을 가로질러 등록될 수 있게 되며, 계몽주의 백과사전과 사전들에도 실리고, 칸트의 인간학에서부터 다윈의 항해에도 동반한다. 어쩌면 놀라운 예가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선교사인 루이 엔느팽(Louis Hennepin)의 『유럽보다 큰 나라로의 새로운 여행』(Nouveau voyage d’un pais plus grand que l’Europe)에서 발견된다.      


사제들은 그러한 미개 종족과 관련해서 주권군주에의 이러한 의존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했다. 이 종족들은 어떤 종교적 진리나 거짓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규칙도 없이, 명령도 없이, 신도 없이, 예배도 없이 살아가며, 이성은 물질 안에 파묻혀 있고 종교와 신앙에 관한 가장 상식적인 사안들도 추론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자들이 카나다 원주민들이다. (...) 그들은 어떤 복종도 없이, 법률이나 어떤 형태의 정부나 정책도 없이 살아 간다. 그들은 종교에 관해서는 백치와 같으며, 그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는 교묘하고 영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엄청나게 미신적이다.[20]        


엔느팽의 부정성 리스트에서 잃어버린 것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어떤 주요한 동기이다. 그것은 야만인들이 내 것 네 것을 모른다는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소유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예들 가운데(주로 란두치, 엘링슨 그리고 호젠에서 취해진) 우리는 그것을 아래에서도 만날 수 있다.      


△ 네덜란드 지리학자 요아네스 드 라에트는 1633년 『새로운 항로』에서 “그들은 어떤 법률도없고, 아무런 정치제도도 없으며, 마치 짐승처럼 행동한다.”고 썼다.     


△ 169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야만인, 또한 보통 숲 속에 산다고 알려진 사람들은 종교가 없으며, 일정한 주거지도 없고, 동물이라기 보다는 다만 야수들에 가깝다.”     


△ 군인 탐험가인 바론 드 라혼탄이 쓴 1706년 『북부 아메리카의 기억』(Mémoires de l’Amérique Septentrionale)에는 ‘야만인들의 풍속과 예절’이라는 장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들은 법도 판관도 성직자도 없다.” “야만인들은 내 것과 네 것의 구분도 없다.”     


△ 자연주의자 뷔퐁(Buffon)의 1749년 책인 『인류 안의 다양성』(Variétés dans l’Espece

humaine)에는 “규칙도 없고, 법도 없으며, 군주도, 일정한 사회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쓰여졌다.     


△ 디드로의 백과사전 ‘야만인’ 항목에서 루이 드 야쿠르(Louis de Jacourt)는 “미개인들은 법, 경찰 또는 종교 없이 살아가며, 정착지도 가지지 않는다”라고 했다(1765년).     


△ 같은 해에 라이프니츠는 『신인간지성론』에서 “심지어 영혼에 관해서도, 그들의 실천적인 도덕성은 몇몇 측면에서 우리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상품의 축적에 대한 탐욕도 지배에 대한 야심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칸트는 1770년 그의 철학적 인간학 강의로부터의 강의 노트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문명화의 능력이 없다. 그들은 어떠한 원동력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감정도 열정도 없기 때문이다.”[21]     


△ 찰스 다윈은 1839년, 티에라 델 푸에고(Tierra del Fuego)의 주민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상이한 부족들은 어떤 정부나 수장도 가지지 않는다. 그들 각각은 여전히 다른 위협적인 부족들에 둘러쌓여 있으며, 다른 방언을 하고, 단지 사막 경계나 중립 영토에 의해 서만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 간의 전쟁의 이유는 생존 수단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 그들은 집을 가진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며, 가정의 정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남편은 부인에 대해, 일 잘하는 노예를 대하는 광포한 주인이기 때문이다. [...] 여기서는 정신의 고귀한 힘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 거기에 머릿속에 뭔가를 상상하거나, 비교를 위해 추론하거나, 뭔가를 결정하기 위하 판단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22]     


만약 의복과 외양의 위계적 코드들에 관한 편견을 가진 유럽인들이 야만인들의 헐벗음에 의해 문화적으로 혼란을 겪었다면, 법과 소유의 안경을 쓰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들이 추정되어야 할 지점에서, 현실적으로 드러난 모든 것이 부재하고 결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호젠은, 이러한 타자에 대립되는 인종중심주의적인 논리에 대해 특정한 현대적인 것(또는 특별히 유럽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때 타자란 부정적인 것 또는 자기성의 전복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12세기에 고대 프랑스어로 쓰여진 『알렉산더 이야기』(Roman d’Alexandre)에서 그것을 마주했는데, 여기서 인도 ‘브라흐민’(brahmin, 최고계급)은 “어떤 건축술도, 금속도, 어떠한 건물도, 불도, 빵도, 와인도, 의복도, 마찬가지로 생산적인 예술이나 즐거움이 뒤따르는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들로 기술된다.[23] 그녀는 그것을 또한 고대 로마와 그리스 문헌에 나오는 스키타이 유목민에서도 발견한다(유럽 문필가들에 이해 아메리카 인디안 원주민들의 환상적인 선조들 중 하나로 이들이 지목되었다). 이들은 기원적 1세기에 스트라보(Strabo)에 의해 알려졌는데, “음식을 저장할 줄도 모르며, 물물교환을 제외하고는 무역 행상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 이전에 호메로스는 “결코 계약과 돈벌이로 삶을 영위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들을 공동 소유로 하며 (...) 특히 그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람들에 대해 묘사한다.     



만약 우리가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의 사상가들이 세계를 고대 로마와 그리스 전통에 그들의 성서적 혼성물을 뒤섞은 틀을 통해 해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 부정이라는 순전한 단순성이 전혀 놀라운 것은 아니다. 특히 그것이 그들의 사적 소유와 그것의 사회적 결과에 대한 표면적인 무지에서 기인할 때, 신세계의 ‘야만인’은 황금시대라는 고대적 유토피아에 의해, 그리고 야만성의 고전적 형상에 의해 끊임없이 시달리는 처지가 된다.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가 제시한 바에 따르면, 야만성의 근대적 형상이 출현하기 이전에 나온 ‘야생성의 형식들’에 관한 그의 획기적인 연구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우리가 야만성을 취급하는 것은 ‘부정성에 의한 명시적인 자기-정의의 기술’, 다른 말로 반유형(antitypes)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24] 어떤 측면에서 보면, 근대적 ‘야만성’이란 고대와 중세 시대 유럽 문화의 실재적 심리적 여백을 활성화하고 위협한 야생적 인간(wild man)에 관한 환상적 형상의 상상적 실현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전식민지적인 호모 실바티쿠스의 형식화, 기획투사 그리고 국지화에 어떤 기괴한 것이 있는가? 또는 어떤 식민지화하는 합리성이 한계경험과 더불어 마주하는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는 ‘고귀한 야만인’을 인지적인 제국주의에 대한 장애물처럼 여기도록 부추겨지지만, 그러한 정체성[동일시]은 잘못된 것이다. 테르 엘링슨 그리고 그 이전의 아서 러브조이(Arthur Lovejoy)[25], 기울리아노 글리오치와 미셀 뒤셰(Michèle Duchet)가 아주 자세하게 기술한 바에 따르면, ‘고귀한 야만인’이란 광범위하게 유포된 반동적이고 부정적인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다. 19세기 전제국주의적인 인류학과 철학의 논박자들은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신화’를 공격했는데, 이는 장-자크 루소의 보다 강력한 혁명적 유산을 공격하기 위한 어떤 적절한 대리물로 취급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그 자신이 결코 그러한 공식을 사용하지는 않았으며, 북미 대륙 원주민의 사회적 실재와 자연의 원초적 상태는 결정적으로 차이나는 것으로 봤다. 엘링슨이 주목한 바, 고귀함과 야만 사이의 연결은 마르크 레스카보(Marc Lescarbot)가 17세기 초에 ‘뉴프랑스’에서 했던 경험에 대한 일시적이고 기묘한 생산물이었다.      


도덕성과 자연 간의 관념화된 등식[고귀한 야만인]은 합법적 이론에 기반한 기술적 개념이라기 보다, 유럽인들이 합법적 코드와 제도들로 재인지한 어떤 것의 부재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사회들에 관한 문제를 고려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유럽적인 ‘고귀함’으로부터 도출해 낸 어떤 모델을 투사함으로써 이루어지는데, 이는 만족스럽게도 광범위한 영역에서 유럽적 스타일의 정치적 그리고 법적 구성물들의 부재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야만적’ 인간들의 이상화나 그들의 가치 승격을 유럽의 부패를 폭로하는 예화들의 위상과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민족학에 따라 식민주의적 기획의 일환에서 유럽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 민족학은 후속세대들이 그들의 앞선 세대가 한번 명백한 문화적 파괴를 겪은 다음,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를 보여준다.[26]     


엘링슨이 결론 내린 바에 의하면,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신화에 의해 오인된 것은 “비교 부정, 그리고 덕과 악덕의 변증법이라는 황금시대 담론의 지루한 변형”에 관한 기호라기보다, “계몽주의의 사회문화적 변혁의 진보주의와 19세기 인종주의의 점증하는 부정적인 힘과 그것에 대립하는 힘들 간의 요란한 반응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것이다.”[27]    


뒤셰의 견해에 입각하자면, 우리는 좀 진전된 논증을 할 수 있다. 즉 야만인 세계의 실재성이 ‘부정성의 네트워크’에 붙잡혀 있는 한, 즉 그 부정성이 ‘타자의 타자’(Other’s Other), 다시 말해 그것이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소동 안에서 내적으로 모순된 유럽의 ‘자기’(Self)라는 스크린이나 거울로 기여하는 한, 다양한 부정적 유토피아들의 출현 뿐 아니라 수용가치의 전도와 결합 작용에 대한 유사-구조주의적 작동에 그것들을 개방하는 것이 바로 그 부정성의 형식주의이다.[28] 내가 아래에서 탐색하는 바대로, 그것은 부정성이 우선시되는 야만인의 형상 안에 역사적 돌연변이를 초래하는 문제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 야만인은 부정적으로 소유 없는 인간(또는 그 외에 긍정적으로, 공동소유의 인간), 종교 없는 인간(또는 비-일신론적인 심적 실천들을 가진 인간), 정부 없는 인간(또는 평등한 인간), 산업적 성격이 없는 인간(또는 자유로운 인간)인가?     


내가 바로 앞서 암시적으로 설명한 대로, 부정성은 마찬가지로 전복될 수 있다. 어떤 비판적인 가면 또는 유토피아적 가면에서 말이다. 그것은 앤서니 파그덴(Anthony Pagden)이 이름 붙인 ‘야만적 비판’이라는 형식, 즉 부정적 전형으로서의 야만성의 역전, 문명화된 것의 부정의 부정인 것이다.      

 

야만인은 그 자신이 제작한 세계, 어떤 극단적이며, 불가해하고 자주 불쾌감을 일으키는 제의 행위의 세계, 이성보다 정념에 의해 통제되는 그런 세계에 산다고 믿어졌다. 내가 야만적 비판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문학적 이미지는 어떤 중차대한 측면에서, 이러한 전형의 전복이다. 드라이든(Dryden)의 상상적인 멕시코인들, 윌리암 데버넌트 경(Sir William Davenant)의 페루인들, 볼테르의 잉카와 휴런족, 디드로의 타이티인들, 알라이스의 데니스 바이라스의 오스트리아인들, 바론 드 라혼탄의 휴런족 (이것저것 모으자면 이와 같다) 이들은 모두 문명인들의 세계에 대한 공격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연의 책[본성에 관한 기록]에 쓰여진 바를 이해하는데 실패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결국에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데 실패한 것은 바로 우리인 것이다.[29]     

유토피아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에 – 그리고 화이트가 야생성에 관한 생각에 대해 적절히 주목하는 바대로 –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위기에서, 반유형은 어떤 긍정적인 유형이 되며, 심지어 어떤 원형(prototype)이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 사회의 긍정적인 가치화보다(예컨대 제수이트파인 샤를부아Charlevoix와 같은 선교사들의 저술들에 그것이 전반적으로 부재한다 해도), 야만인의 ‘고귀함’(긍정적 가치라는 의미에서)은 그것의 부정성에 놓여 있다. 이제부터 나는 몇몇 독자들이 비교부정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가로지르는 어떤 반향을 이미 들었다고 상상할 것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의 슬로건, ‘신도 아니고 주인도 아니다’라는 목소리이다.         


야만적 디스토피아와 식민지적 유토피아의 이런 부정적 변증법은 아마도 문명화된 것에 관한 비교 부정으로 야만인의 문학적 예시들로 가장 잘 알려진 저작들 안에 현존할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1막 2장에 나오는 곤잘로의 대사가 그것인데, 여기서 그가 말하는 반정치적 ‘국가’(commonwealth)는 프로스페로의 섬에서 그가 보았던 것이다.      


그 국가에서는 모든 것을 반대로
시행하겠습니다(by contraries Execute all things). 
어떤 종류의 거래도 금지하고
관리도 없고 학문도 없고
빈부도 없고 고용도 없고
계약도 상속도 영역도
소유지도 경작지도, 포도원도 없고
금속, 곡식, 술, 기름도 사용치 않고
직업도 없어 남자들은 모두 놀고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되 모두 순수하며
통치권도 없고...
[...]
모든 것은 자연히 땀과 노력 없이 생산될 것이고
반역도, 중죄도, 칼도, 창도, 총도 어떤 무기도 필요없고
저도 갖지 않을 것이지만 자연은 그 산물을 풍부히 내어
내 순진한 백성들을 먹여줄 것입니다.


셰익스피어 학자들이 19세기 후반에 주목하기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이 대사는 몽테뉴의 ‘식인종에 대하여’의 의용(détourn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호젠이 강력하게 주장한 입장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는 만약 이 구절이 그러하다면, 셰익스피어는 최소한의 원본으로부터 빌려온 것이며, 브라질 인류학의 정치-윤리적인 가르침들에 대한 몽테뉴의 대부분의 전통적인 숙고를 가져온 것이다. 아마도 『템페스트』에서 더 말해질 것은 이것이 유럽인들의 유토피아이며, 일종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 빈서판)로서의 섬, 우리가 문명과 그 불만을 삭제하거나 뒤집은 곳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이것은 ‘원주민’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원주민들은 보다 더 경멸적인 칼리반(Caliban)의 형태로 수용되며, 또한 보다 더 불안정한 이미지로 수용된다.      


우리는 아마도 현재 여기서 어떤 종류의 2차적이고 상상적인 식민화에 속해있는지도 모른다. ‘야만적인’ 식민화된 땅들 위에 투사되고, 그것을 장소화하는 어떤 것, 어느 유럽인이 그 자신의 문명화의 부정을 욕망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화이트가 제시한 것처럼, 문화적 위기의 순간에 반유형의 원가치(valence)를 역전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어떤 의미에서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오의 실재정치(Realpolitik)에 관한 감탄사와 더불어 식민지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보증에 파열구를 만든 것이다. “그의 국가의 종말은 시작을 망각한다.” 식민지에서 국가와 안녕을 고하는 곤잘로(Gonzalo)는 국가의 탄생이 “반역, 중죄, 검, 창, 칼, 총”의 문제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1969년 마르티니크의(Martinican) 반-식민주의 시인이자 정치가인 애메 세자르(Aimé Césaire)는 그의 작품인 『어떤 템페스트』(A Tempest)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도입했다. 여기서 곤잘로의 입을 통해 그가 말하는 바도 마찬가지로 부정적이고 원초적인 식민주의 유토피아의 한계에 대한 것이다.        


만약 내가 믿는 바대로, 그 섬에 사람이 살고 있다면,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희망대로 그것을 식민화한다면, 그때 우리는 우리의 결함들을 거기 수입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가 문명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야만인들, 고귀하고 선한 야만인들은 어떤 복잡함과 혼란도 없이 자유롭다. 그것은 우리가 주기적으로 가서 우리의 노쇠를 회복할 영원한 젊음을 가져다 주는 샘과 같은 것, 영혼을 도시풍으로 만든 것이다.[30]                    


야만적 전쟁 또는 버지니아에서 토마스 홉스 읽기

나는 정치철학 또는 그 역사에 대해 잊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합당해 보인다. 그것은 근대철학자들 중 가장 날카로운 반-유토피아주의자인 토마스 홉스로 되돌아가기 위해, 『템페스트』에 있는 정치적 실재론과 반-정치적 목가의 변증법에 대해 착목하게 한다. 그는 란두치의 이야기에서도 관건적인 저자이다. 홉스와 더불어, 우리는, 반유형으로서 표면적으로 야만성의 역사횡단적인 불변성과 수월성(portability)이 어떻게 매우 상이한 철학적 내용물들과 기획들을 함축하는 부정성과 유비되는 것으로 보이는지 명확하게 탐구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40년 후에,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들로 자연적 국가를 묘파했다.      


인간이 경외심을 가지는 공통 권력(common Power) 없이 살아 가는 동안, 그들은 전쟁 상태라고 불리는 어떤 조건에 처해 있었다. [...] 그와 같은 조건에서는 산업을 위한 어떤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조건으로 인해 그 결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문화(Culture of the Earth)도 없다. 항해술도 없고, 따라서 바다로 들어올 만한 어떤 상품의 사용도 없으며, 평안을 위한 건물도 없고, 운송 도구들도, 또한 그와 같은 도구들을 운반할 만한 힘이 요구되는 물건들도 없다. 대지에 입각한 지식도 없으며, 시간에 관한 사유도 없다. 예술도, 문자도, 사회도 없지만 최악의 것, 즉 폭력적인 죽음에 관한 항구적인 두려움과 위협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고립되고, 빈곤하며, 더럽고, 잔인하며, 결핍된 상태다.[31]     


근대 정치철학은 논쟁의 여지 없이 부정의 매트릭스을 탄생시켰으며, 정체(政體)의 형식적이고 정언적 필연성에 대해 자연상태 안에 순수한 결핍에 관한 위협과 동시에 어떤 상상을 배치한 것이다. 그러한 것은 인위적인 인간(artificial man)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버니지아 회사(Virginia Company)의 주식 보유자로서 식민지 경영에 연루되었는데, 비록 그런 홉스가 ‘아메리카의 야만인들’에 대해 드물게 언급했다 하더라도, 그는 그의 저작들에 어떤 핵심적인 지점에서 그렇게 한 것이며, 란두치가 강력하게 논증한 바에 따르면, 홉스의 정치적 인류학을 증명하거나 떠받치는 북아메리카인들의 삶의 양식에 관한 인종적 사유는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Homo homini lupus est)는 식민주의적 여행의 이야기에서 최초로 사용된 표현이었다. 그의 유명한 “고립되고, 빈곤하며, 더럽고, 잔인하며, 결핍된”이라는 정식 이후 두 단락은 회의주의적 독자에 관한 응답을 예기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와 같은 전쟁 상태 또는 그러한 시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결코 일반적으로 전세계에 걸쳐 그러하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곳이 많이 있다. 아메리카의 많은 곳에서 야만인들은 작은 가족 단위의 조직을 제외하고는 자연적인 욕구에 따라 살아가며, 어떤 정부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전에 말했다시피 오늘날에도 그들은 그와 같은 야만적인 관습 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거기 존재할 만한 어떤 방식의 삶이 있다면, 그것은 두려워할 어떤 공통 권력(common Power)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전에 평화로운 정부 아래에서 살아 갔던 사람들이 내전으로 인해 패망해 가곤 했던 삶의 방식에 따라 말이다.[33]     


야만적 반유형에 관한 홉스의 용법에서 여러 요소들은 살펴볼 가치가 있다. 홉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인간학과 심리학을 강하게 거부했다. 이것은 스페인 휴머니스트이자 신학자인 세풀베다(Sepúlveda)가 인디안들을 ‘본성적 노예들’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사법적 논박을 위한 방어책으로 제공되었다.[34] 그는 총체적으로 정치학의 인위적 특성을 긍정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즉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유와 같은 상태는 어떤 총체적으로 인위적인 제도이며, 반면 만약 우리가 인간들 사이의 ‘자연’ 상태에 대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내전’(civil war)의 상태일 것이다. 홉스적인 정치철학에서 자연스러운 정치적 배치의 거부는 제도화된 정체성, 즉 인위적이면서도 불가피한 것, 사회적 삶과 어떤 정체 아래에서의 삶 사이의 그러한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에 수반된다.      


홉스의 첫 번째 주요 저작은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의 탁월한 번역이었다. 이 텍스트는 도시 안에서의 무장 봉기를 하나의 광범위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35] 그는 유럽 도시나 국가의 지평 안에서 상호살육하는 전쟁의 원인을 주제로 다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고대 아테네나 당대의 영국에 존재하는 것이며, 아메리카 여행 담론들에 관한 선택적 샘플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홉스는 ‘아메리카의 야만인’의 삶을, 모든 생산적이고 재산권적인 행위들을 소진시키는 하나의 항구적인 전쟁과 불안정의 상태로 묘사했다. 사람들은 홉스의 북아메리카인들의 전쟁상태에 대한 공포스러운 이미지가 반-식민주의 저항에 관한 위협적인 보고라는 기능을 갈등과 전쟁에 관한 원래의 실천에 관한 어떤 사안, 즉 이를테면 버지니아 회사 자신의 1622년 제임스타운 정착 시기에 대한 보고보다 더 많이 해 내는지 궁금해 한다. 비록 그가 분명히 아메리카 야만인을 문명화된 ‘기술들’의 위계에서 열등한 단계에 놓았다 해도, 홉스는 그의 17세기 합리주의자 동료들과 같이 궁극적으로는 동류적이며 역설적으로 평등주의적인 철학적 인간학을 유지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이는 필수적이며 유익한 것이었지만, 그것들은 본성적[자연적]이지는 않았다.       


그와 같은 접근은 또한 사람들이 당시 야만적 조건에 있었던 유럽 국가들 자신들의 과거를 톺아볼 수 있게 했다. ‘이질적인 지질학적 시간’(allochronic)으로서의 타자에 관한 지각,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음에 대한 지각과 다른 시간대의 어떤 공간 안에 살고 있음에 대한 지각이 인간학적 시선의 구성물로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36] 이것은 요하네스 파비안(Johannes Fabian)이 ‘동시간성’이라는 말로 비-서구적 문화의 관념을 배치했던 바이기도 하다. 그것은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유표된 야만인의 형상 안에 극단적으로 표명된다. 피에르 클라스트르(Pierre Clastres)는 이러한 관점을 “고대 서구의 확신 [...] 즉 역사는 일방향적이며, 권력이 부재한 사회들은 우리가 존재하기를 멈춘 바, 그런 이미지이며, 우리의 문화란 그런 사회들이 그들을 위해 되어야만 하는 바, 그 이미지이다.”[37] 이 주제는 이후에 로크의 언명인 “최초에 모든 세계는 아메리카였다”로 응결되며, 1642년 홉스의 『법학요강』(Elements of Law)에서 어떤 중대한 모습을 띈다. 여기서 홉스는 ‘야만 국가들의 경험’에 대해 쓰는데, “우리 조상들의 역사에 따르면, 이들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으며, 독일과 다른 시민 국가들에 현재에도 오래된 거주자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편의 용품과 장신구 없이 살아가며, 단명인 사람들을 발견한다.”[38]     


그림 1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관해 기획된 ‘야만’에 관한 이러한 유럽적인 내투사(introjection)는 홉스의 『시민론』(De Cive) 권두 그림에서 도상적으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시각적으로 토마스 해리오트(Thomas Hariot)의 1588년 책인 『버지니아 신개척지에 관한 간략하고 진실된 보고』에 드 브리(De Bry)가 그려넣은 판화에서 따 온 것이다(그림 1).[39]       


생산, 과학 그리고 법의 장식물을 가지고 있는 최고통치권의 상(sovereign Imperium)이 왼편에, 야만적인 자유의 상(savage Libertas)이 오른편에 배치된 것(이 둘은 종교적 권역에 의해 한계지어져 있으며, 정치적인 지배와 심판의 권역으로 묘사되어 있다)은 비교 부정의 실천에 대한 어떤 보다 능률적인 대응이 될 수 없었다. 반면 동시에 그것은 공공연하게 억압된  근대 정치철학의 유토피아적 차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홉스 뿐 아니라 로크와 아담 스미스도 그러한 질서, 법률 그리고 생산물이 자유라는 대가를 치르고 보존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이 도상학은 또한 우리에게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수많은 유럽적인 상상력이 고전적인 시각과 정치 문화에 침윤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데, 드 브리의 예에서, 사람들은 신세계와 구세계 ‘야만성’ 사이의 생생한 연결을 지어냈던 것이다. 이것은 홉스의 『법학요강』에서의 성찰과 일치하는 방식이며, 그들 자신의 ‘자연 상태’에 속한 영국제도(英國諸島)의 고대 거주민들에 대한 일련의 판화, 그림들이 포함된다(그림 2).[40]      

보다 이론적인 수준에서, 홉스 자신의 야만적 반유형에 대한 용법은 다음과 같이 제기된다. 즉 그것은 서구 역사를 가로지르는 어떤 자민족중심주의적 불변항을 작동시키기 보다, 야만인의 형상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방식 안에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부정의 위계(hierarchy of negations)라는 개념 안에서 표명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비록 홉스의 목록이 넓게는 몽테뉴와 일치하고, 실제로 호젠에 의해 인용된 고대와 중세의 예시들에 반향을 주었다 해도, 하나의 부정이 최상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국가의 부정(the negation of the state)이다. 주권적 정부의 야만적 부재는 이로부터 유래하는 것이고, 또한 그것은 다른 모든 결핍들, 즉 법률, 소유, 안전보장, 농업 발전, 생산적 노동, 예술 등등을 이끌어낸다. 로크를 따라 이러한 위계의 탈구와 대조하면,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토지 소유권의 부재이며, 지배의 부정, 즉 타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특별하게 정부에 속하는 그것이다.      


비교 부정의 이러한 재결합은 생산적 발전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 질서의 문제로부터 오는데, 아마도 이것은 디스토피아적 폄훼와 민주화된 유토피아 사이를 요동치면서, 비교 부정에 관한 도덕적 공리론 너머로 움직이는 가운데 중차대한 것이 될 것이다. 이는 또한 사회 발전의 역사적이고 유물론적인 문제를 향하는 것으로서, 법률, 소유, 정부, 예술과 종교적 안식처의 상부구조를 떠받치는 기초로 기능하는 지속적인 방법이다.[41] 루소의 인간학적 성찰들의 전조가 되고, 로크적인 소유 이데올로기를 근거짓는 이 패러다임은 고전 정치 경제학의 전개에 기초가 될 것이며, 그것에 수반하는 철학적 인간학은 무엇보다 로버트슨(Robertson)의 『아메리카의 역사』로부터 아담 스미스의 법, 역사 그리고 경제학에 관한 저술들이 근거하는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저술 안에 존재한다.      


란두치의 경우(로날드 미크Ronald Meek의 경우에는 그의 폭넓은 통합적 연구[42]에서), 그리고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사회과학에서, 야만인은 ‘발전’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바,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변화와 갈등에 관한 실증적 지식의 방향에서, 문명화된 유형과 야만적 반유형의 형식주의적 반전 너머로 중요한 발걸음을 내 딛을 것이다. 이 ‘진보적’ 역사는 맑시즘의 과학적 전조로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입장 안에 있으며, 근대 인종주의가 합리주의적인 것에서 ‘야만’에 관한 사회-역사적 개념으로 이동하는 핵심적인 기능이라는 고무적인 사실을 다소 빠르고도 부드럽게 구체화해야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는 또한 어째서 비교 부정의 틀은 변형되지만,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원-인종학적(proto-ethnological) 철학에서 그것이 포기될 수 없는지에 대해 소극적으로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소유의 부재가 야만적 조건에 귀속되는 모든 다른 종류의 부재들, 결핍들, 그리고 지체(遲滯)들을 이끌어 낸다는 로크적 공리의 지속성 안에서 표명되어진다. 마찬가지로 이것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의 저자들이 북아메리카의 제수이트 선교사들의 여행기사들을 흡수하고 ‘편집’했던 그 극단적으로 선택적인 방식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들은 원주민들의 농업기술을 폄하하거나 집단적인 정치적 자유를 부차화한다. 이는 로크가 정립한 부정의 위계를 보증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것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로서, 개척자-거주자 관계를 강화하는 바, 이는 오드라 심프슨(Audra Simpson)이 말한바와 같이, “토착민이 되는 것이란 결핍의 위치에 구조화된다는 것이다”[43]를 의미한다.     


그림 2


하나의 정치적 경이?

따라서 우리는 그 가설을 의문에 부쳐야 한다. 란두치의 탐구를 뒷받침하는 것은, 역사주의나 발전주의, 심지어 인종적 자본주의의 소유권화된 이데올로기가 가미되어 있다 해도, 합리주의 또는 회의주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오로지 역사 유물론의 전조인 경우에만 말이다. 또는 적어도 우리는 토착민적 삶의 형태들에 관한 암시적인 부정을 수립한 맑시즘적 단계론 안에 잔존하는 것에 관해 보다 자기비판적인 지각을 강제하기 위해 철학적 야만성에 관한 비판적인 사료편찬과 같은 관점을 널리 퍼트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란두치의 텍스트로부터 어떤 중요한 가르침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그가 논문 – 이 논문은 소위 ‘뉴프랑스’에 있었던 제주이트들로부터 유래하는 선교사 여행기사를 참조하여 만들어졌다 - 에서 야만성에 대한 유럽 철학의 개념화 역사 안에 존재하는 핵심적인 전환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논문에서는 국가 없는 사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런 반홉스적인 논증의 날카로운 진술은 통치되는 삶과 사회적 삶의 동일성을 고려하는 것으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적 존재’(zoon politikon)라는 개념 이래로 유럽의 정치적 사유를 지배한 것이며, 1711년부터 라혼탄의 바론(Baron de Lahontan)의 저술들에 대한 응답으로 라이프니츠의 텍스트에서 발견되어지는데, 여기서 『모나드론』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로쿼이족과 휴런족은 [...] 아리스토텔레스와 홉스의 과도하게 보편적인 정치적 준칙들을 역전시켰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 모든 민중들이 치안판사 없이, 어떤 분쟁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 [...] 하지만 이러한 야만인들의 무례함이란 것이 그리 필연적인 것은 아니며, 선(the good)을 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사회체들과 국가들의 기초다.[44]     


1년 전 편지에서도, 그는 라혼탄에 대한 그의 독서를 언급하면서, 비교 부정의 논리를 전복했다. 더 나아가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이 지역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떤 정부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 완전히 진실입니다. 그들은 어떤 싸움도 모르고, 증오나 전투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소수지요. 이들은 상이한 민족들과 언어들에 속한 사람들에 대항하고 있지요. 나는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무지했고, 홉스에 의해 무시되었던 하나의 정치적인 경이(a political miracle)를 다루고 있다고 단언합니다.[45]     


이러한 주장의 ‘진실성’이 무엇이든간에, 라이프니츠의 정치적 경이라는 언급은 아메리카 토착민들과의 조우에 관한 대부분의 유럽적이고 철학적인 응답으로부터 거리를 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유럽과 그것의 정치적 개념으로서의 부정보다 – 이 부정은 유토피아적이거나 전복적인 요소를 가질 것이지만, 그리스-로마적인 그리고 유대-기독교적인 원천에 내재하는 상상적 레퍼토리에 속하는 어떤 것들이다 –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회와의 조우가 어떤 차이나고, 예기치 못한 정치학에 대해 사유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많은 해석자들이 자세하게 말했던 바대로,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식민지적 조우는 지성의 영역에서, 사례들, 신화들, 개념적 상상물들 그리고 16세기에서 18세기 너머에 이르기까지 유럽인들의 정신에 유행했던 형식적 분류법들을 한데 합침으로써 흔적을 남겼다. 이 조우는 제국주의의 도구적 관계성이라는 폭력이 가미된 비교연구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야만인에 대한 사유는 자본주의와 그것의 모순들의 출현 뿐 아니라 기독교 정치신학의 위기에 의해 난파된 유럽에 대한 반성을 반영하는 어떤 스크린의 역할을 광범위하게 수행했다. ‘야만’은 일종의 거꾸로된 상으로서, 유럽 지성들이 그것을 통해 당대의 수수께끼를 폭로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 즉 ‘정치학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소유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말이다.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라이프니츠의 ‘정치적 경이’에서처럼, 아메리카 원주민은 실재적으로 유럽이 탈구되거나 그 정치철학을 추방하도록 강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유럽인의 지성적 삶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인류학에서 급진적, 반-국가주의적 경향들의 출현을 맞이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야만인’은 정치적인 것의 지배적 이미지에 관한 비판이라는 탁월한 위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1974년 저술인 『국가에 반하는 사회』(Society Against the State)는 라이프니츠에 의해 간파된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만남에 관한 반아리스토텔레스적 반홉스적 효과에서 나온 노작으로 읽힐 수 있다.[46] 파라과이의 구아야키(Guayaki) 인디언들과 함께 한 현장 연구로부터,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 전반에 걸친 무수한 인류학적 작업의 관찰 결과, 클라스트르는 서구의 정치적 인류학에 대한 격렬한 도전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도전은 도처에서 비롯되었는데, 북미와 남미, 정치 권력이, 명령과 복종의 변증법, 즉 폭력의 독점과 구별되고, 국가 구속적 정치 영역의 분리와 같지 않았던 사회체들이 그곳이다. 클라스트르는 더 나아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추장제가 집합적 책략을 통해 통치권으로서의 정치가 출현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때 우리는 사회체들의 드넓은 성좌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곳에서는 실재적으로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권력이라고 일컬어질 만한 터전이다. 거기서는 광범위한 곳에서 정치적인 것은 강압과 폭력 너머, 위계적 복종 너머의 영역으로 규정된다. 이는 인디안 세계의 주요한 차이점을 형성한다.”[47]     


하지만 야만인에 대한 현대 철학적 담론을 단순한 복화술이나 독백으로 취급하는 것도 오류다. 오리엔트[동양]에 관한 발리바르의 언급이 여기서는 적당할 것이다. 특히 그가 상상의 수준에서 어떤 만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조우라는 그의 조언이 있다.      


상상된 것이란 타자가 순수한 허구, 무력한 ‘동양인’에 대한 서구적 정신의 순수 투사, 즉 그들이 총체적으로 그림의 외부에 놓여 있는, 그래서 그들을 그린다고 추정되는 그런 서구적 정신의 투사를 의미하는가? 또는 그것은 이러한 상상의 틀 안에서 어떤 현행적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러한 만남은 확실히 갈등적이지만, 마찬가지로 어떤 의미에서 ‘실재’, 즉 ‘실재적 타자’가 타자성의 이념을 구축하는데 다소 기여한다는 것을 함축할 것이다. 비록 ‘서발턴’(subaltern)이라 해도, 그것은 어떤 환원불가능한 차이를 함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 ‘동양’에 관한 이념이 생산되는 그 상상은, 어떤 실재적 만남과 만남의 실재성의 거부, 정말 바로 그 가능성의 거부를 결합한다. 또는 알튀세르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그것은 오인과 인지를 결합하는 것이며, 그 각각은 한계 안에 그리고 타자의 언어 안에 놓인다.[48]     


 글리오치가 란두치의 책[49]에 관한 그의 방법론적 비판에서 주목한 바에 따르면, 이념들의 역사는 적어도 식민지 인류학의 충분한 발전이 있기 전까지, ‘야만인’에 대한 논쟁이 인간의 본성에 관한 유럽내적인 논의였다고 가정하도록 우리를 이끌지만, 이데올로기에 관한 비판적 역사는 유럽적인 이념들과 철학이 식민지적 관계에 대한 전환 요청에 의해 심대하게 촉발되었다. 이러한 관계는 유럽이 세계의 많은 다른 부분에도 또한 강요한 것이기도 하다. 외견상 기묘한 성경적 사건과 허위 계보들에 대한 글리오치의 기념비적인 연구에서는, 아메리카  인디언 원주민들에 대해 투사된 유럽의 권력이 그들의 식민지 정책들의 정당화와 사법적 요청들을 강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계보들은 이스라엘 부족, 아담 이전의 피조물, 아틀란티스의 거주민들, 유대인들, 타르타르인, 노르웨이인들, 네덜란드나 웨일즈인들 가운데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조상들 찾는 것이다.[50] 우리가 만약 약탈과 저항의 매우 특유한 연결과 관련된 그것의 표현들을 탐구하는데 실패한다면, 인류학과 철학에 있어서 식민지 역사가 얼마나 비지성적일 수 있는를 이해한다.      


예를 들면, 스페인 정복자들은 왕위 쟁탈전을 보면 아즈텍이 어떤 야만적 사회라기보다 당연히 정치적 사회였다는 것을 논증할 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이 동의하는 통치권의 이전을 근거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스페인 정체(政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성적 노예에 관한 비판을 지지할 수 있었고, 유대의 죄있는 자손들과 같은 취급을 하는 정복자들의 원주민에 대한 이야기들을 거부할 수 있었다. 이는 역사적 또는 인류학적 진리에 대한 인간주의적 관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본국의 통치권에 조세를 납부하기 위해 임금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또는 우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논하자면, 이데올로기적 연결들에 대한 관심은, 비교 부정 논리에 관한 몽테뉴의 재배치 뒤에, 그리고 아메리카 야만주의와 유럽의 우월성에 대한 그의 공언들과 연관되는 겉보기의 반-식민주의적 회의주의 뒤에, 스페인 식민주의의 헤게모니에 반하는, 그리고 그것과 경쟁하는 프랑스 위그노교의 전통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복이 가지는 집단학살의 본성에 대한 요란한 공격들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몽테뉴의 철학이 그 자신 ‘문명화’ 기획을 함축하고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 문명화의 기획은 차이의 인지라는, 아마도 프랑스 식민지 기획의 출현에 속한 ‘부드러운’ 덕목들에 대한 변명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포콕이 주목했던 바와 같이, “계몽은 타자들의 역사를 거부할 수 있었는 바, 그것이 심지어 타자의 인간성을 드러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 철학사를 기술한다는 것에서 유럽은 자연 세계에 역사를 도입함으로써 비난받았지만, 정치적 역사에서 유럽은 홀로 행위주체이다.”[51]    

 

결론적으로, 철학을 탈식민화하라는 명령은 그것의 식민지적 퇴적물이 폐절된 어떤 철학의 생산이라는 목적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보다는 냉혹하게 상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그러한 공간을 통한 작업의 가차없는 실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공간은 철학에 있어서 다수이면서 대개는 야만적인 자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다. 여기서 어떤 실재적인 만남과 그러한 만남에 대한 거부가 서로 간에 불가분하게 남아 있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역사적 고고학들과 계보학 둘 모두를 요청하는 것이며, 세르지오 란두치와 기울리아노 글리오치(올리브 디킨스, 미셸 뒤셰, 테르 엘링슨 등등과 더불어)가 기여했던 바가 이것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가 말했던 일종의 ‘정치적 경이’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집합적인 정치적 삶에 대한 의미화에 있어서 유럽적이고 국가중심적 독점상황을 탈구시키도록 할 수 있다. 이 독점 상황이야말로 가장 끈질긴 유산이며 현존하는 식민지적 관계의 결정요소이다.     



[주석]

*저자인 알베르토 토스카노(Alberto Toscano)는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비판 이론 강사이다. 그의 『광신: 이념의 쓰임새에 관하여』(Fanaticism: On the Uses of an Idea, 2017)은 2판까지 나왔다. 맑시스트로서 그는 현대철학자인 바디우의 책을 여럿 번역했으며, 보통 좌파 사변적 실재로자로 알려져 있다. 저자에 대한 사항은 다음 위키항목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Alberto_Toscano 

       

[1] See Étienne Balibar, “‘Rights of Man” and “Rights of the Citizen”: The Modern Dialectic of Equality and Freedom’, in Masses, Classes, Ideas: Studies on Politics and Philosophy Before and After Marx , trans. James Swenson (London: Routledge, 1994), 39–60; Citizen Subject: Foundations for Philosophical Anthropology, trans. Steven Mill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6).      

[2] Sergio Landucci, I filosofi e i selvaggi, 1580–1780, new ed. (:Einaudi, 2014) (this is a considerably revised version of the more explicitly Marxist first edition, published by Laterza in 1972); Giuliano Gliozzi, Adamo e il nuovo mondo. La nascita dell’antropologia come ideologia coloniale: dalle genealogie bibliche alle teorie razziali (1500-1700) (Florence: La nuova Italia, 1976). Gliozzi’s book has been translated into French: Adam et le Nouveau Monde: la naissance de l’anthropologie comme idéologie coloniale: des généalogies bibliques aux théories raciales, 1500-1700, preface by Frank Lestringant, trans. Arlette Estève and Pascal Gabellone (Lecques: Théétète, 2000).      

[3] See Roger Bartra, Wild Men in the Looking Glass: The Mythic Origins of European Otherness, trans. Carl T. Berrisford (Ann Arbor: University of Michigan, 1994). 1972년 루소에 대한 강의에서 알튀세르는 이 숲의 인간, 즉 소진되지 않는 자연의 풍요로움으로서의 이 숲의 인간이 프랑스 철학자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와 비평들 안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제안한다. 즉 결정된 ‘장소’가 없는 어떤 공간에 거주하는 야만인의 형상이 그것이다. See Louis Althusser, Cours sur Rousseau, ed. Yves Vargas (: Les Temps des Cérises, 2015); translation forthcoming as Lessons on Rousseau, trans. G.M. Goshgarian (: Verso, 2019).     

[4] J.G.A. Pocock, Barbarism and Religion, Volume 4: Barbarians, Savages and Empires (: Press, 2005), 189.     

[5] See Landucci, I filosofi e i selvaggi; also Raymond Klibansky, ‘Introduction’, in La Pensée philosophique d’expression française au. Le Rayonnement du Québec (ed. Raymond Klibansky and Josiane Boulad-Ayoub) (Saint-Nicolas: Les Presses de l’Université Laval, 1998), 14–18.     

[6] Michel Foucault, History of Madness, ed. Jean Khalfa, trans. Jonathan Murphy and Jean Khalfa (London: Routledge, 2006), xxix.     

[7] Ibid., xxx.     

[8] Étienne Balibar, ‘Difference, Otherness, Exclusion’, Parallax 11: 1 (2005), 30.     

[9] Ibid., 30.     

[10] 식민지적 조우에서 타자성의 고대적이고 성서적인 형상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Gliozzi, Adamo e il Nuovo mondo, and Pocock, Barbarism and Religion, Volume 4. 아비 바르부르그(Aby Warburg)에 의해 영감을 받은, 야만인의 선형성(preformation)의 이러한 패턴에 대한 도상학적 성찰을 위해서는 다음을 보라. Carlo Ginzburg, ‘Memory and Distance: On a Gilded Silver Vase (Antwerp, c. 1530)’, in Fear Reverence Terror: Five Essays in Political Iconography (Calcutta: Seagull Books, 2017), 특히 ‘신세계’에 관한 4–8쪽      

[11] Sergio Landucci, I filosofi e i selvaggi, 1580–1780 (Bari: Laterza, 1972), 338.     

[12] Ter Ellingson, The Myth of the Noble Savag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1).    

[13] Michel de Montaigne, ‘Of the Cannibals’, in Shakespeare’s Montaigne: The Florio Translation of the Essays – A Selection, ed. Stephen Greenblatt and Peter G. Platt (New York: New York Review of Books, 2014), 61. The question of the savage is also (differently) articulated by Montaigne in the essay ‘Des Coches’ (Of Coaches). For a thorough exploration of Montaigne’s speculations on Amerindian life and their wide-ranging intellectual impact see Frank Lestringant (ed.), Le Brésil de Montaigne. Le Nouveau Monde des «Essais» (1580–1592) (Paris: Éditions Chandeigne, 2005).     

[14] Foucault, History of Madness, 165.     

[15] Amerigo Vespucci, Mundus Novus: Letter to Lorenzo Pietro di Medici, trans. George Tyler Northup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16), 6.     

[16] Wilberforce Eames, Description of a Wood Engraving Illustrating the South American Indians [1505] (New York: The New York Public Library, 1922).     

[17] Margaret T. Hodgen, ‘Montaigne and Shakespeare Again’, Huntington Library Quarterly 16:1 (November, 1952), 33.     

[18] Hodgen, ‘Montaigne and Shakespeare Again’, 28.     

[19] Stephen Greenblatt, ‘Learning to Curse: Aspects of Linguistic Colonialism in the Sixteenth Century’, in Learning to Curse: Essays in early modern culture [1990] (London: Routledge, 2007), 24.     

[20] Quoted in Ellingson, The Myth of the Noble Savage, 57.     

[21] 다른 곳에서 칸트는 ‘카나디안’의 (정치적으로) 낭만적인 관념화를 할 수 없었다. 이것은 북미 원주민의 미문명화된 특성에 대한 그의 확실성을 불안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곳의 모든 야만인들 가운데 아무도 어떤 정신의 숭고한 특성과 같은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 그들은 명예에 대한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으며, 사냥감을 쫓는 동안, 수 백 마일의 모험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적어도 그것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 극단적으로 조심스러워 하는 바, 그것을 획득한 뒤에는, 거기서 그들의 가장 끔찍한 적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들은 위협적인 고문을 가함으로써, 그것들로부터 어떤 소심한 신호들을 강제하려고 시도한다. 카나다 야만인은 게다가 진실되고 정직하다. [...] 그는 극단적으로 교만하고, 자유의 완전한 가치에 대해 민감하고 심지어 교육에 있어서 어떤 만남도 그를 저열한 종속감에 빠지지 않도록 허용한다. 뤼쿠르고스는 아마도 그와 같은 야만인들에게 법을 주었을 것이다. 만약 법의 수여자가 여섯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면, 우리는 스파르타 공국이 새로운 세계에서 생겨나는 것을 볼 것이다. [...] 모든 야만인들 가운데, 아무도 카나다인들 보다 더 큰 실재적 관심을 여성들에게 부여하는 자들은 없다. 여기서 아마도 그들은 우리 문명 세계의 일부를 넘어설 것이다. 문명인들이 그들의 초라한 존중을 여성들에게 보낸다면, 그것은 단지 단순한 아첨에 불과할 것이다. 카나다에서 여성들은 실재로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 전쟁과 평화에 대해 만나서 회의를 개최한다. 그들은 대표자를 남성 회의에 파견하며, 평등하게 그들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이러한 여성 우선권에 충분한 만족감을 보낸다. 그들은 가사 일에 대해 고통스러운 부담을 서로 나눠 가진다.” ‘카나다’ 여성에 대한 이 구절들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칸트의 반흑인 인종주의에 관한 진술들에 바로 앞서 나온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단 이 악당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흑인이었다는 그 사실, 그가 말했던 것이 어리석었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See Immanuel Kant, Observations on the Feeling of the Beautiful and the Sublime [1764], in Kant, Anthropology, History, Education, ed. Günter Zöller and Robert B. Loude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7), 60.     

[22] Quoted in Ellingson, The Myth of the Noble Savage, 141.     

[23] Hodgen, ‘Montaigne and Shakespeare Again’, 37.     

[24] Hayden White, ‘Forms of Wildness: Archaeology of an Idea’, in Tropics of Discourse: Essays in Cultural Criticism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1978), 151–2. See also ‘The Noble Savage Theme as Fetish’, in the same collection.     

[25] Arthur O. Lovejoy, ‘The Supposed Primitivism of Rousseau’s Discourse on Inequality”’, Modern Philology, Vol. 21, No. 2 (Nov., 1923): 165–86.     

[26] Ellingson, The Myth of the Noble Savage, 32.     

[27] Ibid., 375.        

[28] On this ‘network of negations’, see Michèle Duchet, Anthropologie et histoire au siècle des lumières (Paris: Albin Michel, 1995 [1971]).     

[29] Anthony Pagden, ‘The Savage Critic: Some European Images of the Primitive’, The Yearbook of English Studies 13 (1983), 33.     

[30] Aimé Césaire, A Tempest, trans. Richard Miller (New York: Theatre Communications Group, 2002), 29.     

[31] Thomas Hobbes, Leviathan, ed. C.B. Macpherson (London: Penguin, 1985), 185–6.     

[32] Noel Malcolm, ‘Hobbes, Sandys, and the Virginia Company’, The Historical Journal 24: 2 (1981): 297–321.     

[33] Hobbes, Leviathan, 187.     

[34] Anthony Pagden, The Fall of Natural Man: The American Indian and the Origins of Comparative Ethn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7).     

[35] See Giorgio Agamben, ‘Leviathan and Behemoth’, in Stasis: Civil War as a Political Paradigm (Homo Sacer II, 2), trans. Nicholas Heron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15), 25–69.     

[36] Johannes Fabian, Time and the Other: How Anthropology Makes its Object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3).     

[37] Pierre Clastres, ‘Copernicus and the Savages’, in Society Against the State, trans. Robert Hurley with Abe Stein (Oxford: Basil Blackwell/Mole Editions, 1977), 11.     

[38] Thomas Hobbes, The Elements of Law, Natural and Politic, ed. J.C.A. Gaski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80.     

[39] 야만인의 인종적 도상에 관한 매혹적인 구조주의적 탐구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De Bry, see Bernadette Bucher, La Sauvage aux seins pendants (Paris: Hermann, 1977). 보다 최근의 것으로는 다음이 있다. Michael Gaudio, Engraving the Savage: The New World and Techniques of Civilisation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08).     

[40] 고대 브리튼의 도상학과 이데올로기적 잔여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투사된 야만인에 관한 상상 안에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저작들에서 심층적으로 탐구되었다. Ioannis D. Evrigenis, Images of Anarchy: The Rhetoric and Science in Hobbes’s State of Natur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 esp. chapter 8 ‘America’, 202ff.     

[41] 도덕과 규범으로부터 발전과 사회과학으로의 이 기념비적인 전환은 란두치 역작의 핵심이다.      

[42] Ronald L. Meek, Social Science and the Ignoble Savag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     

[43] Audra Simpson, ‘The Ruse of Consent and the Anatomy of ”Refusal”: Cases From Indigenous North America and Australia’, Postcolonial Studies 20 (2017), 25.     

[44] Gottfried Wilhelm Leibniz, quoted in Réal Ouellet, ‘Introduction’, in Lahontan, Dialogues avec un Sauvage, ed. Réal Ouellet (Montréal: Lux, 2010), 18.     

[45] Ibid., 18. See also §256 of the Theodicy: “그러나 심지어 오늘날의 대개의 부족들, 이를테면 휴런, 이로쿼이, 갈리비스 그리고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한 큰 가르침을 준다. 우리는 그들의 용맹함과 냉정함을 놀라움 없이 읽을 수는 없는데, 그들은 이를 가지고 그들의 적들[사냥감]에게 맞서며, 그것들을 약한 불에 구워서 얇게 저민후 먹는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그들의 신체적 우월성과 용기를 보유하면서, 우리의 성취들과 결합된다면, 그들은 모든 방면에서 우리를 능가할 것이다. [...] 그들은 우리와 비교하자면, 거인과 난장이, 산과 언덕이다.”(Leibniz, Theodicy: Essays on the Goodness of God, the Freedom of Man and the Origin of Evil, ed. Austin Farrer, trans. E.M. Huggard [Eugene, OR: Wipf and Stock, 2001], 283).     

[46]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논증은 또한 – 로베르 자울링(Robert Jaulin), 자크 리조(Jacques Lizot) 등등과 더불어 – 반맑스주의적 논박을 위한 ‘원시공동체 사회’의 인류학에 관한 어떤 도구화로 정당하게 읽힐 수 있다. 이 자유주의 반맑시스트의 통렬한 비판은 인류학에서 어떤 경향을 만들었다. see Jean-Loup Amselle (ed.), Le Sauvage à la mode (Paris: Le Sycomore, 1979). 나는 이 주제에 관한 이러한 논박을 지지할 수는 없지만(클라스트르의 저술과 들뢰즈-가타리의 원국가(Urstaat)에 관한 성찰 사이의 매력적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유럽 철학의 야만인들의 사후생존에 관한 어떤 심오한 평가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연구해볼 만하다고 본다.     

[47] Clastres, ‘Copernicus and the Savages’, 5. 클라스트르 또한 비교 부정의 담론에서 자민족중심주의적 단순성에 관해 앞장서서 이의를 제기한다. “서구와 야만인 간의 조우는 언제나 그들에 관한 동일한 담론을 반복하기 위한 기회가 되었다”(8).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야만’에 관한 그 모든 이국적인(exotic) 개념들을 내버려 둘 필요가 있다. “어떠한 명령-복종 관계의 부재는 사실상 정치권력의 부재를 초래한다”(9)는 것에 따른 가설의 클라스트르의 비판은, 우리가 세드릭 로빈슨(Cedric J. Robinson)의 『질서의 항목들』에서 발전시킨 부분적으로 통합적인 관점들에서 만나게 되는 것과 같은 비정치적인 것이라는 개념과 연관되는 바, 그의 비평을 표명하는 것을 방해한다.      

[48] Balibar, ‘Difference, Otherness, Exclusion’, 30.     

[49] Giuliano Gliozzi, ‘I filosofi e I selvaggi’, in Differenze e uguaglianza nella cultura europea moderna. Scritti 1966-1991, ed. Anna Strumia (Napoli: Vivarium, 1993). 이 선집 또한 유럽 사유와 문화에서 ‘야만’의 장소와 ‘신세계’에 관한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논문들을 포함한다.      

[50] Gliozzi, Adamo e il nuovo mondo; see also in English his ‘The Apostles in the New World: Monotheism and Idolatry Between Revelation and Fetishism’, History and Anthropology 3:1 (1987): 123–48.     

[51] Pocock, Barbarism and Religion, Volume 4, 223.     

[52] Olive Patricia Dickason, The Myth of the Savage and the Beginnings of French Colonialism in the Americas(Edmonton: University of Alberta Press, 1984).     

[53] 내가 여기서 집중했던 것은 사료편집과 지성사의 문제에 관해 거의 예외적인 것들이다. 비국가적인 ‘정치적 경이’에 관한 사변적 형상에 대해 더 고찰하는 것은 원주민들의 정치적 사유에 관한 오늘날의 발전들에 연결될 필요성을 강제할 것이다. See Audra Simpson, ‘The Ruse of Consent and the Anatomy of “Refusal”’, and Mohawk Interruptus: Political Life Across the Borders of Settler States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14); Glen Sean Coulthard, Red Skin, White Masks: Rejecting the Colonial Politics of Recognition(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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