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SF는 못 참지
지난주, 원티드에서 진행하는 '북러버 모임'에 갔다가 책들은 잔뜩 추천받아 왔습니다. 그중 특이한 제목과 표지에 이끌려 가장 먼저 집어온 책이 바로 <칵테일, 러브, 좀비>(작가: 조예은)입니다.
공포나 스릴러 소설 좋아하시나요? 저는 엄청 좋아합니다. 영상물로는 흠칫하는 잔인한 장면 묘사도 꼼꼼히 읽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몽환이나 낭만이 한 스푼 더해지면 몰입도가 훅 올라가더라고요. 당장 생각나는 예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이 있네요.
<칵테일, 러브, 좀비>는 제목부터 그래 보였어요. 칠흑 같은 어둠에 핏빛 분홍색이 한 방울 섞여 있을 것 같은 느낌으로요.
이 책엔 조예은 작가의 단편 소설 4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 초대
- 습지의 사랑
- 칵테일, 러브, 좀비
-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앞의 두 소설은 판타지 요소가 상대적으로 더 강해요. 혼령이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거든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는 뒤의 두 소설이 훨씬 좋았어요. 현실에 기반을 두면서도 판타지적인 설정을 소박하게 덮어씌워 엄청 감정 이입하게 되더라고요. 마지막 단편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버스에서 읽고 울컥했어요.
그래서 저는 뒤의 두 작품만 집중 리뷰해 보겠습니다.
① 칵테일, 러브, 좀비
표제작답게(?) 파격적인 설정입니다. 배경은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우리나라, 주인공은 1차 감염자의 가족인데요. 가족으로서 감염자인 아버지를 받아들이지도, 내치지도 못하다 궁지에 몰리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좀비 설정은 이제 꽤 흔한 소재가 되었지만, 이 소설이 차별화가 되는 부분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좀비 사태의 원인
국밥집에서 제공한 뱀술 때문이었습니다. 야생 파충류의 몸에 기생한 변형 기생충이 알코올 섭취자의 신체를 감염시켰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 내용입니다.
살아 있는 구렁이를 담가 만든 술을 나눠 먹은 게 화근이었대요. 기생충이 술을 마신 사람들의 뇌를 파먹고, 장기를 썩게 만들어 좀비로 만든 거죠. 좀비 사태의 원인도, 감염도, 해결도 뱀을 중심으로 쭉 전개되는데 동양적인 설정 같아 신선했습니다.
2) 작은 스케일과 섬세한 심리묘사
좀비 세계관의 영화들을 보면 스케일이 매우 커요. 떼로 몰려드는 좀비를 보며 공포를 느끼게 하죠.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딱 하나의 가족만 등장해요. 이웃도, 친척도 없이 부모와 딸, 이렇게 세 명만요.
좀 밋밋하게 느껴지지 않냐고요?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랫집이나 윗집에 살고 있을 법한 평범한 가족의 비극을 다룬지라, 딸은 나 같기도 하고, 어머니는 우리 엄마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스케일이 작은 대신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인데요.
주연은 그들이(부모)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조차 싫어졌다. 결국 그 모든 증오의 밑바닥에 깔린 건 애정이었다.
바닥에 뒹굴던 리모컨을 주워 건네자, 엄마는 손톱 끝에 피가 몰릴 정도로 힘주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문득 엄마가 아주 오랜 세월을 이렇게 보내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순간 끓어오르는 감정들을 있는 힘껏 억누르면서.
한평생 뒤치다꺼리해 준 인간, 죽음까지도 떠먹여 줘야 하나 싶더라.
등장인물은 적지만 그들이 가족으로 살아온 삶 전체를 돌아보고, 때로는 속박처럼 때로는 안전한 울타리처럼 느껴지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좀비물의 탈을 쓴 가족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TV만 보던 엄마와 지루할 정도로 평범한 삶을 살던 딸이 서로를 지키려 몸을 사리지 않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②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이 책에서의 최애 단편입니다. 타임슬립(시간여행) 물이고요. 등장인물은 역시나 세 명으로 구성된 하나의 가족이 전부입니다.
집에서 폭언과 폭력을 습관처럼 행하던 아버지가 기어코 어머니를 살해하며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이를 목격한 아들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3번 돌아갑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어머니도 시간여행자였으니, 모자의 시간여행은 과거의 마주침으로 인해 점점 꼬입니다. 그래서 결국 현실이 바뀌는지 아닌지는 너무 스포인 것 같아 넣어두겠습니다.
이 소설이 좋았던 건 '칵테일, 러브, 좀비'와 마찬가지로 스케일은 작은데 비해 서로를 위하는 모자의 모습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가 더 특별한 이유는 감동에 엄청난 슬픔이 겹쳐지기 때문인데요.
사랑했던 사람이 사업 실패로 가정폭력범이 되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 했던 어머니와,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가정에서 어른으로 자라나야 했던 아들의 지나온 삶이 상상되거든요. 처음엔 살인을 막기 위해, 다음엔 자신의 탄생을 막기 위해 시간을 돌리는 아들의 모습이 너무 마음 아프고요.
나는 그제야, 어머니의 눈과 나의 눈을 보고서야, 누구를 막고 누구를 먼저 죽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의 시발점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곳에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 두 명이 만나기 전에.
시간을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개인의 욕망을 채우는 데 쓰는 게 보통일 텐데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데에만 온전히 써요. 그게 잘 풀린다면 새드엔딩은 아닐 텐데, 과연 어떻게 될까요?
하나 더, 슬픔을 두 배가 되게 하는 건 기쁨과 대조됐을 때인데요. 아들이 시간을 돌려 부모가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는 순간을 멀리서 지켜보는 장면은 진짜 마음이 아파요. 아들은 미래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없애야 하는데 말이에요. 흑흑...
*
정리하자면, '칵테일, 러브, 좀비'와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모두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가족 소설입니다. 가족의 의미와 사랑이 소설의 중심이고요. 전자가 신선한 설정과 위기를 극복하는 모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 후자는 깊은 슬픔과 탄식을 자아내는 반전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저자: 장강명)은 오랜만에 완독 하기 어려운 소설집이었습니다. 장강명 작가님을 좋아하기에 신간 소식을 듣고 당장 사 왔으나, 인문학도에겐 과학기술의 향연이 이해하기 쉽지 않았네요.
그럼에도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과학기술이 근미래에 미칠 영향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거든요. 특정 영역만이 아닌, 사회 전체를 뒤바꿀만한 기술이기에 누구나 고민하고 생각할만한 거리가 있어요.
이 책은 총 7편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데요. 각각의 작품을 리뷰하기 전, 전체적인 방향성 먼저 언급해 봅니다.
장강명 작가는 이 책의 장르를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로 정의했습니다. 아래는 그가 '작가의 말'에서 설명한 부분입니다.
STS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탐구하는 학문 분야다. 과학기술은 이제 여러 영역에서 실존적 위기를 일으키고 있고, 나는 문학이 여기에 대응해야 하며,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기술은 사회와 복잡한 영향을 주고받기에 우리의 삶은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바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기술은 통제가 필요하고, STS SF는 모두가 그에 대한 질문과 논의를 할 수 있게 돕는 창구인 거예요.
오늘은 표제작 포함 3편을 리뷰할 텐데, 모두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에 제 선택 기준은 '재미'였습니다.
① 당신이 보고 싶어 하는 세상
: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삶에 이를 적용할 건가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편집해 보여주는 '옵터'라는 증강현실 도구가 등장하는데요. 소설의 배경은 옵터가 이미 상용화되어 육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시대입니다. 이에 따라 인간관계는 진정성을 잃고 가족 간에도 소통은 왜곡됩니다. 주인공은 법에 따라 이를 규제하려는 공무원이고, 객관적 현실을 거부한 채 아이를 방치해 놓는 부모와의 만남이 주요 사건입니다.
우리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현실의 폭이 커 힘들어하지만, 소설의 세계에선 이상을 현실로 믿고 살아가기 때문에 혼돈의 카오스(?)입니다. 개인도, 사회도 통제력을 잃고 기술에만 기대면 저렇게 될까,라는 경각심을 갖게 하는 소설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세상만을 고집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면서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② 알래스카의 아이히만
: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사회의 안전과 정의를 지키는 데에 독인가, 약인가?
타인에게 기억을 주입할 수 있는 '체험 기계'가 발명되어 나치 독일의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그의 모습에 유대인들은 분노했고, 아우슈비츠 수용소 피해자 벤야민과 기억을 상호주입함으로써 처벌하기 원했어요.
그런데 체험 기계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어요. 아이히만은 체험 후 오열하며 잘못을 빌었지만, 벤야민도 넋을 잃은 표정으로 아이히만의 손을 잡은 거죠. 벤야민은 정신적 혼란과 유대인 사회의 비난으로 힘들어하다 직접 본인과 아이히만을 처단합니다.
연쇄살인마, 성폭력범, 아동 학대범들에게도 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 사연을 굳기 귀 기울여 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종종 타인은 지옥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지옥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있으에 우리는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고 충격받은 기억이 있어요. '국가적 범죄를 개개인에게 책임을 물어도 되는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혼란스러웠어요. '알래스카의 아이히만'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범죄에 가담한 개인들은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합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기술'은 범죄 처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감 능력이 좋은 사람들만 더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소설에서도 아이히만은 뉘우침을 연기한 듯하고, 피해자였던 벤야민만 고통이 더해졌어요.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범죄자 개인의 사연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노력은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가 나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③ 아스타틴
: 유전자 복제 기술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어떤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까?
마지막은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긴 소설입니다.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가장 역동적이기도 했고요.
소설의 무대는 목성과 토성의 위성들이에요. 그들의 사회는 계급이 나뉘어 있는데, 아스타틴은 그중 최고의 권위자이며 초월적 존재입니다. '차기 아스타틴'을 정하기 위해 기존 아스타틴의 복제품 15명은 서로 싸우고 죽입니다.
그중 주인공 사마륨은 '이오'라는 목성의 위성에서 형제 한 명과 싸우다 우연히 초지능을 얻게 돼요.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도 느끼게 되며 권력에 대한 욕심을 점점 잃습니다. 하지만 최후의 1인만이 아스타틴이 될 수 있기에, 생존한 형제들은 그의 뒤를 쫓습니다. 결국엔 초지능을 얻은 또 다른 형제와 목숨을 건 전투를 합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스타틴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복제인간에 대한 논의에는 연관검색어처럼 따라오는 이슈들이 있죠.
- 우월한 유전자는 누가 결정하는가?
- 복제인간은 고유의 존재로 볼 수 있는가?
- 복제인간끼리의 갈등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아직은 먼 얘기 같고, 이런 질문들엔 정해진 답도 없지만 어떤 기술이든 그것이 불러올 미래에 대한 예측은 사회에 적용되기 이전에 꼭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사마륨은 아스타틴과는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각성합니다. 가돌리늄은 아스타틴 보다 자신이 우월하다 생각하고 폭주합니다. 결국, 복제인간이 자아를 갖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균열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 건 또 다른 인간이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치료 목적의 유전자 복제는 이 논의에서 제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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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픽션이지만 다큐처럼 읽혔어요. 스토리의 흐름만큼이나 기술과 그에 따른 사회 변화를 설명하는 데에 진심인 책이거든요. 덕분에 인문학도인 저도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완독 했지만, 이야기의 박진감이나 몰입도를 기대하기보다, 시야의 확장이나 사회적 의의를 생각하는 편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