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0m의 쉬라 케이브 캠프
Day 2
2026년 2월 13일
이동구간 : 마차메 캠프(Machame Camp, 2835m) - 쉬라 케이브 캠프(Shira Cave Camp 3750m)
총 이동거리 : 5-5.3km
소요시간 : 5시간 25분
고도상승: 약 800-1000m
지대 : 열대우림 (Rainforest)에서 물~랜드/황무지지대 (Moorland zone)
신체반응 : 등반할 때는 몸 컨디션 아주 괜찮고, 텐트에서 쉬고 자기 전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날씨: 맑음
텐트에서 자는 건 오들오들 추웠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깬 거 같다. 아침이 밝아왔고 아담이 뜨거운 물을 준비해 줬고, 조금 있다 아침식사가 들어왔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뜨거운 수프를 먹으니 속이 따뜻해지면서 온몸이 녹았다.
해 없는 시간 동안은 그렇게 춥다가, 해가 나오고 햇살이 내리 쬐면 금방 온 사방이 따뜻하게 녹는다. 산에서 만큼 해가 반가운 적은 없다.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고요하던 킬리만자로는 사람들로 다시 활기가 찬다. 등반 중 중국팀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보는데 단체로 온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그렇게 오는 게 이 먼 아프리카까지 오는데 경제적이다. 하루 운행 끝나면 포터들은 한 텐트에 몰려 들어가서 그날 있었던 일, 세상사는 일 등등 내 옆 텐트에서 자기들끼리 한참을 조잘조잘한다. 왠지 나도 그들 무리에 껴서 오늘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 조잘조잘하고 싶다. 다음 등반에는 꼭 팀을 이뤄서 와야겠다 생각해 본다.
혼자다 보니 가이드 데이빗과 오손도손 정답게 올라간다. 킬리만자로는 고도에 따라 지대가 달라지는데 데이빗이 우리가 지나가는 지대마다 잘 설명해 준다. 여기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곳에서 무슨 식물이 자라는지 등등… 내가 꽃과 나무에 관심을 보이니 더 설명을 해주려고 하는 거 같다.
고도가 첫날 보다 1000m 정도 높아지니 첫날 Rainforest 지대에서 본 키 큰 나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가지에 옥수수수염뿌리 같은걸 주렁주렁 매단 이 나무들이 한참을 우리와 함께 했다. 데이빗이 이 나무는 에리카 트리라고 했다. 챗GPT에 물어보니 Erica arborea라고 한다. 난 에리카 밖에 생각이 안 난다 ㅋ
데이빗이 이 지대는 뮬란 존이라고 그런다.
뭐 뮬란? 영화에 나오는 그 뮬란 존이라고? ㅋ
그게 아니고! 뮬란이 아니라 무어랜드
왠지 이름이 이쁘고 마음에 든다. 물~랜드 존
Moorland Zone
컨디션도 좋고 체력도 남아도는지 데이빗과 사진도 많이 찍는다. 하늘도 쨍하게 파랗고, 데이빗과 나도 파란색으로 깔맞춤 한 날이네 ㅋ 이날까지 상대적으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반팔로 운행 가능했다.
데이빗이 처음에는 사진 이상하게 찍다가, 내가 원하는 구도를 가르쳐 주고 나서는 내 인생사진을 몇 컷 건져주었다. 고마워 데이빗!!
마차메 캠프에서 쉬라 케이브 캠프 가는 구간은 첫날 구간보다 거리는 짧은데 경사도가 훨씬 가파르다. 그래서 거리에 비해 운행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니 날씨가 순식간에 바뀐다.
이것이 킬리만자로의 날씨라고 그랬다. 날씨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처럼 내 컨디션도 순식간에 바뀐다.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등반 중 데이빗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컨디션이 저조할 때는 우리 둘 다 아무 말하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한발 한발 내딛기만 반복한다. 데이빗도 내 컨디션에 맞춰주며 속도 조절을 한다. 폴레 폴레(천천히 천천히). 말을 하지 않는 건 최대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거다. 날씨가 갑자기 변하며 추위가 몰려온다. 따뜻한 옷을 꺼내 입고 숨을 깊이 들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한다.
“I’m going picking flowers.”
데이빗이 갑자기 꽃을 좀 꺾으로 가겠다고 했다.
무슨 신기한 꽃이 있다고 직접 따다 줄려고 하나?
짜식, 낭만적이군. 속으로 생각했다 :)
잠시 있다 빈손으로 돌아온다.
꽃은 어디 있냐 그러니까 이미 꽃을 꺾어단다.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말을 picking a flower라고 그랬다. 산에서 화장실은 온 사방이다. 어디서든 꽃을 꺾으면 된다. 그 후론 나도 그에게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땐 잠시 기다리라 그러고 꽃 꺾으러 가겠다고 그랬다.
화장실 간다는 표현의 제일 낭만적인 버전이다.ㅋ
안개가 자욱하면 바로 앞의 풍경도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고산에 사는 고독해 보이는 저 새와 안개 자욱한 풍경들이 참 몽환적이다. 몽환적인 숲을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오늘 일박을 하게 될 캠프가 나왔다.
두 번째 캠프인 쉬라 케이브 캠프에 오후 1시쯤 도착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운행을 시작해서 오후 1시에 끝났다. 오후는 통으로 쉴 수 있어 아주 여유롭다.
오늘의 캠프 사이트도 아주 마음에 든다.
도착하여 텐트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 짐가방이 텐트 한편에 있고 매트리스가 깔려있다. 아담이 빨간 대야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줘서 족욕(?)을 하며 발 피로를 풀었고, 점심으로 나온 프라이드 치킨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러고 달게 낮잠을 한숨 잤다.
한숨 자고 늦은 오후가 되니 데이빗이 캠프 주위를 한 바퀴 걷자고 했다. 텐트 밖으로 나왔는데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과 눈앞으로 펼쳐지는 웅장한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모두들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잠시 해가 쨍한 사이 내 텐트 뒤로 Uhuru peak(우후르 픽, 킬리만자로 정상)이 빼꼼히 모습을 살짝 드러낸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곧 올라갈 테니. 겹겹이 쌓인 산 뒤로 해가 지고 바로 어둠이 몰려왔다.
산에서 해가 지면 갑자기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모든 온기가 사라지고 추워진다. 그래서 밤이 되면 텐트 밖으로 나가기가 너무 어렵다. 화장실을 가려고 무거운 몸 이끌어 텐트를 나왔는데 세상에나,,, 하늘에서 별이 쏟아진다. 이렇게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언제 본 적이 있었나.
새까만 밤하늘
쏟아지는 별들
듬성듬성 노랗게 불 밝힌 텐트들
패딩잠바 주머니 속에 손을 꼭 집어넣고, 추위에 코끝 시려가며 한없이 한없이 까만 하늘에 수없이 박힌 별을 바라본다. 아, 나 지금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지?!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머릿속으로 함께 하고픈 이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도 잘 해냈다.
아산티 사타(Asanti Sana,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