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Tour 그랜드 투어
경험에 자양분 주기
독일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 줄 때 00 경험권, 00 체험권 이런 것들을 많이 준다.
경험을 하는 것에 높은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소중한 경험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건보다는 경험권 선물을 자주 한다.
아이 유치원의 학부모 모임에서 다른 학부모들과 담소를 할 때 그들은 나의 'Wander Jahr (나의 방랑의 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처음 만난 사람과 담소를 이어갈 때 대화를 이어갈 만한 무난한 화젯거리를 주로 여행에서 얻은 경험과 에피소드에서 찾기 때문이다.
wander는 단어 자체로는 ‘방랑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9살까지 정규 교육 속에서 주어진 학업에 수동적으로 충실했다면
정규 교육이 끝나고 성인이 된 만 19 세 이후부터는 세상 일에 능동적으로 호기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세상에
도전하고 모험하는 시기로 Wander Jahr (방랑의 해)라는 말을 한다.
아마 독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자기만의 '방랑의 해'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등학교를 마치면 그동안의 주입식 수동적 학습 환경에서 벗어나게 된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교과서에서 배운 것 말고 현장에서 배우기 위해 배낭을 메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현상은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을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취업을 하고 나서도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 건지에 대해 한 번도 진지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퇴사를 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경험을 한다는 것은 순간을 만족시키는 갖고 싶은 물건을 소유하는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여행을 다닐 때도 패키지여행 속에서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며 쇼핑과 인증 사진만 찍는 것보다
현지 사람들 속에서 현지 사람들이 지내는 생활 방식에 섞여 지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우리가 책에서만 배웠던 지식이 왜 그러한 것인지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여행에서 그 답과 이유를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쁨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Grand tour 그랜드 투어
시작
그랜드 투어라는 단어의 유래는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유럽 특히 영국 상류층 귀족들이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가정교사를 대동하고 장기간 유럽여행을 떠난 것이라고 한다.
주로 서양 문명의 근원지인 고대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와 르네상스 문화를 꽃피운 이탈리아와 세련된 프랑스 문화로 떠나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을 말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 독일을 떠나와서 아이들의 자연 속에서 본능에 따라 신나게 뛰어놀던 기억이 지워질까 항상 아쉬웠다.
유럽에서도 아직 더 갈 곳, 경험할 곳들이 많은데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어 아이들이 좀 더 크면 꼭 한 번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후 5년쯤 지나서 그 마음속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큰 아이는 6학년 올라가기 전 작은 아이가 3학년에 올라가는 겨울이었다.
나는 내가 아이를 낳고 지냈던 제2의 고향 같은 곳 독일 하노버에 꼭 다시 가보고 싶었는데
이왕 큰 마음먹고 움직이는 것 더 큰 도시 더 많은 문화와 볼 것들이 있는 대도시들로 정했다.
한 달 일정으로 런던으로 들어가서 도시마다 일주일 씩 지내보는 일정으로 베를린, 로마, 파리로 나오는 루트를 짰다.
모든 계획은 세세하게 직접 짰다.
말하자면 “아이와 함께 하는 한 달 유럽 인문학 여행”이 되는 셈이다.
나의 세대가 유럽 배낭여행을 책자 하나 들고 그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들고 그 책의 내용을 확인하는
여행을 했다면
이제는 그 대학생이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와 함께 다시 그 여행지를 다니며
아이에게 넓은 세계를 보여주며 처음 여행 와서 보았던 그 감동과 설렘을 다시 느끼며 또 다른 감회에 빠지게 된다.
말하자면 요즘 유행하는 90년대의 재현 "다시 그 여름 바닷가"가 아닌 "다시 그 여름 파리" 쯤 되겠다.
나의 경우만 봐도 20대에 배낭여행에서 보았던 에펠탑과 한인민박집에서 왁자지껄 지냈던 경험과
30대 때 남편과 함께 보았던 파리의 느낌은 분명 달랐고
40대가 되어 아이와 함께 간 파리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닌 감회가 달랐다.
같은 미술 작품인데 20대 때의 느낌은 책에서만 봤던 작품을 실제로 보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면
이제는 그 작품을 만들 때 작가 개인의 심경과 역사적 배경에 대해 생각하며 감상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아직 그런 부분까지는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아이의 시각에 맞게 파리의 느낌을 갖고 있겠지.
아이가 중심이 되는 루트 짜기
우리가 방문할 그 도시에 사는 우리 아이 또래의 초등학생이 있는 가족이라면 가족끼리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내가 사는 도시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과학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콘서트 관람, 맛집, 놀이터, 서점, 쇼핑몰 등등을 방문할 것이다.
그럼 그 도시에 살면서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으로 다녀보자.
여행이다 관광이다 생각하지 말고 현지인이라 생각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내 보자.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한 달로 길게 이어 보는 것을 계획했다.
각 도시마다 일주일 정도 지냈다.
최소 그 정도 기간 있어야 여유 있게 그 도시를 기억에 새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첫 번째 여행도시 런던:
런던 자연사 박물관 , 빅토리아 알버트 미술관 방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런던 최대의 장난감 가게 햄리스 방문, 하이드파크 놀이터,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세인트 마틴 필드인 더 처치 교회 런치콘서트, 지하 카페테리아 방문, 버킹엄궁 근위병 교대식
영화 해리포터를 촬영한 옥스퍼드 크라이스트 처치 그리고 옥스퍼드 대학 방문
캠든 마켓, 리젠트파크, 런던아이, 대영박물관, 빅벤, 영국 도서관, 트라팔가 광장
테이트 모던, 세인트폴 대성당, 코벤트가든, 타워브리지
뮤지컬 라이온 킹 보기
두 번째 여행도시 베를린: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 투어
유태인 추모 기념비, 체크포인트 찰리
브란덴부르크 토어 실버스타 파티
레고랜드, 베를린 동물원
티어가르텐에 있는 놀이터 다 가기
베를린 필하모닉 런치콘서트, 소니센터
세 번째 도시 로마 :
성 베드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 밤비니 투어, 쿠폴라 올라가 보기
로마 최대의 식료품점 Eataly 방문해보기
베네치아 광장, 포폴로 광장, 나보나 광장 등 로마 광장 탐방
포로 로마노,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등등 로마 시내 곳곳의 유적지 도보로 보기
트라스테베레의 한국식당 옆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
마지막 도시 파리
파리 디즈니랜드 방문
꽁시에르쥬리, 생 샤펠 성당, 노트르담 성당
센 강 야경 바토무슈, 에펠탑, 샹젤리제, 개선문
루브르 오랑쥬리 오르쉐 미술관 박물관 방문
퐁피두 센터 미술 체험
아이의 호기심이 나이에 따라 다르므로 그 나이 때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하게 놀거리 볼거리를 계획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공부는 많이 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슷비슷한 그림과 작품들이 끝도 없이 쭈욱 나오면 지루해 할 수 도 있다.
최대한 짧은 동선으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을 수 있게 했다.
하루에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넣지 않고 하루에 한 곳만 방문하거나
오전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오후에는 공원이나 놀이터에서 놀기
또는 일정상 종일 미술관을 봤다면 하루 정도는 아무것도 안 하고 쫓기는 일정 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만큼 신나게 놀기를 넣는 둥 최대한 여유 있게 지내려고 했다.
호기롭게 한 달을 아이 둘과 자유 여행하기로 계획을 짰지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24시간 논스톱 육아와 교육 모든것을 책임지는 전천후 멀티플레이어 엄마가 되어야 했다.
낯선 장소에서 아이들의 안전과 매 순간 벌어지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야 하고
그리고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여행 간 시점이
파리의 마레 지구와 바타클랑 극장에서 테러가 난 약 한 달 반 뒤 시점이었다.
테러로 인해 공항과 관공서, 박물관, 전철역 입구, 백화점 등 사람들이 많이 밀집하는 대형 건물 입구에선 짐 검사와 몸수색이 있었다.
테러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이 우리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면
우리의 자유가 얼마나 침해받고 일상생활의 불편을 겪게 되는지 아이들은 생생히 깨닫게 되었다.
그런 불안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눈뜨면 떠나는 매일매일의 모험에 흥분하였다.
새로운 세상의 자극에 뇌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초저녁이면 곯아떨어졌다.
한 달 동안은 오롯이 먹고 자고 새로운 세상을 모험한 것뿐이었다.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크게 자랐다.
엄마의 욕심으로 멀리 비행기 값을 들여서 갔는데 한 번에 많이 보려고 몰아치면 역효과가 난다.
그게 엄마 욕심대로 아이들의 머릿속에 쏙쏙 넣어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아이들의 시각에서 그 장소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가끔씩 그때 여행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기억하는 것과 아이들이 그때를 기억하는 것이 서로 달라
"너희들은 그렇게 기억하니? 하하하! " 내 예상과 빗나간 아이들의 추억에 웃음이 나온다.
예를 들면 여행 마지막 날 파리의 팔레 로열에 갔었는데 나는 그곳 마당의 독특한 조형물에 대해 얘기하면
아이들은 거기서 그 조형물을 피해 술래잡기하고 그곳 마당에서 작은 돌을 주워서 비석 맞추기 놀이한 걸 기억하는 식이었다.
아이들이 지금은 중 고등학생 신분이라 시간을 내어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없지만
다시 그곳을 여행을 하면 좋겠다고 우리는 얘기한다.
그때는 자동차를 빌려서 교대로 운전하면서 더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한 달 여행기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joyun11/220850830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