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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여행자 박동식 Mar 02. 2018

24.당신의 설날은 안녕한가요?

2018.02.16

아버님은 친구들 몇과 신의주에서 피난을 내려온 분이다.

정말 내일모레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단다.

홀로 내려오셨으니 친가 친척은 전무했다.

어릴 때는 설날이면 아버님 친구분들 댁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했다.

다행히 아버님 친구들은 서울 변두리 같은 동네에 정착했다.

어머님도 가족이 많지는 않았다.

오빠와 외삼촌과 조금 먼 또 하나의 마포 친척.


불행하게도 부모님은 일찍 세상을 등졌다.

어머님은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

아버님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돌아가셨다.


우리는 어렸고 흔히 하는 말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아버님 친구분들을 찾아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한동안 명절마다 식용유 세트나 비누 세트를 사들고 외가 친척을 찾아다니기는 했다.

그러나 조금씩 멀어지고 서먹해졌다.

나의 착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에게서 그리 달갑지 않은,

우리를 부담스러워하는 눈빛을 읽기 시작했다.

감히 말하자면 어머님과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외가 친척들의 도움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나는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자칫 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선물 세트를 사들고 찾아가도 반갑지 않은 일이란 것을.

오히려 너무 어려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으나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마음일 뿐이란 것을.

이제는 외가 친척들이 어찌 사는지,

살아는 계신지도 알지 못한다.


결국 명절이 되어도 찾아갈 곳도, 찾아올 곳도 없다.

그저 삼남매가 모일뿐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외로움을 잘 몰랐다.

특정한 날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명절은 물론이고 내 생일이나 기념일 등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남의 생일도 관심이 없었다.

세상 모든 날이 그저 해가 뜨고 지는 많은 날들 중에 하루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저 유전인자일 뿐이었다.


올해 처음 낯선 자신을 발견했다.

설날이 조금 쓸쓸했다.

차례는 지냈으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것 없는 그날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어? 이거 뭐지?


명절이면 공항이 미어터지는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유가 나 같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 역시 명절 때 서울을 떠나고 싶어 졌다.

서울의 예비 독거노인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났던 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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