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워홀 일기] 19. 평범한 일상
프랑스의 스시집에서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은 익숙해진 만큼 편해졌고, 편해진 만큼 실수가 늘었다. 정착을 위해 아등바등 분투하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시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집과 식당, 도서관을 왔다갔다하며 천천히 리옹의 삶에 스며들어갔다.
2주 정도 같이 일을 했던 친구가 그만두었다. 베를린에 간다고 했다. 지금은 그 아이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2주 동안 꽤 정이 들었는지 마지막 날 같이 퇴근을 하는데 괜히 아쉬웠다.
외로움이 워홀러의 숙명이라면 이별 또한 워홀러의 숙명이다. 나에겐 시한부처럼 1년이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언젠가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알고도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다. 그럼에도 막상 헤어짐의 순간이 다가오면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것은 비단 쓸모없는 감상은 아닐 것이다.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도 있기 마련이다. 뒤이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클로에는 내 이름을 듣고 단번에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이화여대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했다. 클로에가 할 줄 아는 한국어는 “안녕하세요”밖에 없었지만 한국에 살다 왔다고 하니 왠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다. 나는 라끌렛 기계가 없다며 클로에의 집에 초대될 구실을 만들었고 우리는 치즈와 소세지를 녹여 먹으며 금세 친해졌다. 클로에와의 만남 끝에도 이별이 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별이 있어 클로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별이 끝이 아님을 이제 안다.
매일 마주치는 동료들은 홀로 선 땅에서 든든한 가족이 되어주었다. 특히 인도에서 온 라이안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나를 너무나 좋아해주었다. 딸이 BTS의 광팬이라고 했다. 어느 날은 그가 김치를 만들어주겠다며 주방에서 슥삭슥삭 뭔가를 무쳐 접시를 내 왔다. 양배추와 오이와 피망을 넣고 고춧가루에 버무린 그것은 전혀 김치 같지 않았지만 묘하게 김치의 맛이 났다. 식당에서 상시 판매하는 미소된장국과 함께 먹으니 나름대로 밥도둑이었다. 그런가 하면 주방이모 캐시가 치킨을 튀겨줄 때도 있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온 주방 식구들과는 우리끼리만 느낄 수 있는 어떤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근무시간이 쌓여 가니 단골손님들도 눈에 익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온 히토미상의 식탁 위에는 늘 프랑스어 교본이 펼쳐져 있다. 히토미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이제 다가가 물어보지 않아도 그가 녹차와 한치초밥을 주문할 것이란 걸 안다. 한 번은 늘 영어로 주문하던 그가 프랑스어로 주문을 시도했다. L'addition...s'il vous.. plaît ! 더듬더듬 주문에 성공하곤 뿌듯해하는 모습에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다. 단골손님의 걸출한 발전에 나까지 괜히 흐뭇해졌다.
워킹홀리데이에서 '홀리데이'는 생각보다 거창한 모습이 아닐지 모른다. 낯선 땅에서 온전한 1인분의 몫을 해내기는 어려울지라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국적인 풍경을 눈에 담으며 소소하게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겨울은 이 정도면 괜찮았다. '워킹'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아 날씨 좋은 봄에는 파리로, 그리스로, 포르투갈로 여행을 가려고 다짐했다.
그리고 봄이 막 다가오고 있던 3월 초, 봉쇄령이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