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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t Nov 01. 2020

사랑해요

사랑을 고백하는 말들에 대하여

나의 하늘과 너의 땅이 입을 맞추는 순간, Le terre et le ciel



사랑을 고백해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랑을 고백하는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벙어리가 말했다. 혀 밑에 퇴적된 말들이 너무도 많아 혀를 깨물어 죽을 수가 없다고. 이름을 종이 위에 남긴 사람들은 내게 사랑은 우연이 아닌 오직 필연에 의해서만 말해질 수 있는 것이라 가르쳤다. 규율, 체계, 언어와 이성의 온도로 직조된 그 훈육은 내게 벙어리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벙어리가 아니어야 하는 순간에도 태연하게 말을 잃을 수 있는 인내를 새겨줬다.


나의 기도 안 에는 내 생에 머물다 간 목소리들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견고히 퇴적 되어있다. 나는 가끔 내 안으로부터 무언가 덜그럭, 덜그럭 거리는 소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듣곤 하는데 그 소음들은 언어와 나의 말 사이의 구조적 틀어짐을 경고해주는 것과 동시에 말해져야 했으나 말해지지 못한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계와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왜곡과 변질, 틀어져 가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함구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덜그럭덜그럭 거리는 신음소리를 덮어두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함구증’ 을 앓았다.    


사랑하고 싶은 너를 만나고 나는 실어증 환자가 되었다. 너는 내게 자꾸 꺼낼 수 없는 말과 목소리를 요구한다. 너의 다정함이 나 조차도 모르는 나의 생 정가운데를 꿰뚫어보는 것만 같을 때, 너의 손길과 몸짓 하나에 나의 영원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 내가 아는 모든 언어들로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아름다움이 눈길 하나로 무색해질 때, 내가 보고 들은 그 어떤 문장보다 감동적인 촉각을 내 몸 위에 포개어 줄 때. 그럴 때면 나는 퇴고할 공백 없이 빽빽하게 퇴적된 목소리들을 나는 끊임없이 뒤적거리며 너에게 어울릴 응답을 찾곤 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 음절의 단어도 찾지 못하고 바보같이 어,어,어,어,어,어,어,어,어 거리며 떨어진 말들을 줍다가 실어증을 앓았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럴 때면 그 무엇도 아직 앓아보지 못한 깨끗한 혀를 빌려 너를 추궁하고 싶다.


하고싶은 말을 줍지 못해 엉엉 울어버리고 싶어질 때면 너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너가 꾸려진 곳은 나와 정반대의 극, 나의 중력과 법칙들이 반대로 작동하는 곳. 나는 나의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 너의 법칙들을 이해하려 한다. 발보다는 머리가 조금은 더 똑똑할 테지, 머리로 내 땅의 중력을 받치고 너의 하늘을 공유한다면, 너에게 응답하는 일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머리로 땅을 받치고 발로 하늘을 바라본다. 머리 위에 심장이 선 순간, 심장은 혁명을 꿈꾸게 된다. 머리 몰래 심장이 키워왔던 마음들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해, 언어를 배우기 시작한 날부터 쌓아온 그 오래된 퇴적물들을 부수고 터져 나온다. 소중한 것들은 쉽게 말해져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의 금기를 거슬러 터져 나오는 말들. 의미의 촘촘한 구조들을 깨고 불꽃처럼 튀어 오르는 말, “두개의 발화가 동시에 말해지는” 불가능한 발화. 말을 쏟아낸 나 조차도 그 온도에 놀라 데어버린 혀를 붙잡고 엉엉 울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 터져 나오는 말이 얼마나 뜨거운 말인지를, 사랑을 고백해본 사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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