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1.
그럴 때면 그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들을 용서해줄 것만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내 모든 것들을 용서해줄것만 같아서,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용서가 필요해 이별을 꺼냈던 나는 두려워 눈을 감는다.
2.
당신은 내게 ‘왜냐’고 묻는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종결의 감각이 닿기 전에 아름다워지는 것들을 보다 먼저 지워 내기 위해서, 당신의 부재할 시간 속에서 그 아름다움들에 질식되지 않기 위해. 결핍이 내 문을 두드리기 전에, 나는 장님이 사물을 앓는 방식으로 당신을 앓고 앓다가 이 곳에 당신의 부재가 있을자리는 없다고 냉정하게 문을 닫고 싶다.
3.
나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는 내게 다시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우리의 시작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에 대한 ‘왜’들을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되었을 지라도, 이 끝 에는 헤아릴 것들을 세는 것이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렇다. 대부분 이별을 합의 하는 과정은 질의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 자리를 들춰봤을 땐, 갈 곳 없는 질문들 만이 응답없이 무성하게 남아 쓸쓸하게 부식되지 않았던가.
4.
그는 마치 단 한번도 누군가를 길들여본 적 없는,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갈아내야 사랑을 단 한번도 본 적 없는 눈을 할 수 있을까. 그 눈이 아프다. 바르트의 ‘검은 안경을 빌리고 싶다. 이 쓰라림을 적절하게 감출 수 있게. 나는 애써 덤덤하게 사랑하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변명처럼 보이는 나의 진실을 말한다. 이제와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아프고, 당신이 나를 사랑했기에 나는 당신이 아프다.
5.
그는 생각보다 덤덤하게 이별을 수용한다. 그는 잡았던 손을 놓았고, 이 장면 속에서 퇴장한다. 이 장면 속에 홀로 남은 내게는 이제 의무만이 남았다.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그가 있었던 일련의 장면들을 종결로 자명하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 이제는 과거의 구멍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 시간들을 다듬어 정의 내려야하는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