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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net Oct 24. 2021

소나기

갑작스러운 우연이 운명이 되기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피할 새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에 젖은 옷을 식어버린 난로에 말리는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닥쳐온 우연에 젖어버린 마음을 운명이라 굳게 믿으며, 운명이길 애원하며 꺼져가는 난로의 연약한  앞을 지키는 지루한 일이었다.


사랑에 ‘빠지다’와 사랑’하다’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사랑’이라 강하게 인상을 받는 행위는 많은 경우 사랑에 ‘빠지는’ 찰나의 장면이지, ‘하는’이 머무르는 과정은 아닐 것이다. 다음 두 가지의 진술을 비교해보자. ‘그 사람은 단 한 번도 약속시간에 맞춰 온 적이 없었어요. 나는 항상 화를 억 누르며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언제 올지 막연하게 기다려야 했어요’와 ‘그 사람이 문에서 걸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이 내 운명의 상대라는 걸’ 이 있다면 전자의 진술이 훨씬 많은 애정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후자의 진술이 ‘사랑의 담화’에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또 전자는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상의 영역에 있다면 후자는 인생에 꼭 한 번은 마주하고 싶은 환상의 영역에 있다. 이를 미루어 보았을 때, 사랑 ‘하는’ 행위와 ‘빠지는’ 행위는 서로의 존재가 껄끄럽지만 그렇다고 분리될 수 없는 애증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빠지다: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에 빠지다”라는 행위는 놀이의 중간태적 속성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가위바위보는 승패를 결정하는 독자적인 체계, 규칙이 참여자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선행하고, 참여자는 이 규칙에 따라 놀이를 할 뿐이라는 점에서 주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가위바위보는 참여자가 있어야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객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속성의 공존으로 인해 놀이는 중간태적 속성을 띄게 된다.)


사랑에 빠지는 행위 역시 놀이와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놀이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마주 할 수 있는 놀이 중에 가장 강한 파급력과 ‘단독성’을 지닌 그런 놀이.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놀이자의 눈을 가린 채 우연성이 이끄는 손에 끌려 주최자도, 게임의 규칙도 , 시작과 끝도 알 수 없는 게임 판 정 가운데 위에 내동댕이 쳐지는 일이다.   이제 참여자에게는 ‘자신’의 존립을 내깃 돈으로 건 이 도박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게임의 규칙을 알아내고 사랑의 가능성을 찾아 나아가야 하는 고독한 순례길을 걸어가야 하는 일이 남았다. 이것이 사랑하는 행위이고,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절뚝거림’의 과정이다. 누군가의 비유를 인용해서 표현하자면 사랑은 ‘접촉사고처럼 찰나에 발생해서, 보험처리처럼 지루하게’ 완성된다.


물론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사랑에 빠지는 행위를 사랑하는 행위보다 못한 행위라 하거나, 쉬운 일이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방식과 유사하게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고, 이유도 없지만 그냥 ‘내던져진다’는 점에서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인간이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과의 사이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행위이다. 사랑에 발을 담그는 순간, 사랑의 대상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 여태까지 평범하다고 인식되던 모든 것들이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한 것들로 색채를 바꾸어 새로이 지각된다.


s가 사랑에 빠지던 순간들을 다시 회고해보자. 어느 날 갑자기 평범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s는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은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장소였고, 사랑에 빠진 그 ‘사람’도 꽤 긴 시간을 알아온 익숙한 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날아온 그 순간은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순간을 선사했다. 작은 불씨가 번져 거대한 장작더미를 집어삼키는 모습을 바라보듯, 어떻게 무언가를 해볼 생각조차 해보지 못하고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그 사람이 번져 정경으로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만 보았다. 낯섦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정경 속에서 눈가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이 축성을 내리듯 자신의 빛으로 그 사람을 밝혀주고 있었다.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으며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몇 년이 흐른 지금 s는 아직도 그 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그 순간을 떠올릴 때면 발 끝에서부터 전달되던 그 울림의 메아리를 느낀다. 운명을 노력해보기로 결심한 첫 순간이었다. 노력할 수 없는 것을 노력하기로 결심한 순간 이후 운명이 숙명으로 변해가는 비극을 맞아야 했다.


변해가는 숙명을 붙잡고 무거운 돌을 하나하나 옮겨 운명이라는 탑을 쌓아 올리는 그 과정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생각보다 너무 빨리 깨달았다. 생전 본 적 없는 기이한 관계를 맺는 그의 방식에 놀랐고, 사랑에 빠지던 순간에서 자신이 얼마나 멀어져 버렸는지 그 거리를 돌아보며 놀라는 날의 연속이었다. 양쪽 도수가 다른 안경을 낀 것 마냥 왼쪽에는 사랑에 빠지던 찰나의 시선을 오른쪽에는 사랑을 유지해나가는 버거운 시선을 끼고, 서로 다른 두 시선 사이의 괴리로 어지러운 나날을 보냈다. 사랑의 빠지던 순간 그 사람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혹시 전혀 다른 사람을 잘못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은  그와 나는 과연 운명이었을까? 운명이 아닌 단순한 우연을 운명이라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깊은 의문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손을 놔 버리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들이 두려워 맞지 않는 걸음걸이를 맞춰 가야 했다. ‘우리’의 내일은 나의 운명이 아닌 그에게만 선택권이 있는 숙명처럼 느껴졌다.


맞지 않는 걸음을 따라가는 일이 참을  없이 버거워진 어느 , 포기하려 멈춰  자리에서 s 고된 시간들에선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에 빠지던 순간에서 멀어진  사람은 오히려 s에게  가까워져 있었고, ‘우리 길을 걸어가게 했던 것은 누군가의 의지가 아니라 사랑을 하기로 결심했던 본인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비록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게 만든 것은 우연과 갑작스러움  의지였다 할지라도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운명을 만들어온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  또한 같은 마음으로 너와  각자가 아닌 ‘우리 길을 만들어가기 위해 발을 맞추어 왔다는 것을.


- 너 지금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면 s 애인은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s 생각을 맞추는 퀴즈를 하곤 한다. 때로는 s 보다도  s 마음을 먼저 알고 있어 s ‘생각해보니까  말이 맞는  같은데?’라는 말을 하게 만든다. 그럴 때면 그는 항상 ‘그것 , 그럴 줄 알았어’라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기뻐한다. s 문득 그의 얼굴이 거울 속에 반사되는 자신의 얼굴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면 ‘당신과 나는 사랑에 빠질 운명이 맞았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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