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enet Oct 24. 2021

사랑 속에 머리를 담그고

사랑의 현존과 부재가 서로를 증명하는 방식

사랑은 존재함으로써 부재를 증명하고, 부재함으로써  존재를 증명한다. 사랑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는 깊고도 은밀한 결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존재와 부재 사이의  결탁은 애정이 초과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숨 막히게 하고, 애정이 결핍되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숨 쉴  없게 만든다.  결탁에 의해 도무지 고칠 방도가 보이지 않는 고질적인 열병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사랑의 존재가 부재를 증명하고, 사랑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독특한 증명식은 사실 진부한 주제 거리다. ‘사랑해서 더 외롭고 사랑이 아니다’와 ‘사랑이 떠난 후에야 사랑이 사랑인 줄 알았다’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을 거쳐 노래 가사로, 영화로 수 없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나 노래 가사 같은 예술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별의 순간에는 더 이상 애인에게 얽혀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시간이 지나 그의 부재에 괴로워하며 새벽에 답장 없을 무용한 편지를 쓰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봤을 테니 말이다.  하나의 대상에 대해 공존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두 담화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기이한 사실은 상투적인 것들을 아토포스로 만든다. 다만 비극적인 요소가 있다면 사랑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현재형이지만 사랑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건 항상 과거형이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요소는 우리로 하여금 더욱 사랑의 증명식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싶게 만든다.


바르트가 이미 말한 바 있듯 사랑과 전쟁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관용적으로 사랑과 관련하여 ‘쟁취’한다 라는 식의 관용적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것만 봐도 둘 사이의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랑과 전쟁은 대상을 ‘정복하고’, ‘포획하고’, ‘사로잡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행해지는 행위들 역시 전쟁만큼이나 혹은 전쟁보다도 더 치열하다. (베르테르처럼 사랑의 고통으로 자신을 죽이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전쟁은 내가 나를 죽일 정도의 격렬한 고통까지는 쉽게 유발하지는 못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또 사랑은 전쟁과는 달리 ‘반역의 미학’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포획한 대상이 진정한 주체가 되어 포획한 사람을 대상으로 바꾸고 정복의 주체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여기에서 너무도 사랑하기에 숨이 막히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사랑은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하여금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눈길이 향하는 방향, 표정, 사랑에 응답하는 답변 등 애인의 아주 사소한 작은 몸짓이나 말들이 하루를 지배하고 흔드는 괴물이 되고 이에 뒤따르는 수많은 해석, 추론, 감정들이 행렬을 이루며 상처를 낸다.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 그 사람을 만났는데 예전에 나를 보던 표정처럼 기뻐 보이지 않았어. 이제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사랑한다고 말하는 횟수가 이전보다 줄었어. 사랑이 식은 것 같아’와 같은 사랑의 상처를 계속 되새김질하다가 ‘사랑이 식었다 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사랑을 포기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애인을 정복하고, 포획하고, 사로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이 정복되고, 포획되고, 사로 잡히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진 사람은 항상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애쓰는 학생의 기분 속에 살게 된다. 선생님의 처분에 울고, 절망하고, 웃고, 행복해하는 학생의 모습에 지칠 때쯤, 애인의 도그마가 자신을 얼마나 무력하게 만드는지에 지쳐 이별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사랑의 종말 이후 부재 속에 존재하는 유령과 같은 사랑에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종말에는 되돌릴  없는 과거의 모든 것들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급시키는 기능이 있다. 전에 있던 아름다움은 고통으로 변하고, ‘ 사람은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기 위해 그가 존재했다는 것을 거꾸로 증명해야 하는 잔인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사랑했던 애인의 부재 앞에 점점 더 생생하게 살아나는 존재의 감각은 앞의 상황과는 반대로 주체와 타자의 위치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는 애인이 존재와 부재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끼어  어느 쪽으로도 발을 내딛을  없다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져    없게 되어버리고야 만다.


이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은 두 가지 고통은 모두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전 07화 당신이 나의 종교였기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