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민 Jun 12. 2019

지그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앉아있는 연인. 카페 안이지만 가로등 분위기의 조명 아래에 있어서인지 주황빛이 여자를 감싸 안았고 반대편 마주 앉은 남자는 어둡기만 하다. 얼마나 대조되는 빛의 온도 차이였냐면 여자는 마치 촬영하는 스튜디오에 있는 것처럼 확연하게 드러났고 남자는 1-2분은 집중해서 봐야 전체적인 실루엣이 드러나는 정도였다. 밝은 낮에 운전하다가 터널에 들어설 때의 느낌이랄까. 음 사실 그 남자의 깜깜함에 익숙해질 때쯤 나는 일부러 계속해서 밝은 곳을 봤다. 그대로의 시선이 좋아서.     


 실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눈 앞에 펼쳐진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먹는다. 제일 먼저, 상큼하고 통통 튀는 멜로디가 그들의 모습까지 발랄하게 만든다. 한참 동안 드라마 보듯 그들을 바라봤지만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소리 내어 대화라는 것을 나누고는 있는 걸까. 그들이 웃으면 마냥 행복해 보였고, 얼굴에 핸드폰 불빛을 비추고 고개 숙이고 있을 때는 또 다른 사람, 아니 모르는 서로 같았다. 심지어 어두운 조명 탓인지, 때마침 흘러나온 발라드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헤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상상도 잠시, 아이돌 노래가 나오자 발끝부터 까딱까딱 리듬을 타는 게 보인다. 알고 보니 온몸으로 온 맘 다해 대화를 나누던 둘. 이토록 다이내믹한 상상을 하게 만들어 준 건 다름 아닌 빛과 어둠, 그리고 소리였다. 잠시나마 헤어지는 모습을 상상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가끔씩 시선이 고정되어 감상하게 되는 때가 있다. 맑은 날, 초록잎이 무성하게 우거진 공원을 배경 삼아 등하교를 하는 학생들의 행렬에 시선이 고정된다. 또한, 주말 오후에 전철 안으로 내리쬐는 햇살과 쿠쿵쿠쿵 들려오는 열차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시간의 소중함을 비춰줄 때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 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서 가능하면 자주 핸드폰을 집어넣고, 이어폰을 빼놓으려 노력한다. 매일 반복되는 길 위에서도 새로운 시선들이 불쑥불쑥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지그시 바라본다.

이전 13화 담담한 취향 고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