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오쇼의 십우도를 읽고 있다.
24년부터 요가, 명상, 싱잉볼, 공 등 명상을 위한 몸의 움직임과 소리를 집요하게 쫓고 있다.
거의 하루종일 Malte Marten의 핸드팬 연주를 듣는 것도 내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그저 따라가는 결과라 볼 수 있겠다.
오늘 읽는 부분은 십우도의 설명이 아닌 제자와 오쇼간의 대화인데,
읽으면 읽을 수록 명상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템플스테이를 가면(카타리나~ 성당은 언제 갈거야..?) 참선을 하는데 그때 늘 스님이 말씀하신다. 정좌 후 아무생각도 말라. 더워도 파리가 앵앵거려도 무시하라.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떨쳐버려라.
오쇼가 이르기를,
왜 라는 질문을 버려라. 그 질문을 버리고 그저 존재하라. 질문을 버리면 머리의 차원에서 가슴의 차원으로 옮겨가고 가슴에 해답이 있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고요함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을 찾아라. 고요할 때 그 틈에 존재할 것이다.
여유를 가져라. 더 깊이 들어가라.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고요하게 앉아 있어라.
다시 템플스테이로 가보면,
1시간을 앉아있어보았는데 온갖 잡념과 상념이 달겨든다.
회사일, 아이의 일, 집안 일, 나의 일, 읽은 책,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남편에 대한 불만, 미운 팀원, 고마운 사람, 귀찮아서 미루고 미뤄둔 은행 일 등등.
하나를 간신히 떼어내면 득달같이 다른 생각이 들러 붙는다.
과연 언제 아무것도 안하고 아무 생각도 안하고 고요할 수 있는가.
나는 병원에서도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고 매일 듀오링고를 거의 한시간씩 하고(독일어를 공부한지 52일이 되었다) 책을 최소 3시간을 읽고 읽은 것을 정리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과연 할 수 있는가?
명상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인가
고요한 곳에서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고요하게 있는 것은 물아일체를 체험하라는 것 같은데 그것은 얼마나 연습해야 가능한가.
물아일체가 되는 순간 나는 점이 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움과 설레임으로 명상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실천할 것을 계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