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삼성의 홈구장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찍은 것. 서울 삼성과 서울 SK가 맞대결 중인 가운데, SK 가드 오재현이 레이업을 시도하고 있다.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농구 이야기를 이렇게 일찍 꺼낼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5일 차에 썼어야 할 글을 6일 차 아침에 쓰고 있는 까닭이 농구라서 부득이하게 이번 글의 주제로 정했다. 어이없게도 요즘 내 삶의 우선순위는 농구다. 당연히 나는 농구선수도, 농구선수의 가족도, 구단 소속 임직원도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지금까지 무려 13번이나 경기장을 찾았다. 농구 광인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 기록이지만, 최근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도 꽤 바빴던 직장인치곤 바지런히 발도장을 찍었다고 자부한다.
내가 이토록 농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한 후배와 업무 미팅을 마치고 한창 수다를 떨 때였다. 그는 내게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냐고 물어봤고, 자신은 더빙판을 봤는데 자막판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영화와 농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함께 극장으로 향했다.
영화는 상상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그림체로 투박한 척하지만 흐름이 매끄러운, 무난히 좋은 영화였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 농구에서 리바운드 정도만 알던 내가 재미있게 봤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이후 나는 농구보다는 ‘슬램덩크’라는 콘텐츠 그 자체의 팬이 되었다. 신장재편판 전 권을 구입하고, 평일에도 2시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팝업스토어에서 강백호 유니폼을 샀다. 친구가 에디터로 있는 유명 잡지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마니아로서 짤막한 추천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문득 ‘진짜 농구’가 보고 싶어졌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돌려보다가 내가 코트에 끌리는 농구화의 마찰음, 공을 튀길 때 나는 묵직한 소리에 벅차오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길로 나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경기장의 제일 빠른 경기를 예매했다. 2023년 1월 28일이었다. 하필 그날 연고팀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1484일 만에 47점을 몰아쳤고, 게임은 3차 연장까지 갔다. 두 시즌을 합쳐도 있을까 말까 하는 명경기가 내가 처음 직관한 경기였으니, 운명적이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겠다.
농구가 좋은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하나는 ‘단시간 고효율’이라는 점이다. 한 게임은 총 4쿼터로 구성되며, 쿼터당 10분간 게임을 진행한다. 공격 시간은 24초다. 다른 프로스포츠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플레이타임이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을 들이는 것을 싫어하는 터라, 언제 어디서 스포츠에 빠졌더라도 그게 농구일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효율’이 아니었다면 농구에 애정을 쏟을 일은 없었으리라 확신한다. 농구는 관객도 숨 가쁜 스포츠다. 선수들은 1분 사이에도 가로 15미터, 세로 28미터의 코트 양쪽을 수차례 오고 간다. 그 흐름이 꼭 규칙적이지도 않다. A팀 선수가 B팀 코트로 공을 빠르게 몰고 가도 B팀 선수가 공을 스틸할 수도 있고, 림을 맞고 나온 B팀 선수의 공을 A팀 선수가 동료에게 아웃렛 패스(상대 진영으로 달려가는 동료 선수에게 길게 던져주는 패스)로 전달해 순식간에 득점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정된 시간 내에서도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변화무쌍한 플레이를 감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나는 농구를 고효율 스포츠라고 본다.
그렇다고 농구처럼 밀도 높은 삶을 원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진 않다.” 더군다나 진짜 삶에서는 내가 매번 점수를 냈는지 알 수 없고, 내가 실책을 범해도 정상적인 플레이인지 일반 파울인지 유파울인지조차 모른다. 1초의 잘못된 플레이가 남은 게임 전체를 망칠 수도 있다. 나는 하루의 실수(범죄라면 나 역시 곤란하다)를 가벼이 여기며 살기를 바란다.
다만 나는 코트 위 선수처럼 주어진 생에 임하고 싶다. 그날의 주전이든 백업이든, 플레이가 잘 풀리든 안 풀리든, 이길 것 같든 질 것 같든, 일단 감독이 기용한 시간 동안은 어떤 모습으로든 코트에 있는, 그리고 이전 게임과 별개로 다음 게임에 다시 코트 위에 오르는, 선수처럼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한 번쯤은 수훈선수가 되는 날도, 어쩌면 시즌 MVP, 라운드 MVP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아무것도 되지 못하더라도 선수는 여전히 그 팀의 선수라는 것, 이 사실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