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광희문 옆 거리에서 찍은 것. 이 거리에는 내가 최근 즐겨 가는 카페가 위치해 있다. 주말에 와도 한적한 이곳이 좋다.
어젯밤 예상치 못한 눈이 펑펑 내렸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하다가 마감 시간에 나왔더니, 밖이 온통 하얬다. 시야 확보가 힘들 정도로 큰 눈송이가 신기해 영상을 찍었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 카페를 나섰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한 3초 정도는 당혹스러웠다. 늘 초경량 우산을 챙겨 다니는데 하필 이날만 가방에서 빼고 외출했다. 이렇게 인생이 얄궂다.
다행히 캡모자에 후드까지 눌러쓰며 이 순간을 위해 이런 차림으로 나왔구나, 짐짓 뿌듯해했다. 카페와 역의 거리도 도보 5분가량으로 멀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 내리는 한양도성길은 운치 있었다.
서울살이 6년 차, 나는 여전히 눈을 좋아한다. 머리로는 출근을 걱정하지만, 왠지 들뜬다. 눈이 올 때마다 나는 그나마 밑창이 복잡하게 패인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나선다. 그리고 폭신하게 쌓인 눈을 뽀득뽀득 밟으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고된 여정이지만 꽤 즐겁다.
나의 고향 덕분일 터다. 부산에서는 눈 자체가 엄청난 이벤트였다. 어쩌다 눈이 오면 10년 만의 폭설 같은 것이었다. 버스가 묶였고 학교가 쉬었다. 부산사람 마음 한편에는 창밖으로 눈을 바라보며 뜻밖의 휴일을 가졌던 추억 하나쯤 자리 잡고 있다.
아직까지도 눈 내리는 풍경은 내게 이질적이다. 상경하기 전 수원에서도 1년을 살았기에, 도합 7년 눈 체험가인데도 그렇다. 언제 익숙해질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 아마 진짜 서울사람이 되는 그날, 나도 눈에 심드렁해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해 본다.
“여기 부산 아니고 서울이다, 절편아.” 눈은 늘 낭만에 젖은 내게 호통을 친다. 어쩌면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감상하고 싶다.
눈에 젖은 옷, 눈으로 엉망이 된 신발, 눈 탓에 밀리는 출퇴근길…. 그럼에도 탐스러운 눈송이에 집중했으면 한다. 우산이 없어도 기분 좋게 거리를 걸을 수 있었으면 한다. 언제까지나 이 평범한 날씨에 마음이 붕 떴으면 한다.
글을 갈무리하려는 순간, 날이 갠다. 햇빛이 이중창에 스미는 것을 보니 오늘 태양은 꽤 강한 녀석이다. 몇 시간 후면 언제 눈이 왔냐는 듯 땅은 질퍽거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는 대로 또 설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