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는 오늘 기분이 어떠니

소망이를 만나 기분이 참 좋은 사람의 이야기

by 노난


인생 하반기의 윤곽이 다 그려졌을 무렵

오늘 나를 가르쳐줄 코치님이 왔다

코치님의 안내로 마방으로 갔더니

마방 앞에는 말을 씻길 수 있는 샤워장이 있었고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녀가

아마도 방금 탔던 말을 씻기고 있었다

샤워기로 물을 뿌리는데도 말은 침착하다

물을 뿌리고 샴푸질을 하는 소녀도 침착하다

평화롭다


마방이 무엇이냐면

대부를 본 사람은 아는 그 공간이다

세모난 처마 아래로 양쪽에 주르륵 방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 빛나는 말들이 소복한 건초 위에 서있었다

어쩜 말들은 이렇게 고요할까


오늘 내가 탈 말의 이름은 '소망'이다

짙은 갈색 털과 검은 갈기를 가진 크고 늠름한 말이다

2003년생이고 숫컷이고

국적은 한국


어머나 우리 공통점이 있어!

우리 둘다 한국이 고향이네?


코치님이 소망이를 끌고 승마장으로 향했다

나는 소망이와 나란히 걸었다

소망이의 크고 영롱한 눈 위로

하늘과 구름이 비쳤다


승마장에는 실력에 따라

3개의 단계별 장소가 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곳은

초보자들이 처음으로 말타기를 배우는

실내 원형승마장.


흙바닥 위로 원형 철제 울타리가 쳐있다

한 줄은 조금 작게 한 줄은 조금 크게

그 사이로 말을 타고 원을 그리며 훈련한다


여기서 잘 하면 더 큰 사각 실내승마장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잘하면 야외 승마장으로 간다


먼저 소망이의 목주변을 쓰다듬으며 인사를 하라고 했다

몸을 만지면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개나 고양이와 달리

말은 눈을 껌뻑껌뻑인다

말은 아주아주 예민한 동물이어서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향수 냄새가 나거나 핸드폰 진동에도 놀란다고 했는데

낯선 사람의 손이 몸에 닿았는데도

소망이는 고요하게 눈을 끔뻑끔뻑할 뿐이다

소망이는 좋은걸까

소망이는 싫은걸까


말에 올라타는 것을 배웠다

말 옆에 세워둔 계단에 올라

왼손으로 안장의 앞쪽을 잡고

왼발을 등자에 끼워넣고 번쩍 일어나

오른발을 넘겨 말에 올라타서 오른발도 등자에 껴넣는다

발의 1/3만 등자에 껴넣어야 안정적으로 힘을 실을 수 있다고 했다


올라탄 소망이의 등은 넓고 든든했다

이 높이에 올라오자

실내 승마장 중간에 뚫어놓은

공간으로 저 멀리 벚꽃도 보이고 산도 보였다


고삐를 쥐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좌우의 밸런스를 맞추면서

걷는 말 위에 앉아가는 연습을 하는데

이것을 평보라고 했다


따그닥 따그닥 소망이가 느리게 걷는다

이때 말은 단박에 이 사람이 초보자인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허벅지 힘을 제대로 못줘서 균형이 흔들리는 사람

그리고

긴장한 냄새를 풍기를 사람

그러면 초보자다


코치님이 말했다


-

긴장한 냄새를 폴폴 풍기는 초보가 올라타면

말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순한 말은 그냥 한번 태워준다! 하고 태워주는데

성격있는 말은 한번 떨어뜨려 볼까? 하고 장난을 쳐요

소망이는 순한 말이네요


응? 여기 무슨 냄새나요? 나는 아무 냄새도 안나는데?

아 이거? 이거 되게 여유로운 냄샌데?


양팔은 살짝만 구부려 편안하게 아래로 내리되

엄지가 앞을 향하고

손과 손 사이는 주먹 하나정도가 들어가도록

고삐는 엄지를 빼고 새끼를 빼서 가운데 세개의 손가락으로 쥔다


승마의 시작과 끝은 평보

처음 만난 말과 인사를 하고 몸을 푸는 시간이다

편안하게 앉아서 말이 어떤 호흡으로 걷는지 살피면서

조용하게 몇바퀴를 돈다


그 다음엔 경속보

빨리 걷는 말 위에서 리듬을 타는 것인데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먼저, 혓바닥으로 입천장을 치며 내는 쯧쯧쯧 혓소리로

말에게 달리자는 신호를 보낸다

동시에 발의 뒤꿈치로 꿍-말의 배를 찬다


말의 배를 차라니.

올라탄 것도 미안한데 힘있게 차라니.

초보자가 긴장한 냄새를 뿜어내는 순간이다


그 마음을 바로 아는 코치님이

괜찮아요. 신호에요. 힘있게 한번 꿍-하세요.

라고 말한다

그래도 마음은 불편하다


혀로 아무리 큰 쯧쯧쯧 소리를 내도

소망이는 속도를 올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코치님이 옆에서

처음이니까 도와줄게요. 하고 혓소리를 낸다

정확하고 큰 쯧쯧 소리.

인간의 혀에서 저런 소리가 날 수 있다니.

나라도 저 소리를 들으면 뛸거같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소망이가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엄청난 반동이 시작됐다


걷는 말 위에서는

허리를 세우고 앉아있는 것이 편안했는데

빠르게 걷는 말 위에서는

저절로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몸이 움직인다


코치님이 말한다

소망이의 리듬을 잘 느끼면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해보세요

하나 하면 일어나고

둘 하면 앉으세요

빠른 박자로 하나, 둘, 하나, 둘


코치님의 구령에 따라

양 허벅지에 힘을 주고 조여

소망의 등에 찰싹 붙어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하는데

내 엉덩이가 소망이의 등과 타닥 탁닥 엇박을 친다


그러기를 몇바퀴를 하다보면

앗. 하며 정박의 순간이 찾아온다

소망이가 허리를 높일때 내가 일어서고

소망이가 허리를 낮출때 내가 앉는다

우리 둘의 높이가 같아진다

그러면 코치님이 "좋아요"라고 말한다


기분이 좋아서 허벅지에 더 힘을 주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하며 말을 탄다

정말로 말을 타는 기분이 든다

타닥 탁닥 엉덩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사라지고

소망이의 발굽이 흙바닥을 치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저 너머로는 벚꽃이 흩날리고 하늘은 파랗고

나랑 소망이가 같이 높아졌다가

같이 낮아진다

고삐를 든 손이 높아지면 낮추고

벌어지면 모은다


와 이 기분 뭔가 되게 조화로워.

무언가 합주를 하는 기분이야.

와. 승마 너무 재미있어.


초보자의 감탄이 이어질 무렵

소망이는 속도를 낮춘다

코치님은 속도를 올리라고 한다


-

말을 리드하셔야 해요

같은 곳에서 소망이가 계속 속도를 낮추죠?

그럼 그 전부터 혓소리를 내면서

속도를 내리지 않도록 리드하셔야 돼요


하지만 소망이는 나에게 리더의 자리를 주지 않았다

나도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소망이가 생각하는 우리 사이가

상하관계가 아니라 친구 사이라면

나도 받아들이고 싶었다

더 가깝고 친밀한 관계. 상의해서 결정하고 막 비밀 털어놓는 관계.

코치님 알죠 뭔지 그런거?


나는 소망이 눈치를 보며 코치님한테 말을 걸었다

코치님은 여기서 일한지 오래되셨나요?


스몰토크로 다져진 인생이다

소망이 하고 싶은 거 해. 내가 코치님 맡을게.


코치님은 프리랜서 코치로서

잠깐 이 승마장에서 일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 남자분이다

원래는 필리핀에서 작은아버지와 말농장을 하는데

필리핀 일로일로섬에 농장이 있다고 했다


-

승마 좀 배우고 나서 필리핀에 말타러 오면 참 좋아요.

대여섯분이 팀을 만들어서 오면

빌리지를 하나 빌려서 일주일이든 3박4일이든

하루종일 말타고 달리고

앞바다에서 잡은 킹크랩이랑 물고기 구워서 먹고

그런거에요

저는 몽골은 음식이 입에 안맞아서 필리핀이 좋아요


네????????

뭐라고요?????????

필리핀에 일로일로섬이라는 곳에서 말을 빌려타고

하루종일 달리고 돌아오면 뭐가 구워져있어요???


나는 가볍게 시작한 스몰토크에서 빅쇼크를 받고 말았다

뭐야...천국이야..뭐야...

이 이야기를 반드시 친구들에게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말. 필리핀. 생선구이.

머리에 세단어를 심어두고 다시 혓소리를 내며

소망이를 달랬다

혓소리와 발꿍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채찍을 손에 쥔다


이것 역시 초보자의 마음을 움찔하게 하는데

초보자니까 채찍을 주는거라고 했다

왼손으로 든 채찍으로

말의 목주변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말은 반응하는데

채찍은 그야말로 마지막 수단이니까

발과 혓소리로 말을 리드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잘해야 채찍도 안든다


그렇게 금방 50분이 지났다

마지막은 평보

천천히 걸으면서 어깨와 다리를 스트레칭하고

소망이를 잔뜩 칭찬해준다

목을 쓰다듬고 엉덩이를 톡톡 친다


다시 계단 앞에서

조심스럽게 소망이의 등에서 내려서

바닥에 털썩 두발이 닫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허벅지가 저릿저릿하고

다리가 흐트러진다

내 무게를 태우고 걸었던 소망이는 흔들림이 없다


소망이의 고삐를 쥐고 마방으로 갔다

마방에서 소망이의 목을 몇번 더 쓰다듬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목을 쓰다듬는 기분이 정말 좋다

소망이는 기분이 어떨지

소망이도 기분이 좋을지


사무실로 돌아오자 원장님이 싱긋 웃으며 맞이한다

어떠셨어요?


내가 함박 웃으며 대답한다

원장님은 어떻게 승마를 시작하셨어요?


-

20년 전에 제주도에 가서 처음으로 승마체험을 해봤는데

말 위에 올라탔더니 그 기분이..글쎄..너무 좋았어요

정말 너무 좋았어요

그때는 승마장이 정말 없을 때라서

일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승마장이 2시간 반거리였어요

거기를 가면서 승마를 배웠는데

말에 앉아있으면 나는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어요


아. 지금 원장님의 얼굴이

바로 세상에 부러운 게 하나도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원장님의 얼굴을 보며

그 자리에서 20회 쿠폰을 끊고 승마장의 회원이 되었다

다음 레슨은 바로 다음날로 잡았다


허벅지는 묵직하고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의 기분을

조금 느껴보았다

소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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