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 히치하이킹

by 너나나나

오래전부터 뉴질랜드는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해서 여행을 하게 되면 꼭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하기 전에, 오클랜드 근교로 히치하이킹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1번 고속도로를 타서 남쪽으로 가야 했기에 교통이 집중되어 산만한 오클랜드 시티 중심보다는 뉴마켓 쪽에서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것이 더 가깝고 효율적일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뉴마켓까지 간 후 고속도로 진입로 앞에 서서 집에서 미리 준비해온 피켓을 들고 히치하이킹을 시작했다. 오전 8시에 집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9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HAMILTON과 ROTORUA라는 글씨가 쓰인 박스 종이는 비에 젖어 너덜거리고 있었다. 시작부터 비가 내려 난항에 예상되는 가운데,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서 멈춰 선다.

첫 번째 운전자는 40대로 보이는 여성으로 아들을 시티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뉴질랜드 주변 섬나라에서 왔다는 그녀는 집이 타카니니(시티에서 1시간 거리)라서 내가 들고 있던 피켓의 목적지, 해밀턴까지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타카니니까지라도 태워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면서 조심스럽게 비에 젖은 머리를 털며 차량 내부를 살폈다. 운전자가 여자고 혼자라서 별 의심 없이 탑승했는데 차 내부는 노숙자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더럽고 난장판이었다. 혹시나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마음을 조리며 정신 바짝 차리고 조수석에서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차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다니기보다는 차에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이 많아, 정말 노숙자가 지내는 차인가 싶을 정도의 차가 많다고 한다. 차는 더러웠지만 아주머니는 친절하고 좋았다. 뉴질랜드가 안전한 나라라고는 하지만 혼자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방심하면 안 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두 번째 차량은 생각보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탑승할 수 있었다. 타카니니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데 첫 번째 차량에서 내려 5분도 안돼서 바로 다른 차량 한 대가 멈춰 선 것이다. 해밀턴으로 일을 하러 가는 중이라던 뉴질랜드인 아저씨였다. 공사장 형광 조끼를 입고 계셨던 아저씨는 영어 철자가 틀린 박스 피켓을 들고 있는 키 작은 아시아인 여자가 혼자 비까지 맞고 있어 안쓰러웠는지 측은지심에 차량을 세워주신 듯했다. 정통 키위 (뉴질랜드 사람을 일컫는 말) 억양이 배어 있어, 아저씨와의 대화는 꽤나 힘들었다. 최종 정착지가 로토루아라고 설명해주었지만 로토루아가 뭔지 못 알아듣길래 온갖 억양으로 로토루아를 발음을 하던 중 '아!, 뤄로루아?'라고 외치는 아저씨. '응? 뤄로루아?' 나는 지금 방금 무엇을 들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키위 영어 발음이 알아듣기 힘들다고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나게 굴러다니는 영어 발음은 처음이라 정말 당황스러웠다. 아저씨도 내가 본인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대화 소재가 고갈된 후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지키며 그렇게 해밀턴까지 갔다.

세 번째 차량은 운이 좋게도 해밀턴에서 로토루아까지 한 번에 간다는 차량에 탑승했다. 머리가 새 하얀 할머니와 뒷좌석에는 어린 아기가 타고 있었다. 당연히 차량이 섰을 때 내부를 본 나는 할머니와 아기라는 조화에 전혀 일말의 의심 없이 차량에 탑승했다. 할머니는 아기 엄마가 일을 나간 사이 잠시 봐주는 중인데 아기가 운전하는 차에 타기만 하면 잠을 잔다고 했다. 그래서 집 주변을 그냥 달리면서 아기를 재우려고 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굳이 나를 위해서 로토루아까지 가는 수고를 자처하셨고 나는 과한 친절함에 의심병이 도져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저 아기가 진짜 손주가 맞긴 할까부터 나를 로토루아가 아니라 어디 마약상에게 팔아넘기는 범죄 조직 단원이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했다. 할머니는 내가 그런 의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적재적소에 내가 나타난 덕분에 운전해서 아기도 재우게 되었다며 기뻐하셨다. 할머니는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시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만약 이 할머니가 나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기려 하면 그 순간 내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계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생각보다 로토루아 방향으로 아주 빠르게 잘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곤 어느 순간 정말로 로토루아에 도착해있었다. 편도 1시간 반이 걸리는 이 거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이렇게 태워주셨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했고, 괜히 의심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봤던 것에 죄송했다.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자는 나의 제안에 자기는 원래 사진을 안 찍는다며 거절하시더니 마지못해 한 장 찍어주신 할머니. 내리기 직전의 순간에도 '왜 사진을 안 찍으려 하시지? 뭔가 본인의 얼굴이 노출되면 안 돼서 그런가?' 끝까지 의심을 버리지 못하고 어색한 미소로 손을 들어서 차를 보냈다.

차에서 내려 예약한 호스텔까지 30분을 걸어가는 동안 그제야 내가 이상한 차에 탄 것이 아니라, 진정 호의를 베풀어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을 깨닫고 헛웃음이 나왔다. 차가 더러워서 의심하고, 아기가 타고 있으니 오히려 의심하고, 태워다 주겠다는데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이는 여행하면서 남을 쉽게 믿지 않는 버릇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렇게 의심을 하고 조심하는 덕분인지 그동안 단 한 번도 나쁜 일이 내게 벌어진 적은 없다. 오늘 하루 동안 나를 걱정해주시던 아주머니, 불쌍히 여겨 먼 거리를 태워주신 아저씨, 엄청난 호의를 베풀어주신 할머니까지. 의심을 하긴 했지만 결국엔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뉴질랜드에 있어도 뉴질랜드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번 여정은 내게 피와 땀이 되는 경험이었다. 아침부터 오던 비는 어느샌가 개어 화창한 날씨로 변했고 안전하게 오클랜드에서 로토루아까지 히치하이킹으로 도착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가는 길도 히치하이킹으로 해서 돌아갔다. 필리핀 가족을 만나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고 나의 뉴질랜드 히치하이킹 여행은 이로서 대 성 공이다!

태워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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