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부와약초꾼 Oct 28. 2022

학교 텃밭 놀이터

농부와 약초꾼의 취미생활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공부방 활동을 하며 만났던 학생들 덕분입니다. 거울같이 투명한 아이들 앞에서 저를 보게 된 까닭입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렇지 못한 제가 있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제가 자립적인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렇게 3~5년을 두고 한 걸음씩 천천히 귀농을 준비하던 저는 즉시 시골로 이주를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뜻이 있다면 길이 있다고, 10여 년이 지나 동네 학교 텃밭 수업을 통해 다시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역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던 중에 학교 텃밭 프로그램이 있었고, 마침 제가 사는 마을 초등학교에서 텃밭 수업을 하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에 거주하는 적당한 농사 선생님을 찾던 중에 저에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이제는 농사 수업을 처음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귀농을 준비하면서 진주, 괴산, 홍성, 봉화, 문경, 진안, 제주도, 금산 등 전국에서 생태적인 농사와 관련된 수업이라면 찾아가 배움의 경험을 쌓은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받아온 수업 내용을 정리하여 다시 풀어내는 작업도 저에게는 새로운 위치의 변화이며, 수업을 준비하며 진정한 저의 지식으로 만들었습니다.



 학교 텃밭 수업은 제가 짓던 농사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고 체계를 잡아 쉽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가 배우고 익히는 것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학교 텃밭 수업도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텃밭 수업은 격주로 진행했습니다. 농촌 지역인 까닭에 농사를 짓는 가정이 많고 학생들이 농부의 자녀인 경우가 많지만 모두 농사일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각종 곤충과 어울려 흙을 만지는 농사 수업을 기대하는 친구는 40여 명 아이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도였습니다.

 


 농촌 문화를 학교 담벼락 안으로 가져온 텃밭 수업 시간은 ‘농부 되어 보기’를 통해 학교와 지역이 연결되는 경험을 합니다. ‘농가월령가’를 읽어 보고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100년 전의 농사짓는 풍경을 그려 봅니다. 텃밭에서는 그 지역의 고유한 토종 유전자원을 이어받아 재배하고 채종하여 다시 씨앗 나눔을 하며, 작물이 익으면 직접 수확해 요리 실습을 합니다. 또 자연을 소재로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리고, 수확한 농산물을 장터에서 팔아 얻은 수익금을 지역에 환원하는 등 복합적인 교육을 진행합니다.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농사의 매력인 계절의 변화무쌍함을 피부로 느끼는 것만큼 자신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잘 살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싹을 잘 틔우는 아이, 호미질과 삽질에 능숙한 아이, 멀칭을 꼼꼼하게 잘하는 아이, 관찰력이 뛰어나 작물에 수분 공급을 적기에 잘하는 아이, 감성이 풍부해 남들은 지나치기 쉬운 자연의 모습에서 시상을 떠올리는 아이, 관찰력이 뛰어나 영농일지를 세심하게 쓰는 아이 등과 같이 농사일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제각기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연과학자인 찰스 다윈은 7세 무렵부터 꽃과 나무를 가꾸는 취미를 가지고 자신만의 작은 정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농촌에서는 적어도 농지 한두 평 정도는 농사를 짓지 않고 다른 용도로 떼어 두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 애쓰지 않아도 기존에 가지고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하면 농업을 기반으로 수행하는 특별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농촌에는 제2의 다윈과 제3의 다윈을 탄생시킬 만한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농업을 통해 생명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높이고 정서적 안정감과 책임감 등을 놀이와 취미 활동으로 익힐 수 있게 되면 앞으로 인생의 고비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내공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또 텃밭 수업은 농사일을 교육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놀이와 예술로 풀어내는 청년 농부들과 아이들이 만나 농촌 문화를 바꿀 수 있는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농사일을 고된 노동으로 여겨 자신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는 생각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텃밭 수업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늘을 따르고 땅을 보살피는 사계절 텃밭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성장하여 ‘이 마을과 땅을 위해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품은 젊은이가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농촌의 미래에 흥미로운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전 07화 시골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