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농사짓고 채취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기대했던 미래가 여기에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입니다. 작은 씨앗의 싹을 틔워 연약했던 줄기가 우뚝 서도록 돌보아 거두고 음식으로 입에 넣어 똥으로 내놓아 다시 포슬한 흙이 되기까지의 자연스러운 여정을 함께합니다. 그 어느 일보다 정직한 일이라고 여기며 순전히 좋아서 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지구를 연결하고 살리는 작업이므로 일에 몰입할수록 생태 감수성이 저절로 깊어집니다.
사실 ‘농부와 약초꾼’은 인류의 혈액 속에 흐르는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자연을 향해 마음을 살짝만 열어도 내면에 잠들어 있었던 야성이 꿈틀거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자연(nature)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가령 일상에 치여 심신이 고단할 때 산이나 들에 나가게 되면 마음이 회복되고 닫힌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을 가져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소유보다 존재가 중요하다고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물아일체감을, 순간이 영원과 같은 충만한 경험을 꼭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농부나 약초꾼이란 업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비단 과거의 직업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음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농사짓고 채취하는 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한 직업임을 확신합니다.
그러나 2021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 100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그중 단지 4명이 농가 인구라고 합니다. 상당히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먹거리를 조달하기 위해 밭을 일구고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약식동원(藥食同源), 즉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라고 하며 ‘내가 먹는 것이 곧 나이다.’라는 잘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건강 관리의 기본은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고 질병을 치료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농부와 약초꾼은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이를 적정하게 전달하는 다수의 건강과 관련이 깊은 식치(食治) 전문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이러한 농업의 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 농사짓는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일이 당연히 따라옵니다. 흙먼지 날리는 곳에서 풀을 매기 위해 손과 발을 쓰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정적인 생활의 기반이 되는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25세에 미련 없이 떠났던 서울살이, 어느새 귀농 15년 차이며 ‘농부와 약초꾼’ 10년 차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여느 농부처럼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로 인해 영향을 받아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이 다할 때까지 지속할 작정이며 이와 관련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경제적 능력을 자본이 아닌 스스로의 노동에 기초하고자 농사를 짓게 된 이야기입니다. 특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흐름에 영혼을 의탁하는, 생태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전환을 꿈꾸는 이들과 공유하고픈 ‘농부와 약초꾼’의 기록입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농사와 채취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는 청년 농부들의 즐거운 에너지를 차곡차곡 담아 눌러쓴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하는 작은 길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