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의 술래잡기

달리기

by 농농이네

최근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도하는 달리기는 아니지만,

이 전에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탓에 얼마 달리지 못하고 포기하였다.

유산소 운동 경험이 많이 없어서 체력은 너무 약한 데 비하여

내 몸에 맞지 않는 빠른 페이스로 달리려고 하였다.

결국 얼마 달리지 못하였고, 성취감이 나지 못해서 습관이 될 수 없었다.


그 이후에도 항상 달리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지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러닝크루에 가입을 하게 되고, 달리기에 진심인 사람들과 함께 뛰기 시작하니

혼자서는 달리지 못했던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되었고,

달리기가 내 삶의 일부가 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다이어트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정신건강 때문이다.


나는 트라우마가 많은 편이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아직도 꿈에 나타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분노가 일어나거나 그 당시에 느꼈던 무력감을 생각하며 마음이 아파진다.


달리기는 이런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신기하게도 과학적으로도 정신이 과거와 멀어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인간이 유산소 운동을 하게 되면 신경가소성에 영향을 줘서 ,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인생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물리적으로 달리면 정신적으로도 달려지는 것이다.

달리기를 하면서 앞을 보지 않으면 넘어지기에 앞을 볼 수밖에 없듯

그래서 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기 위하여 달린다.


달리기를 하면서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무거워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순간에는 과거가 나를 붙잡지 못한다.


물론 지금도 과거는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니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며 과거로부터 도망가려고 한다.

과거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에 붙잡히지 않기 위하여.

아마도 내가 죽기 전까지 과거와 나는 끝나지 않는 술래잡기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달리기는 내게 있어서 단순히 다이어트가 아니라 영혼을 치유하는 의식과도 같다.

하지만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는 내가 이길 수 없다.

아픈 과거란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유령과도 같은 과거라는 존재.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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