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Y 한 달리기를 위하여
속상하게도 정강이 부상은 여전하다. 그래도 걸을 때나 제자리 뛰기를 할 때 통증은 없는 걸 보니 나아지고는 있나 보다 짐작할 뿐. 통증이 사라진 것 같다가도 은근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참 얄밉다. 휴식을 한다고는 하지만 무작정 쉰다고 해도 언제 완치가 될지는 모르는 데다가 요새는 달리지 않을 수 없는 날씨여서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달리고 있다. 한 번 다치고 나니까 그동안 약간 소홀했던 자세, 훈련법, 보강운동 등을 찾아보게 된다. 역시 달리기는 심오한 운동이었다.
수많은 조언 속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EASY RUN이었다. 쉬운 달리기라니, 그게 대체 뭔데. 엄밀히 말하면 이지 런은 특정한 페이스나 기록이 아니란다. 달리고 있는 나의 느낌이 EASY 해야 한단다. 예시로 드는 게 옆사람과 편하게 대화를 하면서 달릴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아마 조깅이 이 영역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래도 매번 혼자 달리는 나로서는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몸을 사리는 중인 나로서는 그저 신스프린트가 도지지 않도록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세에 집중하고 천천히 달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혼자서 대중없이 달리다 보면 페이스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난리법석이다. 그런데 똑같은 페이스여도 어떤 날은 매우 매우 힘들고 어떤 날은 가뿐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이지 런을 특정 페이스로 구분 지을 수 없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게다가 각자 몸에 맞는 페이스가 있으니 쉽게 달리는 것도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심박수로 구분해야 하는 걸까. 꽤 일리는 있지만 스마트 워치가 있더라도 기계처럼 심박수를 맞추면서 달리는 건 불가능하다. 언덕에서는 걷기만 해도 심박수가 난리 난다고요! 음, 그래서 그냥 EASY 한 느낌이라고 하나보다. 몸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수준. 나만의 쉬엄쉬엄 달리기.
심지어 주간 훈련량의 대부분을 이지 런으로 채워야 한단다. 말하자면 빡센 러닝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우는 과정이랄까. 천천히 달리기가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니. 미처 몰랐네. 사실 여기저기서 중요성이야 많이 들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긴 하다. 앞으로 귀기울여 듣겠습니다. 반성합니다.
어쨌든 요새는 조급하게 거리를 늘리고 페이스를 단축시키고 싶어 했던 지난날과는 영 다른 노선의 달리기를 하고 있다. 오래 달리려면 부지런히 이지 런으로 채워서 천천히 장거리 러닝에 충분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다. 안 그러면 취미를 영영 잃을 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달까.
지난 1년 동안 달리기를 시작해서 어영부영해 온 것을 고려하면 이 정도의 부상으로 그쳤다는 게 다행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부상 바로 전까지는 어느 순간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 부분 때문에 알게 모르게 무리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왕초보 수준은 벗어났으니 조금 더 전문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몸소 부상을 통해 알려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부상을 가지고 달리기를 하면서 느낀 장점이라고 한다면, 점점 기록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그저 오늘 달리기가 쉬웠는지 어려웠는지에 중요성을 부여하게 된다.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었던 며칠을 경험하고 나니 달릴 수 있는 매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아마 부상이 쉽게 나았다면(물론 좋았겠지만) 또다시 무리를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머지않아 달리기 자체에 부담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내 마음처럼 낫지 않는 부상을 이겨내기 위한 긍정회로를 돌려보았다. 과도하게 일에 몰두하면 번아웃이 오는 것처럼 매번 역치를 넘어서는 운동에는 부상이 따르는 법. 몸과 마음에 힘을 풀고 EASY 하게 달리는 것도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었다. 빠릿빠릿하게 효율을 추구하고 성격 급한 나로서는 빡센 러닝보다 쉬엄쉬엄 달리는 게 어렵다. 더 오래, 더 멀리 가려면 일부러 여유를 가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왠지 인생 조언 같기도 하네. 여전히 달리기를 통해 배워야 할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