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의 대회 참가

가끔은 함께 달리는 재미

by 농띠

당연한 소리지만,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마라톤이나 대회 같은 건 꿈도 꾸지 않았다. 42.195킬로미터를 한 번에 달린다는 건 거의 신의 영역처럼 느껴지는 데다가 지금 30분 달리는 것도 힘에 부치는데 대회는 무슨 대회. 보통 대회는 아무리 짧아도 10킬로미터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5킬로미터도 힘겨워하던 나에게는 턱없이 높은 목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덧 1시간을 달리고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딱히 할 말은 없다. 왜냐면 언제까지 10킬로미터를 달려야겠다는 목표를 세워서 훈련을 한 게 아니라, 가끔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조금씩 시간을 늘리고 거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깔짝대다 보니… 정말 어쩌다 보니 가능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여름까지 깔짝댈 테니 슬그머니 21K를 달리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올해 바람 중에 하나다(종아리 부상의 완치가 제일 시급한 소망).




기회도 어쩌다 보니 왔다


어쨌든 1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게 된 그 무렵, 별생각 없이 참여한 행사를 통해 ‘마라톤 대회 10K 참가권’에 당첨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7개월 만이었나. 항상 기회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법이다. 사실 처음에는 당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대회에 나가고 싶지는 않았었는데, 찾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대회 규모가 크고 참가비가 꽤 비싸서 깜짝 놀란 마음에 참가해 보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초보 중에 초보인 내가 대회에서 완주하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아니겠는가. 혼자 달리는 동네 러너로서 아직 한 번도 다른 사람들과 달려본 적이 없는 나는 대회 분위기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처음 참가하는 대회에 부푼 마음과 걱정을 안고 새벽부터 출발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예상한 것보다 엄청난 인파에 놀라고 수많은 동호회 사이에서 홀로 소심하게 몸을 풀면서 준비하던 뻘쭘함이란. 그래도 다 함께 달릴 때 활기찬 분위기와 엄청난 기세에 휩쓸려서 평소보다 빨리 달리면서도 빠른 줄도 몰랐던 순간, 지칠만 하면 어디선가 들려오던 응원의 목소리, 피니쉬 라인을 보고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페이스를 올렸을 때의 환희, 마침내 완주해서 간식과 메달까지 받았을 때의 벅찬 마음은 초보 러너에게 대회의 매력을 알려주었다. 막상 달려보니 대회 참가에 대한 부담이 사라지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을 얻게 된 셈이다.


대회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초보 러너가 대회에 임하는 자세는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들의 뒤꽁무니를 죽어라 쫓아가는 것.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로 남지 않으려면 일단 평소에 많이 달려야 한다. 첫 대회를 준비하던 10월을 기점으로 매달 누적 100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게 된 것도 어찌 보면 대회를 준비하면서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예기치 않게 몸이 가볍고 잘 달려져서 기분 좋은 날이 있고 내 몸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속상한 날도 있지만 그냥 달린다. 목적은 장거리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대회에 나가서 남들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는 것이니까.


운동은 정직하다. 하는 만큼 는다. 물론 많이 달린다고 실력이 수직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거면 누구나 킵초게처럼 달릴 수 있게. 그렇지만 어느 날 몸이 무거워서 속상하게 달리고 있는 와중에 문득 과거의 나와 비교를 할 때면 ‘와,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네’하는 생각이 들면서 살짝 뿌듯해지는 것이다. 5킬로미터도 버거워하던 내가 10킬로미터를 달리게 되고, 어느 날은 하프마라톤을 달리고 싶다고 거리를 늘리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말이다. 세상만사가 내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아도 그냥 하루하루 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아지는 게 있다는 걸 매번 달리기를 통해 배우고 있다.


올해는 3월 서울마라톤(동아마라톤) 10K 참가로 스타트를 끊었다. 따뜻한 봄을 맞아서 더 많은 대회에 참여하고 싶다. 참가비용이 썩 저렴하지는 않은 데다가 예기치 못한 부상 때문에 당분간 몸을 사릴 필요가 있어서 내가 원한다고 다 참여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기록이 중요한 게 아니다(물론 PB를 달성하면 기분은 좋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리면서 얻는 에너지를 경험하고 완주한다는 게 중요한 거지. 달릴 수만 있으면 아쉬울 건 하나도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