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러너의 퀘스트

마의 구간, 그 너머

by 농띠

나는 한 동네에서 거진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 변한 곳이 많다고 해도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전부 여기에 있다. 서울이나 규모가 큰 도시만큼 인프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있을 건 다 있다. 집 근처에는 하천이 양옆으로 길게 뻗어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데크가 빙 둘러진 호수도 있다. 달리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어딜 가도 적당한 북적임과 적당한 한적함이 공존한다. 하지만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고 해도 모든 길이 익숙한 것은 아니다. 평소 산책을 좋아해서 자주 걸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지난 몇 년 동안 운전 생활에 익숙해진 나머지 웬만한 거리는 차로 이동하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말았다.


야외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에는 동네 하천을 달린다고는 해도 집 반경을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주변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호기심을 가지고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하기에는 자주 봐서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점차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고, 어느 날부터는 살짝 발걸음을 주춤하게 될 정도로 낯선 풍경을 마주하면서 깨달았다. 세상에, 어디까지 온 거지? 달리면서도 계속해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나중에서야 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신기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덧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대중교통을 타고도 한참 걸리는 곳까지 길어진 것이다. 내 머릿속 러닝 지도를 확장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달리는 동네 코스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 끝없이 펼쳐진 하천, 한적한 차도 옆길, 호수 한 바퀴. 가끔 기분 전환 삼아 체육공원에서 400미터 트랙을 달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하천이나 호수 근처를 달리는 걸 더 선호한다. 그날의 컨디션, 기분, 목표 거리 등에 따라서 코스를 매번 다르게 선택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보통 5~10킬로미터를 달리는 편인데, 슬슬 하프마라톤(21K)에 도전하고 싶어서 점점 거리를 늘리는 데 욕심을 내고 있다. 5킬로미터에서 10킬로미터로 늘리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니 아마 그 두 배, 아니 네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거리를 늘리기 위한 훈련 목적으로는 주로 하천을 달린다. 하천에는 수많은 다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리너머가 아직 뿌옇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는 곳이 있다. 나는 거기를 '마의 구간'이라고 부른다. 마의 구간을 지키고 있는 다리만 보이면 기가 막히게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걸 성토하는 듯이 온몸이 아파온다. 아직 내 수준에서는 그 이상을 넘어가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사실 훈련 과정에서 마의 구간을 두어 번 넘어본 적이 있긴 하다. 그때의 희열과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와, 내가 여길 넘었어! 하지만 거기까지. 돌아갈 힘은 남겨둬야 하니까 초입 부분에서 기분만 내고 반환점으로 찍고 돌아오는 게 아직은 최선이다.


살짝 맛만 본 다리너머의 세계는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낯선 동네였다. 차로 여러 번 지나간 적도 있고 지도상으로 어디에 있는지 찍을 수도 있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그런 동네. 나는 그저 달렸을 뿐인데 전혀 다른 곳으로 여행을 온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 러닝 지도의 안개가 걷힌다. 새로운 동네를 만난다. 미지의 공간이었던 동네 근방의 이미지가 확장된다. 이건 마치 게임 화면에 나오는 지도 같다. 자동차나 자전거 같은 이동수단에 비하면 속도는 느릴지언정 내 두 발이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새로운 공간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초보 러너인 나는 동네에서도 탐험해야 할 곳이 많다. 가까운 옆 동네로는 어떤 길이 이어져 있는지, 근처에 산책 코스로 유명하다는 언덕길은 달리기에 적합한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달리기 좋은 곳으로 차를 타고 이동해서 진짜 소풍 같은 러닝을 할 수도 있겠지. 게다가 나에게는 마의 구간을 넘어서 미지의 세계를 만나고 러닝 지도를 확장한다는 궁극의 목표가 있다. 달리기를 통해 달성할 퀘스트가 이렇게 많다니, 얼마나 즐거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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