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금물이거늘
달리다 보면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이상하게 몸이 가벼운 날. 내가 의도한 것도 아닌데 평소보다 빠른 페이스로 달릴 수 있는 날. 그럴 때는 꾸준히 달린 성과가 나타나는 것인가 싶은 뿌듯한 마음에 열심히 달리게 된다.
집에 돌아가는 길, 남은 2킬로미터.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아서 이제 그만 페이스를 늦출까 싶었지만 시계를 보니 이대로면 개인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데이터를 통해 직감이 말했다. 내일 다시 달린다 해도 이 기록은 한동안 나오지 못하리라. 언제 또 이렇게 잘 달리는 날이 오겠어. 그렇게 나는 욕심을 냈다. 스스로를 북돋는 응원과 무리한 욕심은 한 끗 차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기분이 좋은 걸 어쩌란 말이오~
며칠은 괜찮았던 것도 같다. 아닌가, 다음날부터 무언가 잘못됐던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하려니 정확한 시점은 알 수가 없다. 그 후로도 며칠을 달렸으니까. 어쨌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아리 안쪽에서 은근한 통증이 괴롭히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달리다 보면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일상에서까지 따라다니는 걸 보면 쉽게 볼 녀석은 아님이 분명했다. 오래 지속되는 통증은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이 녀석 때문에 다리가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게 뭐람.
인터넷으로 증상을 찾아보니 아무래도 신스프린트나 경골과로성골막염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러너에게 흔하단다. 달리기로 인한 부상이라니, 이렇게 진정한 러너로 거듭나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과로성...? 부상당할 정도로 과한 운동량이었나? 평소와 다름없었는데. 그 정도는 절대 아니었는데. 그저 남들만큼만 달리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억울할 수가!
서둘러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시작했지만 현대의학도 하루이틀 안에 낫게 하는 기적을 행하지는 못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어서 조깅을 하면 어김없이 존재를 드러내어 나를 좌절시키는 너란 통증. 그리고 다음날 시작되는 후회와 치료의 반복. 3주 정도 지났을 땐 이러다 고질병이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역시 먼저 겪은 사람들이 휴식을 외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일주일이라도 완전히 달리지 않아야 했다. 달리기를 ‘포기’하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의도적인 휴식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단 하루를 달리지 않더라도 내 의지대로 쉬는 것과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매 순간 종아리 상태를 확인하면서 ‘이 정도면 달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의 탈을 쓴 유혹과 싸우는 일이 어찌나 힘들던지. 혹시라도 부상이 지속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짧은 거리라도 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심지어 날이 풀리고 햇살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바람이라도 살랑살랑 부는 날에는 여지없이 달리고 싶은 충동이 한껏 올라왔다. 마음이 조급했다. 왜 하필 이 시기에 부상이 찾아온 걸까. 야속하다. 하지만 누굴 탓하리. 다 내 하체 근력이 약한 탓이지.
잃어봐야 소중한 걸 깨닫는 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얼추 다 나은 상태에서 슬슬 달리기 시작했을 때의 그 감격은 절대 잊을 수가 없다. 고작 이 정도의 부상으로 오버하는 것 같아 민망하지만, 부상을 겪으면서 달리고 있는 순간 자체가 즐거워졌다. 그전까지 경험했던 페이스, 거리 등의 기록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안 아프면 그걸로 장땡인 것이다. 물론 달리다 보면 분명히 욕심은 생길 테지만, 한 번 겪어본 부상의 기억은 스스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조절해 줄 거라 믿는다. 뭣이 중요한가. 계속 달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을.
봄을 맞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더 이상의 부상은 싫고 달리기를 못하는 건 더더욱 싫으니까. 그전까지 어떻게 달렸던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달리기로. 달리다가 힘들면 걷고 그러다 다시 힘을 내서 달리면서 회복하고 싶다. 천천히 달리면 더 멀리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