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아직 얼라다

달릴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by 농띠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는 주로 퇴근 후 저녁 시간에 달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너무 많다. 늦은 저녁이면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었지만 소용없었다. 한여름의 더위는 사람들을 물가로 부르는 법이고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활동성이 올라가는 법이다(겨울은 비교적 덜 하긴 해도 안에만 있으면 찌뿌둥하다고 나온다).


그래서 주말은 아침에 달려보기로 했다. 아침 달리기를 위해 평일처럼 일찍 일어나려니 늦잠의 기회를 포기하는 셈이라 살짝 속이 쓰렸지만 어쩔 수 있나. 오후보다는 사람이 적을 거라 기대하며 나가는 수밖에.


어느 날은 해가 뜨기도 전인 5시 30분에 나가봤다. 사방이 칠흑같이 캄캄했다. 주위는 한적하고 귓가에 들리는 음악도 조용하다. 딱 마음에 든다.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없겠지. 천천히 달리기 시작하는데 맞은편에서 중년 부부가 힘차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안 가 또 다른 동네 주민이 걸어오는 게 보인다. 아니, 여러분. 지금 해뜨기 전인데요?



나도 멋진 시니어가 될 거야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사람이 없는 길을 달려본 기억이 없다. 언제 나가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비중이 달라지긴 하지만 보통 60%는 걷기를 하고 10%는 강아지 산책이 목적이라 느긋하게 서있고 10%는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단련 중이고 10%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가운데, 남은 10%가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언뜻 봐도 대부분 연령대가 나보다 많아 보인다. 분명히 요즘 2030 사이에서 운동이 유행이라고 했는데 이 동네 사는 젊은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직장에서 야근하느라 바깥을 나올 시간이 없는 것일까. 다들 열심히 사는 세상이니 꽤 일리 있어 보인다.


여하튼 그중에서도 거의 새벽과 다름없는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중년이다. 여기서 중년이라 함은 40부터 60이라고 해야 할까. 내 눈에는 대충 그 연령대로 보이니 실제로는 7080이라고 할지라도 기쁘게 넘겨주시길. 중년이라니, 이 동네에서 가장 활동적인 미라클 모닝을 보내고 있는 건 바로 그들인 것이다.


중년은 단순히 걷기 운동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주말 아침에 하천을 달리면 매번 코트에서 여럿이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분들이 보이고, 하루이틀 한 게 아니라는 걸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각종 운동기구를 멋들어지게 이용하면서 몸을 단련하는 분들도 있다. 얼마짜리인지 모를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중 내 눈에 띄는 건 단연코 달리는 사람들이다. 달리는 사람들은 걷는 사람에 비하면 확연히 적다.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자신만의 속도로 묵묵히 달려 나가는 사람들도 있고, 조금씩 걷다가 달리는 일명 걷뛰를 반복하는 사람들도 있다.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남녀비율로 따지면 8:2 정도 되는 것 같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비교적 여성 러너가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 다들 어디 계시나요~ 존재만으로도 제게 힘을 주시는데 말이죠.


우연히 유튜브를 통해 일본 시니어 대회에 출전해서 열심히 달리는 90대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최근에는 미국의 98세 할머니가 대회에 출전해서 5킬로미터를 완주했다는 기사도 봤다. 속도야 어떻든 그 연세에 달리기라는 고강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나는 과연 그때까지 달릴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알아서 몸을 사리지는 않을까? 괜히 나이를 핑계로 미리 내 한계를 지어버리는 건 아닐까?


물론 젊을 때의 기량과는 현저히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오래오래 달리고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나이 많은 분들이 달리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자극이 된다. 그래, 나도 저렇게 계속 달릴 수 있을 거야. 함께 달리고 있는 이상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이름 모를 낯선 이가 아니라 롤모델이자 어쩌면 미래의 나이기도 한 셈이다.


구기 운동에서 구력을 따지듯이 달리기에서는 러닝 마일리지가 중요한 것 같다. 많이들 하는 말이,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리가 늘어나고 페이스가 빨라진다고 하던데 앞으로 꾸준히 달리기만 하면 나도 언젠가는 좋은 기량을 가져볼 수 있다는 소식으로 들린다. 나름 희망적이지 않은가! 나는 아직 달린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 러너라서 원하는 만큼의 기록이 나오려면 한참을 달려야 할 것 같다. 얼마나 더 달려야 하나 싶어서 막막하다가도 좋아질 날이 많이 남아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의욕이 샘솟는다.


가끔 답답해질 때마다 항상 초보 러너임을 상기한다. 부상을 겪고 난 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얼라고 제대로 달리려면 많은 시간 동안 연습해야 한다고 되뇌인다. 잘 달리는 날이 있고 힘들게 달리는 날이 있고, 차근차근 달리다 보면 어느새 멋진 중년이 되어있겠지. 어쩌면 나도 90살까지 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웰에이징(Well-Aging)이 대단한 게 아니다. 하루하루 잘 살면 그게 잘 늙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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