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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철 Apr 06. 2024

팔레스타인 영토 변천사 (6) 유대교와 기독교의 운명

예수가 활약하던 시기는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고 700년이 지난 후였다. 젖과 꿀이 흐른다던 가나안 땅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로 이어지는 대제국들의 침략으로 짓밟혀왔고, 그 속에서 신음하던 유대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언젠가 나타날 메시아였다. 그 옛날의 모세처럼 강력한 구세주가 나와 자신들을 도탄에서 구해주기만을 오랜 세월 애타게 기다려왔다. 그런 갈망 끝에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눈에는 선지자답지가 않았다. 시골 동네 목수 아들이라니 출신도 비천했고, 이방인 대중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그의 행태가 자신들이 금과옥조로 여겨온 유대교 율법과도 거리가 너무 멀었다.

 

▲ 유대인 영구 추방 

 

결국은 이단으로 몰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며 잊혀지고 100년이 지났다. 로마제국의 압제에 시달리던 유대인들 앞에 바르 코크바라는 또 다른 선지지가 등장한다. 자신들을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구해줄 진정한 메시아로 믿은 유대인들은 AD 132년 그를 중심으로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바르 코크바의 난’으로도 불리는 제3차 유대-로마 전쟁의 결과 유대인들은 수십만이 몰살됨과 함께 예루살렘으로부터 영구 추방 조치를 당한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디아스포라(Diaspora)가 시작된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 땅의 지명 또한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팔레스타인’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3차 유대인 반란에서 기독교도 유대인들만은 반란에 가담하기를 거부했다. 진정한 메시아는 바르 코크바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일 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대학살의 와중에서도 대부분의 유대인들과는 달리 기독교도 유대인들만은 별다른 피해 없이 온전할 수 있었는데, 이는 향후 유대인과 기독교도 사이를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 기독교의 승승장구

 

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며 떠돌이 신세가 된 것과는 반대로, 로마제국 내에서의 기독교 인구는 급격히 늘고 있었다. 예수 열두 제자와 여러 사도들의 순교를 무릅쓴 희생과 열정적인 복음 활동 때문이었다. 유일신에 충실한 기독교도들은 다신교의 로마 문화를 거부했기에 초기 한동안은 탄압의 대상이었지만 각지에서 급증하는 기독교 교세는 로마제국 통치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된 후에는 기독교가 동로마 제국의 국교로까지 선포된다. 유대인 예수가 동족에게는 버림받았지만 서방 세계로부터는 진정한 메시아로 인정받은 것이다. 또한 유대교의 오랜 성지 예루살렘은 주인이 바뀐 채 기독교의 성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반면 고향에서 쫓겨나 객지를 떠돌던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지며 증오와 탄압의 대상이 되어갔다.

 

▲ 페르시아의 침입

 

5세기 들어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비잔틴제국으로 불리던 동로마제국은 그리스와 기독교 문화를 꽃피우며 6세기 중반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에 이르러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제국은 전성기였으되 제국 지배하의 유대인들은 변함없이 암울한 처지였다. 600년 넘게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아온 것이다. 더욱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된 후부터 유대교는 철저한 이단 취급을 받았기에 유대인들의 고통과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마침내 외부로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이 그 옛날 그리스를 침공했던 것처럼 비잔틴 제국의 서방세계를 넘보며 팔레스타인 북부 변방으로 쳐들어왔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도래한 듯 기뻐 흥분하며 내부에서 호응했다. 과거 바빌론 유배 때 페르시아가 쳐들어와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준 역사 때문이었다. 유대인의 내응 덕택에 AD 614년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손쉽게 비잔틴 제국군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수 있었다. 침략자와 손잡아 승자가 된 유대인들은 기고만장해졌다. 이성을 잃은 듯 기독교들에 대한 보복을 자행했다.

 

▲ 아랍 이슬람의 등장

 

10만에 가까운 기독교도가 유대인들에 의해 살육되었으나 15년 후 상황은 역전된다. 전열을 강화한 비잔틴 제국군이 돌아와 페르시아 군을 몰아낸 것이다. 예루살렘은 재탈환되었고 다시 예전의 기독교 도시로 복원된다. 이 과정에서 다시 수많은 유대인들이 몰살되거나 추방당했다. 이렇듯 동방과 서방 두 제국의 고래 싸움 틈바구니에서 기독교인과 유대인들이 서로 죽고 죽이며 힘을 소모하는 사이, 변방인 사막지대 아라비아반도에선 새로운 세력이 아침 태양처럼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제 광대한 중동 세계는 동로마 또는 비잔틴 제국도 아니고 페르시아 제국도 아닌 신생 아랍 제국이 주인이 될 차례였다. 예루살렘을 포함한 옛 이스라엘 왕국의 땅 팔레스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대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닌 이슬람교도들의 땅으로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⑦편에 계속

라파엘로 작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례’ (로마 바티칸 박물관 라파엘로의 방 벽화)


이슬람 최대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카바 성전. 무슬림들의 성지 순례 모습 (출처. 트립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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