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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 뭐 그렇게 힘들 거 있나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아주 간단한 노하우

by 달리

사람의 체력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운동체력, 공부체력, 일체력, 독서체력, 글쓰기체력 등 분야마다 필요한 체력이 다르고 쓰이는 근육도 다르다. 개중 나에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분야, 그래서 체력도 늘 제자리인 분야는 단연 쇼핑이다. 내 쇼핑체력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저질인데, 특히 오프라인 쇼핑체력은 대략 한 시간 반을 전후로 한계가 찾아온다.


그래도 한 시간 반이면 대단하다고 말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쇼핑하는 데 삼십 분 이상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한 시간 반도 어마어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도 결혼 전엔 그랬다. 살 게 있으면 딱 그것만 사러 가서 십 분 만에 해결했다. 아무리 헤매도 삼십 분이면 끝낼 수 있었다. 옷을 살 때도 생각했던 컨셉과 비슷한 게 보이면 잠깐 고민하다가 입어보지도 않고 샀다. 본격적으로 살이 찌기 전이라 상의는 100, 하의는 허리 30으로 사서 기장만 수선하면 되던 시절이었다.


이제 그런 심플한 쇼핑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 그런 걸 해봤는지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꿈이 아니었을까. 결혼 후 내 쇼핑 패턴은 과장 조금 보태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해도 만큼 달라졌다. 아내는 쇼핑몰을 둘러보는 데만 한 시간 이상 써도 지치지 않는 엄청난 쇼핑체력의 소유자다. 사실 이전에는 쇼핑할 때 '둘러본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아이쇼핑이니, 브라우징니 하는 행위는 단지 드라마 속 대사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현실에서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내를 보며 처음 알았다.


하루는 아내를 따라다니며 두 시간 정도 쇼핑을 했는데 아무것도 안 사고 돌아온 적이 있다. 내 입장에선 노력 대비 효용이 0에 수렴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집에서 반나절 낮잠을 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결과를 가져는데 다리는 왜 이렇게 아프고 얼굴에 개기름은 왜 이렇게 반들반들하고 배는 또 왜 이렇게 고픈 것인가. 예민해진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한껏 부루퉁한 얼굴로 심술을 부렸다. 눈치를 보던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기 나랑 같이 쇼핑 가기 싫어? 왜 그렇게 짜증을 내."

"어차피 내 말 듣지도 않는데 뭐하러 쇼핑을 같이 가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서로 봐주고 잘 어울리는지 얘기도 해주면 좋잖아."

"앞으로 쇼핑 시간은 최대 한 시간 반으로 정하자. 난 그 이상은 힘들어."

"어차피 골라주지도 않고 혼자 폰만 보고 있었으면서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래."

"그게 다 힘들어서 그러는 거야. 두 시간을 넘게 쇼핑해도 빈손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안 힘들어."


내가 주장한 '한 시간 반 룰'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쇼핑할 때마다 아내는 나에게 꼭 달달한 무언가를 사 먹이는 습관이 생겼다. 그걸로도 모자란다 싶을 때면 내 옷이나 물건을 먼저 몇 개쯤 사기도 한다. 그러면 나도 왠지 미안한 마음에 더 힘을 내게 된다. 별 거 아닌 노하우 같지만 달달한 걸 먹었을 때와 안 먹었을 때 쇼핑체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내 경우 그게 특히 예민해서 기분 좋게 출발했다가도 쇼핑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가면 지치게 마련인데, 중간에 커피나 토스트, 츄러스, 호떡, 크티, 아이스크림 같은 걸 연료처럼 넣어주면 두 시간까지는 버틸 만해진다. 몇 번 반복하면 '쇼핑=달달한 음식'이란 공식이 자연스럽게 조건화되면서 거의 기계적인 수준의 노하우로 발전하는 것이다. 혹시 스타일의 차이로 쇼핑을 따로 하게 된 부부가 있다면 이 방법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달달한 간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역시 나를 이해하는 아내의 마음이다. 쇼핑이 길어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는 내 생체리듬을 부여잡고 연료를 들이붓는 아내의 비단결 같은 마음씨가 있기 때문에 긴 쇼핑도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아니면 쇼핑은 원래 즐거운 거라고 그새 세뇌를 당했든지. 어느 쪽이든 파트너의 쇼핑 스타일에 보조를 맞추느라 고생하는 모든 부부에게 이 글이 꽤 유용한 노하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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