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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06. 2022

좋은 공동체란

신디 더비, 『두 마리 당장 빠져!』, 천개의바람, 2021

* 쪽수: 48



매표소 앞에 새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새들은 표를 사서 앙상한 나뭇가지에 오릅니다. 한쪽에는 감시탑이 있고, 그 위에는 '지킴새' 한 마리가 앉아 나무에 오르는 새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새들이 나무에 발을 디딜 때마다 감시탑 전광판의 숫자가 1씩 올라갑니다. 이 나무의 정원은 100마리입니다.


나무에 오르는 새들은 가지각색의 어울림으로 묘사됩니다. 반면 감시탑의 지킴새는 검은색과 회색으로만 표현되죠. 이것은 물론 현실 속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무채색의 지킴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금지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이용하는 새들은 둥지 만들기 금지, 휴식 금지, 벌레 금지와 같이 새의 본질적인 습성을 무시하는 규칙을 계속해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규칙들은 임의적이며 또한 자의적입니다. 지킴새는 다른 새들의 개성을 무시하고 무언가를 일률적으로 금지할 수 있는 권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권력은 언제나 그것이 정당한지 여부에 선행하여 작동하죠.


그림책 『두 마리 당장 빠져!』는 놀이를 통해 성장하는 어린이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육에 유난히 폐쇄적인 관점을 가진 일부 어른만을 향한 비판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 어린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설계되는 무신경한 사회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첫 번째 새가 나무에 오를 때 적용되는 최초의 규칙이 다름 아닌 '뛰기 금지'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다음 규칙은 '소리 지르기 금지'인데, 어쩐지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처음에 나무는 잎사귀 하나 없이 메말라 있습니다.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던 나무를 색색으로 풍성하게 물들이는 것은 나무에 오른 새들입니다. 적어도 새들이 자기 고유의 색깔을 가지고 머무는 동안에 나무는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이죠. 나무의 존재 의의는 뭔가를 금지하는 규칙이나 지킴새가 아니라 가지에 앉아 있는 작은 새들에게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작은 새(어린이)는 활기와 역동성, 생명력을 대변하게 되지요. 생명력이 가득한 나무에는 곧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새로운 생명, 즉 아기 새가 태어나는 거예요.


정원이 가득 차 입장이 금지된 이 나무에서 아기 새 두 마리가 태어납니다. 이전에 입장한 새 중에 알을 들고 온 새가 있었던 거예요. 새가 알을 깨고 태어나는 순간 감시탑 전광판의 숫자가 102로 붉게 변합니다. 여기서 붉은색은 정원 초과라는 불안정한 상태를 견딜 수 없는 지킴새의 내면을 나타내는 듯하죠. 지킴새는 다급하게 소리칩니다. "두 마리는 빠져!!!"


공동체의 규칙은 그 구성원을 안전하고 이롭게 하는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필요하고 합당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모든 규칙이 처음부터 완전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최소한 그 역할을 분명히 인식하고 세워지는 규칙과 그렇지 않은 규칙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겠죠. 심지어 같은 규칙이라고 해도 그렇습니다. 학교를 예로 들어볼까요. '실내에서 뛰기 금지'는 모두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규칙입니다. 어린이의 움직임 욕구를 존중하는 것과는 분리하여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죠. 그리고 대다수의 어린이는 그 사실을 이미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규칙을 공동의 약속으로 세울 수 있는 거예요. 규칙은 이렇듯 상호 간의 약속일 때에만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방향도 이런 것이겠죠. 우리에겐 어린이들과 보다 자주, 오래 대화하며 새로운 약속들을 만들어 갈 책임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정원이 100마리인 나무에 102마리가 앉았으니 두 마리는 빠져야 할 텐데, 이 어려운 문제를 새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규칙이 누군가를 배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포용하는 근거로 작동할 때에 그 공동체가 더 아름답게 빛난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렴풋이 답이 보이기도 합니다. 결국 '좋은 공동체'란 더 많은 어린이의 행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곳에만 간신히 따르는 이름이지요.


출처 - 『두 마리 당장 빠져!』 책 소개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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