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산책 | 세 번째 이야기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마스다 미리 <주말엔 숲으로> 중에서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던데, 가만히 보면 나는 그 말에 참으로 충실하게도 툭하면 걷거나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였다.
집과 학교가 가까워 늘 걸어 다녔던 초・ 중학교 시절과, 버스를 타고 다녔으나 학교가 언덕 꼭대기에 있는 관계로 날마다 등산하는 기분으로 걸어 다녔던 고등학교 시절은 패스하고, 남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툭하면 걸어 다녔던 대학시절 이야기부터 해볼까.
내가 다닌 대학교에서 당시 집까지는 버스로 1시간, 도보로는 4시간이나 걸리는 꽤나 먼 거리. 수업을 마치고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나는 항상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를 들으며 무작정 집을 향해 걸었다. 물론 걸어서 집까지 간 건 아니고(설마요;;) 한두 시간 걷다가 문득 걷기 싫어지면 그제야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었다.
왜 그렇게 걷고 또 걸었는지. 노래를 듣고 있었고, 가끔은 그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면서 씩씩하게 걸었지만, 머릿속에서는 우정, 연애, 취업, 미래 등 온갖 생각들이 웽웽거리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막막하고 가난한 청춘, 딱히 결론을 낼 수도 없는 고민을 함께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친구가 바로 걷기였던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시간에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싶지만. ㅎㅎ
아무튼 아무리 걷고 걸어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던 시절 이야기다.
그다음으로 내가 참 많이도 걸어 다녔던 때는 졸업을 하고 여기저기 잠시 취업했다가 그만둔 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집 근처 대학교 도서관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도보로 약 1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날씨와 상관없이 항상 공부를 마치면 집까지 꼬박 걸어갔더랬다. 온종일 공부하고 또 졸기도 하느라고 ;;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으니 집까지 걸어가며 운동이나 하자, 라는 마음이었지만 솔직히 차비를 아끼려는 이유도 있었다. 점심도 엄마표 반찬을 넣은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커피도 100원인가 했던 자판기 커피로 해결하던 백수였으니까.(너무 ‘라떼는’인가? ㅎㅎ)
여차여차해서 취업을 한 뒤부터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혼자서 그렇게 등산을 다녔다. 그냥 가까운 산을 오른 건 아니고, 기차를 타고 가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가서야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 한 시간 반 정도 걷는 대구 팔공산 코스였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마다 그 귀찮음을 마다하지 않고 그곳으로 간 건, 실은 '집구석'을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우리 집에는 남들에게는 말 못 할 아픈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집에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던 것. 가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절에서 틀어놓은 ‘약사여래불’이란 염불을 들으면서 힘겹게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오면 우울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사라지곤 했다.
암튼 그렇게 툭하면 걷는 걸 좋아했던 나에게도 ‘걷기 휴식기’ 같은 때가 있었으니, 바로 아이들을 키울 때였다. 엄마의 손길이 없으면 안 되는 아기와 잠시도 한눈을 팔면 안 되는 아이를 한창 돌볼 때는 혼자 외출할 일도 별로 없었거니와, 다 같이 외출할라치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차 없이는 엄두가 나질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애들이 커서 점점 엄마가 필요 없어지고, 남편도 직장 일로 더욱 바빠지고, 자꾸만 여기저기 튀어나오는 나잇살 때문에 다이어트가 필요해지면서 나는 다시 걷는 인간으로 돌아왔다. 젊은 시절 생각해서 호기롭게 등산을 시작했다가 힘들고 지루해서 그만두기를 반복하고, 또 밤 산책이 좋다 해서 저녁 식사 후 밤길을 나섰다가 어둑어둑한 골목도 무섭고 취한 행인도 무섭고 벌레도 무서워서 그만두기를 반복하면서 말이다.(그래도 퇴근한 보호자와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보는 즐거움은 쏠쏠했음)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도서관 산책에 나서고 있고.
얼마 전 이런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40세 이후 성인남녀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3가지 있는데, 첫 번째는 활동 제한이고 그다음이 걷기와 스트레스라는 뉴스. 활동 제한이 있거나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걷기를 할 수 있으면 삶의 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약봉지를 들고 지팡이에 의지해 다니는 대신, 책이 든 가방을 들고 꼿꼿한 자세로 도서관을 다니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인 나로서는 100퍼센트 공감되는 뉴스였다.
앞으로도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걷고 또 걸을 테지. 아니, 딱히 이유나 목적지가 없어도 걷고 있을 것 같다. 그게 뭐 중요한가?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축복이니 말이다. 태양이 빛나고 있다면 무조건 밖에 나가 걸으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데, 태양이 빛나지 않는 순간까지도 나는 늘 걷는 사람이고 싶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