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오래간만에 번역 에이전시로부터 연락을 받아서 출판사의 최종 인쇄 파일을 검토하는 작업을 했다. 그 책을 번역한 지가 7~8개월쯤 되었나? 소중한 내 역서가 또 한 권 탄생하겠구나 하는 기쁨도 잠시, 이게 대체 얼마 만의 본업이야 하는 반가움에 번역도 아닌 검토를 그토록 열심히 붙잡고 앉아있는 내 모습이 왠지 측은하게 느껴졌다.
끊김 없이 번역 일을 하는 번역가들이 정말로 부럽다. 나도 날마다 카페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랑 노트북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며 '오늘도 열일 중' '마감이 코앞’ ‘어제도 밤샘’ '다음 원서 벌써 대기 중' 뭐 이런 자랑을 해보고 싶다고요. ㅜ (남편이 이런 궁상맞은 이야기 쓰지 말랬는데...)
하도 일이 없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든다.
요즘은 트라도스 같은 번역툴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번역 일을 좀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데 지금이라도 그걸 사서 배워야 하나 싶고, 또 출판물보다는 웹툰, 웹 소설, 웹드라마 쪽에 일거리가 좀 더 많다고 하니 거길 도전해 봐야 하나 싶고. 그러면서도 예전만큼 번역 공부를 파이팅 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호기롭게 새로운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려 샘플 테스트를 받아오는 것도 아닌 내가 무능력하고 게으른 것 같아 밉다. 그만큼 내가 덜 간절한 걸까??? 근데 왜 맨날 도서관에 가면 번역가들이 쓴 책 앞을 서성거리는 걸까? 그들의 번역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래, 맞아, 하며 혼자 맞장구치고 있는 걸까? 왜 특별한 번역 에피소드도 없으면서 '아직은 번역작업실' 매거진에 이렇게 글을 끄적이고 있는 걸까?
번역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가 특정 언어와 언제 처음 사랑에 빠졌는지, 문학이나 과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기쁨을 길어내는 사람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책상 위에 책이 놓여 있어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고, 쓰는 행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단어 하나를 바꾸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나 이외에도 또 있다는 것은 큰 위로였으니까.
- 노지양. 홍한별 <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중에서
그나저나 이번에 검토 결과를 번역 에이전시에 보내면서 요즘은 의뢰도 통 없으시다고 아주아주 소심하게 툴툴거렸더니, 에이전시 담당자가 이런 답장을 보내왔다.
'최근 출판업계에서 중국 도서 오퍼율이 이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상태예요.
하반기부터는 좋아진다고 하니까 좋은 책으로 역자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넵, 소녀 기다리고 있겠사옵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