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번잡한 시내를 피해서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골라 약속을 잡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친구들을 보려고 오래간만에 서면(부산) 시내에 약속을 잡았다. 모두에게 공평한 중간지점이기도 했고, 우리가 못 가본 사이 근사한 카페, 편집숍, 술집들이 엄청나게 생겼다는 서면 옆 전포동 카페거리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정대로 점심때쯤 만나 핫한 곳에서 핫한 밥과 핫한 디저트를 먹으며 긴 수다를 떨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내 과하게 들떠 있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이기도 했지만, 평소와 달리 너무 많은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그렇게 젊은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일이 거의 없다. 일단 내가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내가 주로 다니는 장소들이 젊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도 아닌 탓이겠지.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확실히 부산에 젊은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는 느낌도 든다. 당장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그렇고, 식당이나 카페에 가도 아이들과 젊은이들보다는 나이 든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우리 집 근처에는 초등학교와 전문대학이 있지만, 등하교 시간대에만 학교 주변이 학생들로 잠깐 붐비는 듯하다. 심지어 그때도 초등학교 앞에는 학생보다 학생을 데려다주거나 데리러 온 어른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이는. ㅎㅎ 또 우리 아파트는 연식이 좀 있어서 그런가,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를 좀처럼 보기 힘들다. 언젠가 친정아버지가 “요즘은 아기들을 보려면 돈 주고 봐야 해.”와 같은 농담을 친구분들과 주고받는다고 하셨는데, 마냥 웃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오죽하면 ‘부산이 사라지고 있다. 광역시 첫 소멸 위험지역’과 같은 무시무시한 타이틀이 붙은 신문 기사까지 나올까. 명색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 광역시 중 처음으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것도 모자라 소멸될 지경이라니.
아무튼 그날 나의 과한 들뜸은 모임을 끝내고 어둠이 내린 주말 저녁 서면 길거리로 다시 나왔을 때 절정에 달했다. 대체 어디들 있다가 쏟아져 나왔는지 모르겠는 젊은이들이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이 그 넓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개성을 뽐내며 파도처럼 거리 위를 넘실대고 있던 젊은이들. 여기가 내가 알던 부산 맞아?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미어캣처럼 목을 길게 빼고 거리를 내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그 거리는 늘 그렇게 젊은이들로 넘쳐났었을 것이다. 먼 옛날 젊고 가난했던 내가 취업정보센터나 입시생, 취준생을 위한 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그곳을 터덜터덜 돌아다녔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말이다. 막막한 걸음으로 한숨을 내뿜으며 다녔던 그때의 내 눈에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막막한 청춘들이 참으로 많이 보였다. 졸음을 참아가며 학원 불빛을 밝히던 청춘들, 아르바이트를 하고 길거리 음식으로 겨우 저녁을 해결하던 청춘들…. 그런 청춘들의 속도 모르고 “참 좋을 때다!”라는 말을 쉽게도 내뱉던 어른들이 얄밉기만 했었는데….
같은 거리에 서서 젊은이들이 넘쳐난다는 이유만으로 유난스럽게 반가워하고 들떠버린 건, 부산이 나이 든 탓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나이 든 탓일까?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