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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큰 Apr 15. 2021

노안이 아니라고요?


최근 나는 피부가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다. 세안 방법을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바꾼 후였다. (중략) 기뻐하고 있었는데, 불과 얼마 전, 외출하기 전에 문득 자세히 보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돋보기를 쓰고 거울을 봤다. 
“…….”
전혀, 피부는 깨끗해지지 않았다. 깨끗하게 보인 이유는 노안 덕분에 열린 모공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무레 요코 <그렇게 중년이 된다> 중에서


나는 참 시력이 좋다. 시력을 재면 늘 높게 나오는데, 거짓말 엄청 보태어 몽골인 저리 가라여서, 안경 없이 1.2는 가뿐히 나오고 1.5도 수시로 나온다. 시력을 재시는 분이 처음에 별생각 없이 0.5부터 시작했다가 내가 0.6 0.7 0.8 0.9 1.0… 거침없이 쭉쭉 읽어 내려가면, 다른 쪽 눈을 잴 때는 아예 1.0부터 시작하곤 했다.


그런 나도 학창 시절에는 안경이 너무 쓰고 싶어서 부모에게 억지로 떼를 써서 안경을 맞춘 기억이 있다. 시력 검사에서 한쪽 눈이 0.8 정도 나오자(다른 쪽 눈은 1.2였지 아마 ㅎㅎ) 짝눈이면 좋은 쪽 눈도 금방 따라 나빠질 수 있다는 말을 앞세워 기어코 부모님께 안경을 얻어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안경을 갖게 된 후에는 귀찮고 무거워서 안 쓸 때가 많았다. 대학을 가서 화장을 시작하고 미모에 신경을 쓰게 된 후로는 아예 안경을 모셔두었는데, 시력이 신기하게 다시 좋아졌다.


그 후로 20여 년 넘게 나는 안경 없이 편히 잘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가까운 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생각했다. 노안이구나, 내게도 드디어 노안이 찾아왔구나…. 이른 나이에 돋보기를 쓰셨던 친정아버지나 원래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친정 언니와 남동생 모두 진작부터 노안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뭐 좀 불편하긴 해도 나이 탓 세월 탓하며 그냥저냥 지냈다. 


그러다 요 근래 번역하고, 독서하고, 넷플릭스서 드라마 정주행 하는 데 눈을 많이 혹사시켰더니, 어찌나 눈이 따갑고 아프던지. 보통은 밤에 그렇게 아프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곤 했는데, 아침에 눈을 떠도 여전히 따갑고 아팠다. 게다가 전자책의 글자를 아무리 크게 키워도 뭔가 어른어른 흐릿하게 보이는…. 한참 보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결국 안과에 갔다. 이참에 돋보기 안경 하나 장만하려고.

그런데 검사 결과 그간 날 괴롭힌 건… 뜻밖에도 노안 아닌 난시였다! 원시성 난시! 그래서 시력은 좋게 나오지만 장시간 가까운 무언가를 보려고 용을 쓰면 눈이 많이 피로해지고 머리도 어지러웠던 거란다. 

아이고, 나이가 들어 어깨가 아프면 무조건 오십견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던데, 나야말로 나이가 들어 가까운 게 안 보이면 무조건 노안이라고 생각했지 뭐다냐.


아무튼 의사 샘은 내게 안경 처방전을 써주시면서, 일단 예쁜 안경 하나 맞춘 다음 가까운 것을 오래 봐야 할 때 꼭꼭 써주고 중간중간 눈을 자주 깜박거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와중에도 ‘노안보다 난시’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속으로 ‘오예, 나 아직 그렇게 안 늙었어!’라고 생각하며 혼자 기분 좋아했던 나란 여자 ㅋㅋ, 깨발랄하게 안과를 나왔다.


그나저나 앞으로 내가 동글동글한 새 안경 쓰고 앉아서 커다란 눈을 깜박깜박거리며 쳐다봐도 뭐라 그러지 마요. 그건 절대 귀여운 척하는 게 아니라 단지 눈 건강 때문이니까요. 풉! n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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