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느낄 여유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있다.
참 행복하다. 이 순간 더 바랄 게 없다. 천국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고, 쏟아지는 햇살에 수영장물이 반짝인다. 남편은 그 안에서 수영 중이다.
걱정되는 것 하나 없이 편안하게 이 시간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이런 마음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내 나이에도 감사한다. 젊은 날엔 느껴보지 못한 여유로움이다.
치앙마이에서 6주 살기 중 3분의2가 지났다. 이제 슬슬 갈 준비를 해야된다고 생각하니 , 지금의 평화로움이 , 지금의 여유로움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베트남 다낭 2주, 방콕 열흘 여행 후에 파타야에서 한 달 살고 치앙마이로 왔다. 파타야에서는 이렇게 까지 좋다고 느끼지 못했다.
많은사람들이 치앙마이를 한달살기 장소로 칭송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나보다. 특별한 기운이라도 있는 걸까 ?
우리가 치앙마이를 선택한 데는 큰 이유는 없다. 집 구하기가 쉽다는것, 물가가 싸다는 것이 제일 큰 이유다. 추위를 피해 더운 나라에서 겨울을 나려고 동남아를 알아 보았는데, 치앙마이가 지내기 제일 쾌적할것 같았다.
파타야에서 지낸 콘도는 사실 좀 좁고, 시설도 불편한 건 없지만 좀 부족함이 느껴졌다. 둘 다 에어비앤비에서 구했는데, 치앙마이에 와보니 콘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지은지 얼마 안된 새 건물인데다가 치앙마이에서는 꽤 고급으로 지은 집인것 같다.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을뿐 아니라 리조트처럼 큰 수영장이 있다. 치앙마이에서 제일 큰 수영장이라는 말도 있을만큼 크기도 크고, 관리도 잘 되어 물이 항상 깨끗하다.
남편은 하루에 2번씩 수영을 즐긴다.
올 때는 한 달만 예약하고 왔다가 며칠만에 2주를 더 연장해서 6주를 계약했다. 장기투숙이라 할인을 많이 받아서, 6주에 91만원이 조금 안된다. 한 달에 30~40만원 하는 데도 있다고 하는데, 좀 비싸도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든다. 침실이 따로 있는 집인데 하루 2만원이면 사실 호텔에 비하면 많이 싸다.
다낭과 방콕에서 사먹는 음식에 질려서 여기선 거의 집에서 해먹으며 지낸다. 한국에서 쉽게볼 수 없는 채소들 사서 요리하는 즐거움도 있고, 열대과일도 싸고, 신기한 식재료들 구경하고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잘 먹고 지내도 워낙 물가가 싸서 한달 생활비가 50만원이 채 안들었다. 물론 생활비는 거의가 다 식비이다. 전에 치앙마이에 와 봤기때문에 따로 관광에 돈 쓰는 일은 없다. 그저 시내 걸어 다니며 분위기를 즐기거나, 장보러 다니거나 한다. 젊은이들처럼 카페에 가거나 클럽이나 바에 가는 일도 없으니, 가끔 30바트짜리 생과일쥬스 사먹는게 호사다. 저녁식사에 곁들이는 맥주 한 병 또한 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더 바랄 게 무어 있겠는가.
여행다니면 매일 뭘 보러 나가야할 것 같은 강박에 쫓기는 느낌인데, 여기서 산다고 생각하니 뭘 해야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좋다.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 것이 너무나 좋다. 하지만 동네만 나가도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사나 살펴볼 것 많아서 좋고, 마트만 가도 여기 사람들은 뭘 먹고사나 볼 게 많아 좋고, 시장가면 사람구경, 물건구경 에 심심하지 않다.
우리 세대는 젊은시절에 외국여행이 거의 불가능 했다.지금 젊은이들처럼 자유여행, 배낭여행은 꿈도 못 꾸어봤다. 어쩌면 그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을 수도 있다.
나이를 먹고서라도 이렇게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니 나이가 많아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풍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언제까지 부부가 같이 건강하게 이렇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르니, 한 순간 한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이 남은 우리 생에서 가장 젊은 순간이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은걸 하며 살자.
늙었기 때문에 못하는 건 없다.
내 스승님은 80세 넘어서 불어를 배우셨고, 90세 넘어서도 매일 한 편씩 영시를 번역하셨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시작하자.
우리에게 내일은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