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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할머니 Jan 17. 2019

어쩌다  미니멀 라이프ㅡ파타야 한 달 살기

강제된,  그러나 기꺼이 받아들인 간소한 살림

파타야에서 요즘 유행하는 한달살이를 시작했다.

유행을 따라가는 건 질색이지만 , 한 달을 렌트하는 게 경제적이어서 할 수없이 한 달살이가 되었다.

에어비앤비에서 구한 이 집은 한 달을 빌리면 30퍼센트 할인이 되었다.

의외로  태국에서 주방 있는 아파트를 찾기가 힘들었다.  주방이 있다 해도 싱크대만 있거나  전기주전자, 전자레인지만 있는 곳이 많았다.

찾다 찾다 이 집이 여러 조건에 적당해서, 쿡탑이 없지만  전기밥솥이나 전기레인지 1구짜리를 우리가 사기로 하고 , 이 집을 예약했다.


작지만 거실에 소파도 있고 , 주방사진을 보니 싱크도 있고, 그릇도 있고 , 냉장고도 아주 작은 게 아니라 쓸만하겠다 싶었다. 전자레인지가 안 보여서 주인에게 메일로 문의하니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약한 건데, 집에 들어와 보니 우리가  간과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에어비앤비 이용이 처음이라 미처 챙겨보지 못한 우리 잘못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방이 있으니 식탁과 의자가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없다. 뭐 소파에서 먹으면 되지. 그런데 있다던 전자레인지도 없다. 호스트에게 항의했더니, 주문했는데 내일 가지고 온단다. 뭔가 속은 느낌이지만 기다려 봐야지.....과연 올까 했는데 약속대로 다음날 왔다.


그런데 주방 살림이 정말 단출하다.
 큰 접시 두 개, 작은 보울 두 개, 유리컵 두 개,
숟갈 두 개, 포크 두 개, 과도 하나.....이게 전부다. 어쩜 도마도 없다.냄비, 프라이팬 물론 없고, 국자, 주걱, 뒤집개, 이런 것도  없고, 우리나라 펜션 가면 당연히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내가 상상한 '주방'과 호스트가 생각한 '주방' 이란 것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태국 사람들 집에서 밥을 안 해 먹는다더니 정말 집에 주방이 없이 사는 걸까?



우리 주방 살림 전부. 이 중에 왼쪽 플라스틱 큰 보울은 내가 산 것.


이렇게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아니다. 이건 절대적인 결핍이지 미니멀 라이프가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에는 꼭 필요한 건 있어야지.


호스트에게  수건, 휴지 등 생필품을 더 요청하면서 커피잔을 부탁했더니 다음날 조그마한 커피잔 두 개와 티스푼 3개가 왔다. 큰 머그컵으로 사 주지. 요새 흔한 게 머그인데.... 어쨌든 안 사주어도 그만인데, 사 주니 고맙다.


전자레인지에 밥하는 법을 급히 검색해서,   쌀도 씻고 밥도 할 수 있는 큰 보울을 사고,  쌀을 사다가 밥을 해보았다. 조금 뜸이 덜 든 것 같지만 먹을만하다. 이것도 자꾸 하면 실력이 늘겠지. 그래서 전기밥솥 은 안 사기로 하고 , 전기레인지를 사려니까 냄비도 사야 하고 일이 커진다.  대신  전기냄비를 샀다 .

냄비도 되고 프라이팬도 될 수 있으니 유용할 것 같았다. 그런데 또 실패다. 이 냄비가 너무 성능이 좋아서 (?)  순식간에 뜨거워지고 온도조절이 안된다. 온도조절은 당연히 될 걸로 생각했는데... 그냥 ON/OFF 만 있다.    열이 너무 세서,  빵을 구우려면 금방 타버린다.

그래도 열이 세니까  수프를 끓이면 금방 끓는다. 뚜껑을 덮으면 국물이 넘쳐 주변에 다 튀어 버리지만.....  자동 온도조절도 안되는지 끝없이 끓기만 한다. 할 수없이 수동으로 옆에 지켜 앉아서 너무 끓는다 싶으면 스위치를 껐다가 켰다가 한다. 쓰다 버리고 갈거라 제일 싼 걸 샀더니 이모양이다.



아무튼 이 정도 주방 살림으로 벌써 2주일을 살았다. 닭국도 끓여먹고, 연어 데리야끼 덮밥도 해 먹고,

연어초밥도 해 먹고 , 돼지갈비찜, 닭찜,  다 해 먹는다.


양념도 최소한이다. 소금, 설탕, 간장, 후추, 식초가 전부다. 마늘 , 생강 ,파, 이런 향신료 없이, 양파 만으로 요리해도, 고기 잡내 같은 거 없이 맛있다. 데리야끼 양념도 소스를 따로 안 사고 간장에 설탕 넣고, 양파를 가늘게 채 썰어 넣고, 물 넣고 졸였더니 훌륭한 맛이 났다.


다행히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사면 무료로 BBQ를 해 주는 곳이 있어서, 돼지 등갈비, 삼겹살 구이, 닭구이를 그 자리에서 숯불에 구워주는데,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숯불향이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기름은 쪽 빠져서 아주 맛있다.


석 달 동안 우리 전 재산. 보통 등산가방 사이즈.



옷도  혹시 더 필요하면 사 입을 생각으로  몇 벌만 가지고 왔다. 오죽하면 짐도 수화물로 안 부치고, 둘이 각자 7킬로그램 배낭 하나씩만 메고 왔을까.  아파트 아래층에 코인 세탁기가  있지만 , 가지고 있는 옷을 다 넣어도 반도 안 찰 것이다. 그렇게 빨랫감을 모을 수도 없어, 매일 나오는 대로 빠니 별로 힘이 안 든다. 옷을 가져올 때도 가볍고  부피 작고 빨면 빨리 마르는 옷으로 골라서 가지고 왔는데, 그 중 반 정도는  갈 때 버리고 갈 예정이다.


이렇게 조금만 가져도 살아지는 걸 왜 그렇게 쌓아 놓고 사는지..... 지금 이렇게 생각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또 못 버리고 다 끌어안고 살아가겠지. 이렇게 되풀이하다 보면 정리할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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