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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by 윤지영




어제 짬뽕 먹다가 울어서 미안해. 내가 생각해도 내 감정이 그 타이밍에 튀어나온 게 황당해서 나도 울다가 웃어버렸어. 무슨 비련의 여주인공도 아닌데 국물을 몇 번 떠먹다가 눈물을 와락 터트렸잖아. 그 와중에도 면을 입에 욱여넣는 내가 나도 싫더라고. 배고픈 건 둘째치고 그냥 그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 그거밖에 없는 게 너무 원초적인 거 있지. 그 순간 나보다 더 당황했을 너의 눈동자가 그려진다. 거기는 테이블도 홍콩 건물처럼 다닥다닥 좁게 붙어있는 대학로 중국집이었는데 양옆 30cm 간격으로 칭따오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힙합 노래가 나오는 타이밍에 네 앞에서 눈물이 터진 거야 나는.



근데 옛날부터 그랬어. 어떤 슬픈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앞에선 울지를 못하고 회사 모니터 앞이나, 지하철 2호선 같은 생뚱맞은 곳에서 눈물을 주룩 흘리곤 했어. 왜 그런 의외의 장소에서 우는지 나도 잘 몰라. 단지 그럴 땐 일상적인 환경은 본래의 존재 이유를 상실한 채 눈물의 방의 소품이 되어주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편안한 건 있어. 아무튼 어제도 그런 일이 일어났네.



네가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는 일은 손에 꼽는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지.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인데도 조금 남겼어 우리. 나중에 물어봤을 때 너는 감기에 걸려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내려놓은 거라고 했지만,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맛이 안 느껴져도 너는 매일 많이 먹잖아.



미안해. 괜히 네가 미워서 돼지처럼 써버리고 싶었어. 나도 알아. 나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이랑 연애했던 거는 쿨하게 이해해줘야 하는 거. 내가 속상해한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니까. 그 시간 또한 지금의 너를 만든 거니까. 나도 머리로는 다 알고 책으로도 많이 읽었거든. 상대의 과거를 포용해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두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건강하고 성숙한 사랑인 거 아는데, 그냥 네가 많이 좋아했던 사람 얘기를 들으니까 네가 바람피우고 있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짬뽕 면발 먹다가 온 세상이 날 배신한 거 같아 울어버린 거야. 그렇지만 한발 늦은 이성이 풀가동을 해서 지영아,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 여긴 30cm 옆에 칭따오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는 중국집이니까 정신 차려, 하는 소리에 설득당해서 멋쩍게 웃었을 뿐.



한 시간이 지나도 내가 슬픔에 잠겨 나올 생각을 안 하니까 너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어. 그렇게 많은 꽃다발을 안겨준 사람도 내가 처음이고, 10분이라도 보려고 달려온 사람도 내가 처음이고, 결혼하자고 얘기한 사람 또한 내가 처음이라고. 이성이 통하지 않는 나를 아기 다루듯, 눈을 맞추면서 천천히 말해주었어. 그런데 거기서 또 웃긴 건 마음이 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는 거야. 나도 내가 유치해. 사랑은 다 큰 나를 아기로 만들어 여전히.



있잖아. 나야말로 너의 모든 과거를 질투해. 아무리 네가 확신을 줘도 내가 모르는 너의 과거를 알고 있는 그 사람을 질투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설령 너의 사랑을 도표화시켜서 네 과거 사람들에게 준 사랑보다 나에게 준 사랑이 월등히 많다고 해도 난 그 작은 부분도 빼앗고 싶어 할 거야. 이게 곧 질투의 힘이자 과하면 서로를 병들게 하는 파괴적인 힘이겠지. 그래도 이렇게 한 건 처음이었으니까 이해해줘.



난 말이지 네가 정성을 들이는 사람도 내가 유일했으면 좋겠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를 매일 달려오게 하는 사람도 나 하나였으면 좋겠어.



p.s 그리고 태초부터 우린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 만나기 전에 다른 사람 만난 건 네가 바람피운 거 맞잖아. 이제 안 봐줄 테니까 잘하자. 약 꼬박꼬박 먹고 얼른 감기 나아. 아까는 버스 정류장에서 붕어빵 냄새를 맡았어. 수요일엔 하나씩 입에 물고 서점엘 가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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