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

감성이 통하는 기적

by 윤지영



1.

당신은 타닥타닥 타는 캔들 심지의 낭만을, 건물 계단을 내려가다 빛에 반사되는 무지개를 만나는 마음을 아는가. 일상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필시 나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 나는 나와 같은 것을 느끼는 당신의 감성이 궁금해질 거고, 나만 아는 성수동의 멋스러움과 쌍문동을 관통하는 우이천의 생명력을 당신에게 공유하고 싶어질 것이다.


좋아하는 게 몇 가지 더 있다. 고건물이 없어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서울에 몇 안 되는 곳. 심야버스에서 고개를 똑같은 방향으로 기울고 조는 사람들. 촌스러움과 세련됨이 묘하게 공존하는 간판이 즐비한 거리. 낡은 시집. 나는 유독 그런 것에서 사랑스러움과 새로움을 발견하고는 한다. 그곳에 당신을 데려가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말할 것이고, 혹 함께하지 못한다면 사진으로라도 그 풍경을 알려주겠지. 감성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런 모습 말이야. 퇴근 길 꽉 막힌 한남대교에서 허락된 작은 위트를 알아채는 거.



2.

이번엔 감성이 통하지 않는 사이에 대해 말해보자. 이해를 돕기 위해 3년 전 일화를 말하자면.


아끼는 동생이 있다. 당시 천안에 살던 그녀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카페를 데려가고 싶어 몇 번 가본 신사동 카페로 그녀를 데려갔다. 반지하를 개조해서 만든 그곳은 노출 천정과 에폭시 바닥의 거친 느낌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다. 나 역시 그 카페에서 그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서연아. 여기 느낌 너무 좋지 않아?"

"아니 이 카페는 왜 짓다 말았어? 곧 무너질 거 같아."


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투박한 모습이 매력적인 그 카페가 나와 다른 감성을 가진 타인에게는 '곧 무너질 거 같은' 허름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음악은 무엇보다 쉽게 우리의 감성을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되어준다. 그래서 음악 취향이 맞는다는 것은 감성이 비슷하단 걸로 볼 수 있는데, 반대로 음악 취향이 맞지 않는다면 그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다. 나는 진정성 있는 가사와 동기부여가 되는 힙합을 좋아하는 편인데 상대는 통통 튀는 후크송의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면? 그런 우리가 한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해야 한다면? 내가 밤낮을 한곡 재생 모드로 듣는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의 음악도 그의 감성과 다르다면 그에겐 그때부터 그 노래가 소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같은 자세로 같은 것을 본다 해도 감성이 다르다면 온전히 충만한 기쁨이 있기가 어렵다. 감성이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동시에 축복이기도 하다.

왜?



3.

감성이 이리도 예민하고 고까운 것인데 서로 좋은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감성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귀하겠는가. 어렵게 얻은 것은 소중하기 마련이거든.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 라일락이라면서 한 송이를 꺾어서 향을 맡게 해 준 사람이 있었다. 그 후에 나 홀로 압구정 어떤 골목을 지나다가 만개한 라일락 나무를 만났더랬다. 그 아래서 괜시리 얼마간을 서성였다. 그리고 다음날 그를 만나 이야기했다.


“유진 씨가 라일락 향기를 알려주지 않았으면 전 그 골목을 지날 때 라일락 향이 진동했어도 그게 라일락 향인 줄 몰랐을 거예요. 무지하면 감상할 줄 모르죠. 그런데 유진 씨가 한 송이를 따서 이게 라일락 꽃이고 라일락은 이 향 때문에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그 향을 맡게 해주어서 제가 알았어요. 라일락의 생김새와 그 진한 향을."


내가 몰랐던 것을 그가 알게 해주어 나의 감성이 확장되었다. 라일락 향이 좋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향을 공유하던 그 '감성'을 우리는 주고받았다.



4.

이토록 까다롭고 어렴풋한 감성의 정체성을, 나는 아직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감성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도 나는 그것의 실체를 모른다. 감성은 나에게 살아온 날의 경험인지, 동경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성 타령인건지.


그래서 그냥 써보았다. 감성에 대하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