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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이 전하는 정서

겨울에, 귤

by 윤지영



동대문 종합시장 상가 앞에서 보영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11월 중순, 해는 빨리 지고 바람은 점점 차가워진다. 얼마 전까지는 낭만적인 계절이었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겨울이다. 종합시장 앞으로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바람이 더 차가운 것도 같았다. 똑같은 오후 세시여도 늦가을의 세시와 초겨울의 세시는 풍경 색깔도, 온도도 확연히 다르다.


“지영아. 여기 귤.”


언니를 만나자마자 언니가 패딩 주머니에서 귤을 꺼내어준다. 인상 깊다. 겨울의 색은 소멸의 색인데, 귤만은 유난히 탐스러운 주황빛이다. 귤에게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건네는 것, 핫팩을 건네는 것과는 또 다른 겨울의 정서가 깃들어있다.


"언니 저번 주에 제주도 다녀왔잖아. 이거 제주도에서 딴 귤이야?"


"아니. 경동시장에서 산거야."


아. 제주도산이던, 경동시장 출신이던 귤은 맛있으면 장땡이다. 그리고 언니가 준 경동시장표 귤은 정말 맛있었다. 괜스레 귤 하나에 감동을 받은 나는, 일주일 뒤 똑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언니를 만날 때 귤을 건넸다. 내 귤은 신창시장 귤이었다. 언니는 자신이 저번 주에 베푼 사랑은 금세 잊었는지 귤을 보고 반색을 했다.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로 약속이 있을 때마다 코트 주머니에 귤을 하나씩 쟁였다.


"와아. 귤이다. 나 마침 목말랐는데 잘됐어. 수분이 필요했어."


"고마워. 이 귤 맛있네!"


"헉. 심쿵."


일주일 동안 만난 사람들에게 쓱 하고 귤을 건네줄 때 들었던 말이다. 그리고 다 선물 받은 표정으로 귤을 까서 입에 쏙 쏙 넣었다. 저렴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물할 수 있는, 그리고 선물 받는 사람 대부분이 사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귤. 나는 겨울이 최대한 늦게 왔으면 좋겠고 그렇게 빌고 빌어도 제 때에 찾아오는 겨울에 해마다 아연실색하는데 그런 겨울을 그나마 견디게 해주는 귤이 참 고맙다. 제발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그 사람에게도 귤을 전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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