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불편한 이유
“나, 왜 연애가 불편했는지 알았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게 되면 자연히 하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 배려, 헌신, 어느 정도의 희생, 눈 맞춤,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안부를 묻는 것들 같은. 그런데 나는 그런 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엄마 아빠가 보여준 적이 없거든. 서로를 향해서 애정 어리게 쳐다본 적도 없고, 부부가 서로를 격려하는 것을 보고 자란 적도 없어. 그래서 나한텐 사랑이 너무 어려워."
"부모님의 사랑이 결국 너에게도 영향을 끼쳤네."
"사랑 있지, 어떻게 하는 건지 감이 안 와. 그래서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손톱을 깎지 못하는 날 발견했어. 그뿐만이 아니야. 나 지하철에서 책 읽는 거 진짜 좋아하는 거 알지. 그거 나의 작은 행복인데, 연애하면 상대방한테 연락하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지하철에서 책도 못 읽겠더라. 나 손톱 깎으러 갈게, 나 책 읽고 올게, 이런 게 너무 독단적인 거 같은 거야. 연애할 때는 매 순간 상대방에게 충실해야 될 거 같고,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상대에게 푹 빠져서 헌신하는 거 같은데.”
“스스로 불편함을 자처하네. 오히려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은 관계에 있어서 완급 조절을 수준급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너, 연애를 하는 게 아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거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런 거 같아. 나 혼자 사는 세계에서, 상대방이 있는 세계로. 근데 상대의 세계는 하필 내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
“연애하는 건 상대에게 충실해야 되는 건 맞지만 매 순간 그러지는 않아도 되는데.”
“근데 난 사랑에 대한 기준이 없는 거야. 다섯 살 아이처럼. 그래서 억지로, 나 같지 않은 모습으로 연애하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하는 저항감이 올라와서 헤어지자고 하고, 그게 내 연애의 패턴이었어.”
“세계가 바뀌는 건 너무 혼란스럽잖아. 손톱도 못 깎고 말이야. 물론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건 맞지. 보통 연애를 시작하면 세상이 핑크빛으로 보인다고들 하잖아. 그런데 너에겐 세계의 전환이 손톱도 못 깎고 독서도 못하는 거라면, 사랑이 너무 억압이겠다.”
“그래서 불편해서 내가 연애를 오래 못하나 봐.”
“엄마 아빠를 보면서 네가 사랑의 세계를 배워서 그런가 보다. 너한테 아주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서, 사랑의 세계가 안전한 곳이라고 알려주는 날이 올 거야. 그때 넌 여전히 두려울 수 있겠지. 그래도 그 사람을 따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뎌서 그 세계가 정말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 편히 사랑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겨울 내내 얼었던 땅이 녹고 거기서 식물들이 자라는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