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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그 동경과 환멸

by 윤지영



매년 유난히 길었던 겨울은 이제야 봄의 치맛자락을 놔주었다. 풀려난 봄이 살랑거리자 꽃이 피어난다. 가로등 사이로 그토록 기다렸던 벚꽃이 비친다.



벚꽃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양가감정이 들었다. 반짝임과 부서짐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흐드러지게 핀 이 꽃이 마냥 낭만적이다가도 간밤의 비에 후두두 떨어진 연약함을 마주하는 일은 적응이 되지 않을 만큼 허무했다.



모두를 사로잡는 아름다움은 계절의 짧은 토막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이 존재한 시간보다 몇 배나 긴 그리움을 남긴다. 벚꽃이 그러하듯이 젊음이 그러하며, 사랑 또한 그 성질을 닮았다.



벚꽃의 생태를 보면서 몇 년째 동경과 환멸을 반복했다. 길어야 2주다. 2주가 지나면 벚꽃이 지고 그 자리를 푸른 이파리가 메운다. 아름다움은 금세 강인한 것으로 대체된다. 지구는 소멸의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자연을 통해 순리를 가르치는 하나님 앞에 나는 삶을 인정한다.



28살. 부쩍 인생의 아름다운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기 있는 표정과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던 열정의 내가 시들어간다. 벚꽃은 매년 봄에는 돌아오기라도 하는데, 하늘거리던 이십 대의 몸짓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벚꽃길을 걸을 때 조금은 울적하게 걸음을 뗀다.



그러나 나는 또 기억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을 생명력 있게 가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성실한 나무는 꽃이 떨어져도 이내 이파리를 피우는 것처럼, 외면의 아름다움이 져도 속 안의 강인함을 신실하게 키워가는 것이 나의 의무다. 나무는 몇십 년을 그 자리에서 생명 낳는 일을 반복했지만 나는 난생처음 강인해지려는 거라 서툴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나서 몸을 뉘 일 때 그래, 오늘도 아름답고 싶었지만 한걸음 더 강인해졌다고 나를 토닥이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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