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다가오네
퇴근시간이 다가오네. 너는 내가 빌려준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오고 있어. 인덱스를 다닥다닥 붙여놓은 구절을 읽으며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책은 내 세계의 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너는 그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세계로 들어오게 될까. 그렇지 아니하더라도, 의외로 말을 잘 못하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이 될 거야. 그 문을 열면 점점 가까워지는 내가 있을 거고.
드디어 너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어. 나는 문을 열고 너를 찾아. 월요일, 엄청난 퇴근길 인파 속에서도 나는 너를 찾을 수 있어. 하늘색 셔츠를 입은 너를 발견하고, 오늘 아침 골라 입고 나온 내 셔츠 소매를 다시 한번 쳐다봤어. 아침에 무슨 옷을 입겠다고 서로 말하지도 않았는데 맞춘 것처럼 똑같은 셔츠를 입고 있어서 놀랐어. 날씨는 선선하고 해도 아직 넘어가지 않았지. 옷차림은 가볍고, 너는 나를 사랑하고 나도 너를 사랑하고.
예전에는 네가 나를 너무 좋아하고 또 잘해주니까 네가 좋았어. 그런데 이제는 조건 없이 네가 좋은 시기가 나에게 도래한 거 같아. 그건 아마 내가 머리를 감지 않아도, 만난 지 99일째 되던 날을 100일로 착각해 100일 축하한다고 하루빨리 말해도, 너의 사랑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가끔가다 의심까지 하더라도 존재만으로 나를 사랑하는 너의 사랑을 배웠기 때문일 거야.
사랑은 어렵고 힘든 거라서 많은 사람들이 우는데 너는 나를 많이 웃게 해줘서 고마워. 네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처럼 나도 너를 사랑할게. 계산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순진하게 사랑할게.
너는 내가 가지고 있던, 그리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높은 불신의 장벽을 서서히 허물어.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사랑은 단지 느낌이고, 사랑이 변하면 고통만이 남는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사랑이 이기나 봐. 수많은 사람들이 입는 하늘색 셔츠인데 마치 이 세상에서 너랑 나만 입는 것 같은 착각이 들잖아. 운명같이 느껴지게.
참, 너의 여러 가지 표정 중에서 나한테만 보여주는 웃음을 나는 이제 발견할 수 있어.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랑해. 떨어져 있는 이 밤에, 너를 생각하다가 편지를 써보다가 그러다 결국 글을 써. 네가 하고 싶어 하는 그 일이 끝나면 전화해.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