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자고 있어? 일기만 쓰고 자려고 했는데 갑자기 글을 더 쓰고 싶더라고. 그래서 며칠 전에 우리가 잠깐 했던 대화를 다시 꺼내기로 했어. 우연일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는 우연이 아닌 거 같아서.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져서 봄에 입던 재킷을 꺼내 입었다고 했지. 아마도 네가 즐겨 입던 조금 빳빳한 남색 재킷일 거야. 하루 동안 그 재킷을 입고 일하다가 퇴근할 때쯤 안주머니에서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어.
그 종이는 편지였는데, 어느 봄에 우리가 아주 잠깐 만나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걷다가 헤어진 날, 안녕 하고 손 흔드는 말미에 내가 너에게 준거였대. 그래서 나도 생각이 났어. 그 날, 우리가 같은 색 셔츠를 입은 날이잖아.
편지엔 이런 문장이 있었대. 날씨가 너무 좋고 하늘도 예쁘다고. 그게 마치 오늘 하늘을 묘사하는 거 같아서 신기했대. 그치. 어쩌면 봄과 가을의 하늘은 마음을 살랑거리게 하고 도망간다는 점에서 비슷하니까.
그리 잘 쓰지도, 그렇다고 못쓰는 것도 아닌 내 글씨를 내리읽으면서, 너는 내가 널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알게 됐대. 그리고 오늘 길고 길었던 하루를 위로하는 거 같아서 눈물이 났다고 했어.
누구나 그런 날이 있잖아. 힘든지도 몰랐는데 사랑하는 사람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눈물을 으앙 터트리는 날. 요즘 바빠서 서로의 영혼을 충분히 살피지도 못했는데 봄날에 보낸 편지가 늦여름의 너를 위로해줘서 내심 안심이 됐어. 오늘은 네가 울어야만 하는 날이었는데 편지가 나 대신 내가 되어줘서 감사하더라고.
그 밤에 그 편지를 다시 만난 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랑이 충만했던 지난봄도, 남색 재킷에 손이 가게끔 한 날씨도 너를 위해 예정되어 있었을 거야. 인생은 우연 같아 보이는 요소들을 사용해 우리를 이끌지. 그래서 우리는 애틋하게 위로받고 간신히 내일을 살아갈 소망을 얻는 거 아닐까.
있잖아. 안주머니에 작은 사랑이 담겨있어서 다행이야. 난 또 우연히 위로가 될 글들을 좀 더 쓰다가 잘게. 평안한 밤 보내길 바라, 잘 자.
P.s 우리가 같은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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