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의 글쓰기] 시나리오, TV극본, 소설의 차이
안녕하세요, 노파입니다.
드디어 시나리오를 다 썼습니다.
역시 <개구리>입니다.
마치 뼈가 있는 짐승처럼 우려먹히고 고아먹히는 나의 개구리.
적당히 발라먹으라고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미안하다, 넌 내 사골이다.
이렇게 개구리를 사시사철 우라까이, 아니, 원 소스 멀티 유즈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소설과 드라마와 시나리오가 완전히 다른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셋은 정말 다릅니다.
그래서 저는 <개구리>를 소설로도 갖고 있고, TV드라마로도 갖고 있지만, 이번에도 완전히 새로 쓰는 기분으로 썼습니다.
소설과 시나리오가 다르다는 점은 대충 아실 테고, TV 극본과 영화 시나리오가 다른 점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TV는 주둥이로 터는 장르이고, 영화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르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랑이 뭐길래> 식의 주둥이 파이터들의 대화를 전부 눈빛과 나부끼는 커튼과 번지는 잉크 자국으로 바꿔줘야 했던 겁니다. 물론 장르에 걸맞게 구성도 바뀌어야 합니다. 좀 더 감추고 덜어내는 방식으로.
이것은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저 역시 김수현 작가처럼 라디오 드라마를 쓰던 사람이라, 극의 모든 정보를 인물의 말로 전달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걸 전부 지문과 은근한 압축으로 바꾸려니 두뇌를 새로 갈아끼우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마무리를 했습니다.
마감시간을 30분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나머지 5개의 지원 서류를 정신없이 준비했습니다.
이윽고 마감 3분전이 됐고, 2분전이 됐고, 1분 전이 됐는데, 이상하게 서류가 업로드되지 않았습니다.
이거 왜 이래? 하는 사이 마감시간이 되었고, 그와 동시에 시스템은 먹통이 돼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일주일동안 14시간씩 써놓은 글을 결국 제출하지 못한 겁니다.
저는 씨발을 외치며 방바닥을 굴렀습니다.
그러나 굴러보았자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눈물을 닦고 분연히 떨쳐 일어나 마치 3세계 교도소에 감금된지 몇 년 만에 샤워를 해보는 사람처럼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습니다. 시이발...
눈물의 샤워를 하고 나왔더니 부재중 전화가 한통 와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자도 하나 와 있었습니다.
자신은 한국영화어쩌고저쩌고의 관계자인데, 전체 서류 중 시나리오만 올렸다면서 나머지 서류도 빨리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음성이라도 들은 것처럼 당장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서류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알고보니 내 시나리오가.. ㅈㄴ 엄청난 녀석이어서... 그래서 나에게 이런 번외 찬스를 준 것이 아닐까?
저는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서류를 제출했다고 말을 하고는, 뭔가 누설하면 안 되는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처럼 은밀하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렇게 따로 연락을 주신 게, 혹시 제 시나리오가 가능성이 있어서.."
담당자는 더 듣지도 않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런 거 아니고요, 원래 서류가 미비한 지원자들한테는 다시 보내라고 연락을 따로 드립니다."
"아항, 그렇군요!"
저는 몹시 수치스러웠고, 그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과도하게 귀여운 척을 하며 답한 게 더 수치스러워서 또 다시 방바닥을 굴러다녔습니다.
그러나 서류가 무사히 접수되었습니다.
잘하면 올 봄과 여름은 파주에서 글을 쓸 수도 있겠습니다.
부디, 행운을 빌어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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